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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Mar 18. 2016

교류를 넘어 공감으로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백남준 작고 10주기 등 올해 국내 문화예술계에는 거장을 기리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행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연초부터 영국 대문호의 작품이 속속 무대에 오르고, 갤러리에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잠깐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려 보자. 고전이 갖는 현재적 가치가 아닌 지금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2016년 현재, 우리가 주목하는 문화예술계의 가장 ‘핫’한 이슈는 바로 ‘프랑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886년 조·불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이래 한국과 프랑스는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안보와 경제는 물론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올해 수교 130주년을 맞아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로 정하고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풍부한 문화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1년 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전통·무용·연극·음악 등 공연예술과 시각예술·문학·영화·학술·스포츠·미식·관광 등 각 분야별로 마련된 프로그램을 통해 양국 문화예술의 현주소를 경험함은 물론, 지평을 넓히고 도약을 꾀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는 2015년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한국 내 프랑스의 해’는 3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며 총 200여 개가 넘는 행사가 진행된다.          


에펠탑 일루미네이션 ⓒThibault Chaptot


‘예술의 나라’에 쏘아올린 한국의 오색빛깔


지난해 9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프랑스 내 한국의 해’를 여는 개막작으로 우리의 종묘제례악이 프랑스 파리 샤요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다.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종묘제례와 함께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85명의 국립국악원 단원이 출연해 장대한 전장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종묘제례악은 한국의 제례문화와 궁중예술에 뿌리를 두고 한국의 얼을 오롯이 담고 있는 음악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18일 개막공연 후에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하는 일루미네이션이 펼쳐졌다. 나윤선의 ‘아리랑’을 비롯한 몇 곡의 한국음악에 맞춰 태극기와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색색의 조명이 에펠탑을 비추었다.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 (사진제공=한-불 상호교류의 해 사무국)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프랑스 곳곳에 한국의 공연예술이 수놓아지고 있다. 시즌제를 중심으로 공연을 선보이는 극장과 축제들은 저마다 한국의 예술을 집중 소개하는 ‘한국 포커스(Focus Coree)’를 마련하는 등 한국의 예술가를 적극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44회째를 맞은 파리가을축제는 김금화의 <만신대탁굿>, 안숙선의 판소리 <수궁가>, 안은미컴퍼니의 ‘댄스’ 3부작, 그리고 작곡가 진은숙을 초청해 전통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공연을 폭넓게 소개했다. 올해 1월,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는 젊은 관객을 위한 한국 공연 시리즈로 이은결의 마술공연과 인형극 <달래 이야기> <나무와 아이>, 조주현의 안무작 등 다섯 편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 외에도 최승희를 오마주한 양성옥의 무대 <한국 춤의 전설>을 비롯해 김덕수가 이끄는 사물놀이 한울림의 <파리난장 2015> 등이 프랑스 관객과 만났다.     


지난해 20회를 맞이한 칸 댄스 페스티벌의 개막을 장식한 국립무용단의 <회오리> 역시 주목할 만하다. 격년마다 무용계 트렌드를 충실하게 읽어내고 있는 이 축제의 장을 유일한 아시아 참가작인 국립무용단이 연 것이다. 프랑스 내 다섯 개 국립극장 중 무용전용 극장인 샤요국립극장 역시 올해 한국 특별주간을 마련했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사진제공=국립극장)


2015-2016 샤요국립극장 시즌 마지막 주를 장식하는 이 특별주간에는 국립극장과 공동 제작한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를 비롯해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 이인수·김판선·안성수의 작품이 준비됐다. 올봄 센 생 드니에서 열리는 안무교류축제(Rencontres Choregraphiques Internationales) 역시 관심 있게 봐야 한다. 마기 마랭·앙줄랭 프렐조카주 등 세계적인 안무가를 탄생시킨 바뇰레 국제안무대회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단순한 콩쿠르의 개념을 넘어서 안무를 위한 거대한 플랫폼으로 확장됐다. 올해는 아트프로젝트 보라·박박parkpark·이희문컴퍼니 등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 같은 프로그래밍은 단순한 교류의 차원을 넘어서 세계 무용계의 판도에서 한국의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가오는 4월,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는 ‘창극’으로는 최초로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프랑스 무대를 밟는다. 오페라 <나비부인(Madame Butterfly)>과 비슷한 외국식 이름 <마담 옹(Madame Ong)>으로 관객을 한창 기다리는 중이다. 창극의 해외 수출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일이지만, 무엇보다 서양의 오페라와는 다른 우리 창극만의 매력을 유럽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서구의 관객까지도 사로잡을 이 작품은 오는 5월 국립극장 무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국립무용단 <회오리> (사진제공=국립극장)


프랑스의 에스프리, 한국에 스미다


프랑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는 올해 3월, 한국으로 바통을 넘겨 연말까지 열기를 이어간다. 3월 넷째 주에 열리는 개막주간은 ‘한국 내 프랑스의 해’ 개막식과 함께 구 드 프랑스 미식축제·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프랑수아즈 위기에 사진전·한-불 리더스 포럼·소믈리에 콩쿠르·장 폴 고티에 전·앙상블 2e2m 내한공연·해외유학박람회 등 다채로운 행사로 꾸려진다. 이 중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단연 <시간의 나이>다. 수교 130주년을 맞아 한국의 국립극장과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한 이번 작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무용단이 출연하고, 샤요국립극장 상임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참여한다. <시간의 나이>는 역동적이면서도 시간을 늘어뜨린 듯 매우 느린 움직임이 공존하는 한국무용의 춤사위에서 영감을 받아,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로서 한국무용 고유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하는 특별한 작업이다. ‘한국 내 프랑스의 해’ 개막작으로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뒤, 다가오는 6월엔 샤요국립극장에서 프랑스 관객과 만난다.     


장 폴 고티에 전시 포스터


개막주간의 면면을 살펴보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프랑수아즈 위기에의 전시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14년부터 2년간 차곡차곡 기록한 그의 사진 150여 점과 1982년 한국 방문 당시 작업한 흑백사진을 전시한다. 비슷한 기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선 ‘패션계의 앙팡 테리블’ 장 폴 고티에의 전시가 열린다. 고티에의 ‘영감’을 주제로,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120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3월의 마지막 날엔 프랑스의 현대음악 단체 앙상블 2e2m이 내한해 통영국제음악제 무대를 빛낸다. 앙상블 2e2m은 1978년 윤이상이 작곡한 ‘오케트(Oketett)’를 세계 초연하는 등 현대작곡가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단체다. 이번 무대에서는 작곡가 김동명의 초연곡과 한국 젊은 작곡가 공모전에서 당선된 신예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국립극단과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가 공동 제작하는 연극 <빛의 제국> 역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을 원작으로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의 예술감독 아르튀르 노지시엘이 연출가로, 발레리 므레젠이 각색자로 참여해 한국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작품을 완성한다.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 (사진제공=국립극장)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프랑스의 문화예술을 맛보고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작품들이 연말까지 이어진다. 세계 곳곳의 무용을 소개하며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축제로 자리매김한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는 올해 ‘프랑스 포커스’를 마련했다. 앙줄랭 프렐조카주를 비롯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7개 팀이 내한해 프랑스 무용의 현재를 낱낱이 보여줄 예정이다. 서울국제음악제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도 올해 프랑스의 예술가와 작품을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내한 때마다 관객들을 유쾌하게 만들었던 필리프 드쿠플레는 최근작 <콘텍트>로 LG아트센터를 찾는다. 바로크음악과 현대음악 모두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실내악단체 앙상블 마테우스는 오는 10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에 빛나는 소프라노 황수미와 협연한다. 대니얼 하딩과 파리 오케스트라,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CMBV)를 비롯한 여러 프랑스 예술단체들이 한국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지면의 한계상 일부만 소개했지만, 어느 때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예술 현장이 느껴지지 않는가.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는 단순히 양국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심도 있는 교류로 이어지고, 새로운 예술 지평을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국립극장 「미르」 2016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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