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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un 25. 2016

피나 바우슈가 남긴 위대한 유산

부퍼탈 탄츠테아터 ‘풀 문’

부퍼탈 탄츠테아터 ‘풀 문’

2014년 3월 28~31일 LG아트센터


(사진제공=LG아트센터)


피나 바우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었다. 창단 40주년을 맞아 전 세계를 돌며 그녀의 작품을 공연하고 있는 부퍼탈 탄츠테아터가 지난 3월, ‘풀 문(Full Moon)’으로 내한했다. 전 세계를 돌며 만든 ‘도시 시리즈’와 달리 온전히 자신의 무용단을 위해 2006년 안무한 이 작품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무용수들의 젊음과 관록이 어우러져 완성됐다. 특히 이번 공연은 그녀의 서거 이후 개봉한 영화 ‘피나’에 등장했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시작부터 무대를 박차고 나갈 듯한 짜릿한 역동성이 전해졌다. 첫 장면에서는 무대를 달리는 남자와 전력으로 뛰어와 안기는 여자의 동작이 반복됐다.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어떤 갈구와 욕망의 분출을 표현했고, 그렇게 몇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각 장면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극적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무용수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만 남았고, 보슬비가 내리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물방울이 부딪쳐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가 작품의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이끌었다.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빠져들고 있을 때 한 무용수가 외쳤다.


“나는 젊어요. 내 귀는 약속을 듣죠. 내 눈은 꿈을 바라봅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강인합니다.”


격정적이던 1막과 달리 2막은 레퀴엠 같은 장중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무용수들 각자가 솔로를 추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전체 춤의 통일성을 생각하지 않고 개개인의 움직임을 풀어내는 작품 스타일은 무용수들에게 무엇을 쥐어주기보다 일단 주제를 던지고 표현해보도록 요구하는 피나 바우슈의 작업 방식과 연관 있다. 그들의 솔로에서는 춤뿐 아니라 대사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몇몇 무용수들은 한국어를 익혀 우리말로 대사를 전달해 그 효과를 더 높이기도 했다. 부퍼탈 탄츠테아터 무용수들의 춤은 훈련된 것이 아닌, 온전한 ‘표현’ 그 자체였다. 보여주기 위해 아름다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가운데 완성되는 움직임이었다.


초승달이 점점 부풀어 보름달이 되듯이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차올랐다. 무대로 쏟아지는 물줄기는 점차 거세졌고 무용수들은 바닥에서 헤엄치고 양동이로 물을 뿌려가며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피나 바우슈가 추구했던 자연에서의 삶이 그대로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월간 객석 2014년 5월호 ‘공연수첩’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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