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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un 26. 2016

다섯 무용수가 보여준 ‘불편한 사랑’

국립현대무용단 ‘11분’

국립현대무용단 11분’

2014년 4월 15~20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국립현대무용단 ‘11분’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11분’을 바탕으로 한 국립현대무용단의 동명 작품이 지난해 초연 이후 수정을 거쳐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소설을 무용으로 녹여낸 이 작품은 지난해 공연 당시 꽤 호평을 받았던지라 기대감을 갖고 공연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도, ‘사랑’이라는 주제도 찾을 수 없었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풀어낸 ‘사랑’과 ‘성(性)’은 거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처럼 불편하기만 했다.


원작의 소설이 육체적 사랑을 중요하게 다뤘다고 해서 무용수들도 그랬어야만 했을까. ‘사랑’이라는 넓고도 보편적인 주제 안에서 그들의 관심은 육체의 행위에 집중됐다. 특히 직접적인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김보람과 최수진의 춤은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진부한 장면이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가슴에 양말과 사과를 넣어 외형적으로 여성이 된 김보람의 모습이 꽤나 신선했을 뿐이다.


민망한 객석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었던지 이어진 김보람·류진욱·지경민 세 남자의 춤은 객석의 웃음을 유발하려 애썼다. 마지막을 장식한 지경민·김보라 커플의 듀엣은 움직임이 독창적이고 아름다웠지만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만큼 강한 인상은 아니었다.


라이브로 연주된 재즈 트리오의 음악은 신선했고, 김태용 감독의 드라마투르기 덕분에 무용수들의 춤에는 서사적 구조가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다섯 안무가들이 풀어낸 각자의 이야기를 잘 묶어줄 수 있는 ‘한 사람’의 역할이 부재했다는 점이 더 아쉽다. 이제는 프로젝트나 협업 무대가 아닌, 오로지 국립현대무용단의 ‘춤’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을 기대해본다.


* 월간 객석 2014년 5월호 ‘공연수첩’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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