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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Sep 07. 2016

움직임, 바흐의 선율이 되다

유니버설발레단 ‘멀티플리시티’

유니버설발레단 ‘멀티플리시티’

2014년 4월 25~27일 LG아트센터


(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과학적으로 설계된 바흐의 음악에 현대적 감수성을 지닌 두아토의 안무가 더해지면 어떤 무대가 탄생할까. 바흐의 음악과 그의 인생 전반을 담은 작품 ‘멀티플리시티’가 유니버설발레단의 무대에 올랐다. 협주곡·칸타타·소나타를 비롯한 23개 바흐의 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거장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흐로 분한 무용수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 대형으로 둘러앉은 무용수들이 음표가 되어 움직이는 첫 장면과 세속 칸타타 BWV205의 음률에 맞춰 물결치는 모습은 음악의 기쁨을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남녀 군무 역시 안무가가 의도한 역동성과 낙천적인 모습을 잘 살려냈으며, 당대 스타일을 살린 의상을 입고 무대를 활보하는 여성무용수들은 제법 빠른 박자의 안무도 놓치지 않고 소화해냈다. ‘토카타와 푸가’ BWV538의 오르간 연주에 맞춘 2막 남성무용수들의 군무는 비장미가 넘쳤고, 절제된 동작과 무대를 시원하게 가르는 점프는 바흐 인생 말기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바흐의 음표들이 춤추는 순간이 아닌 죽음이 등장한 때였다. 어두운 빛깔의 드레스에 백색 가면을 쓴 묘령의 여인은 모든 군무에 필적할 만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했다.


좋았던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의 듀엣은 안무가의 의도를 온전히 구현하지 못했다. 나초 두아토가 가장 애정을 갖고 안무한 이 장면은 첼로가 연주하는 중후하고 매혹적인 선율과 음악을 몸으로 구현해내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궁극적으로 에로스를 완성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두 무용수는 음악에 몸을 맡기지 못하고 동작을 소화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파트너 간의 교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다소 폭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무용수들의 기량은 훌륭하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을 즐기지 못하고 고난도의 동작들을 해내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음 사이의 여유까지 표현할 겨를이 없었다. 2011년 킬리안의 ‘프티트 모르’를 처음 공연했을 때 관객들에게 선사했던 섬세한 완성의 감동이 ‘멀티플리시티’에는 부족했다.


초연 무대에서 원작의 완전한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3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이 나초 두아토의 전막 작품을 유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불어 이 작품이 무대에 다시 오르는, 지금의 기대감을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할 날을 기다린다.


* 월간 객석 2014년 6월호 ‘공연수첩’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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