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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ul 19. 2016

무대 위에 펼쳐진 인생 여정

아크람 칸 ‘데쉬’

아크람 칸 ‘데쉬’

2014년 6월 14~15일 LG아트센터


(사진제공=LG아트센터)


당신의 삶을 한 편의 작품으로 담아낸다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아크람 칸은 홀로 무대를 채우는 방법을 택했다. 이전에 실비 기옘·쥘리에트 비노슈와 함께 한 듀엣을 선보였던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오직 자신만의 춤을 관객에게 내보였다.


작품은 움이 돋은 아버지의 무덤을 망치로 내려치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움과 동시에 본바탕인 아버지를 불러내는 행위다. 혼잡한 도시를 지나 제트기의 엔진과 마주한 그는 ‘작은 사람’을 꺼낸다. 이 ‘작은 사람’은 그의 머리에 그려진 자신의 아버지다. 작품은 쉴 새 없이 빠르게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는데, 이윽고 그의 조카 에시타가 등장해 아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동시에 고국으로 이끌어 간다.


비주얼 디자이너 팀 입과 조명 디자이너 마이클 헐이 그려낸 애니메이션은 관객을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파도치는 바다와 무성한 나무, 입 벌린 악어, 거대한 코끼리, 꿀벌과 벌집은 방글라데시의 자연을 보여준다. 행복한 순간도 찰나, 곧 등장한 거대한 소음의 전차로 인해 아름다운 순간들은 깨져버리고 만다.


무대 위에 자리한 두 개의 의자는 이들 부자의 모습을 닮았다. 거대한 의자에 올라 그에 비해 너무도 작은 의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은 아버지와 함께일 때 비로소 찾은 자신의 정체성을 함축해 보여주고 있다. 몬순기후의 장대비이자 그의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하늘에 닿을 듯한 거대한 풀을 상징하는 실크 띠가 내려오면서 작품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데, 이 장면은 자신의 가족사뿐 아니라 종교 분쟁과 기후 온난화로 인한 고국의 복합적인 상황에서의 비극과 희극을 드러내고 있다.


아크람 칸의 이야기는 무대미술·조명·음악·애니메이션·드라마투르그까지 각 분야의 훌륭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이토록 아름답고 웅장한 무대로 완성됐다. 그럼에도 작품의 주인공은 그의 춤이었다. 그는 컨템퍼러리 댄스로 시작해 점차 카탁과 신체극이 혼합된 춤으로 변화해가며 지금까지의 춤의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특히 카탁 특유의 발 리듬은 그만이 선보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곧 마흔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80분 동안 펼쳐진 그의 움직임은 민첩하고 역동적이었으며 동시에 안정적이었다. 또 거대한 나무 꼭대기에 올라 빙글빙글 돌고, 무수한 실크 띠 사이를 헤치며 달리는 모습에서는 무대의 개념을 시공간적으로 확장한 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쉬’를 통해 아크람 칸이 들려준 내밀한 이야기에 관객들은 진하게 공감하며 웃고, 감탄하며, 함께 눈물지었다. 예술가의 인생에 있어 한 편의 ‘역작’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 월간 객석 2014년 7월호 ‘공연수첩’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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