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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ul 03. 2016

고전의 승리

매튜 본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매튜 본 ‘잠자는 숲 속의 미녀’

2016년 6월 22일~7월 3일 LG아트센터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한 장면 ⓒTristram Kenton


영국 안무가 매튜 본(Matthew Bourne)의 2012년작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한국을 찾았다. 비시즌 동안 해외투어를 진행하는 단체 가운데 가장 빠른 내한인 듯하다. 그는 대표작 ‘백조의 호수’를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국내에서 세 차례 공연하며 한국 관객 사이에서 급속도로 유명세를 탔다.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음에도 무용·영화·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다작의 안무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내한한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백조의 호수’(1995) ‘호두까기 인형!’(1992)과 함께 차이콥스키 음악을 토대로 완성한 3부작의 하나이다. ‘카 맨’(2010)과 함께 2010년대 들어 변화해온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전반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그야말로 ‘재밌다’. 화려한 무대 연출, 장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세트, 오로라의 시점에 맞춰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순차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적 배경, 작품 곳곳에 스며든 유머코드까지. 관객이 한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무대에 집중하게 하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굳이 잣대를 들이댄다면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매튜 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지점은 ‘연출력’에 있다.


막이 오르면 “옛날에…”라는 자막이 띄워지며 전형적인 동화의 첫 장을 알린다. 총 2막 4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아주 친절하게도 매 장을 시작하기 전에 주요 줄거리를 알려준다. 백조가 상징하는 여성적 아름다움을 남성의 것으로 치환하는 동시에 동성애에 관한 이슈를 녹여냈던 ‘백조의 호수’나 비제의 ‘카르멘’을 토대로 온전히 성인을 위한 작품으로 완성한 ‘카 맨’에 비해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가족을 위해 안무가 스스로가 눈을 낮춘 작품이다.


홍보성 문구로 시작돼 끊임없이 관객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고전발레를 현대적으로 재창조”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수식어구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 작품은 ‘고전의 승리’라고. 스토리가 변화하고, 장면을 새롭게 만들었음에도 관객에게 익숙하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고전’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중 팔 할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차이콥스키의 음악이다. 차이콥스키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전곡을 요리조리 편집하고 전반적으로 속도를 빠르게 해 극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위해 스튜디오를 꾸려서 새롭게 음악을 녹음했다고 하니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LG아트센터의 훌륭한 음향도 작품의 완성에 한몫 했다.) 무엇보다 ‘로즈 아다지오’를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 카라독과의 첫 만남과 레오와의 파드되에 동시 배치한 것은 하나의 음악으로 뉘앙스를 달리하면서도 결말을 암시하는 훌륭한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또, 음악의 클라이맥스를 정확히 꿰차고 동작에 일치시키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모든 음악을 정박으로 사용하는 안무는 다소 그 답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어떤 고난과 역경을 겪더라도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장식하는 동화의 클리셰처럼, 매튜 본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역시 곳곳에서 고전의 클리셰가 발견된다. 성인식을 맞아 열린 정원파티에서 예기치 않게 카라독과 마주쳐서 놀란 채 빤히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같고, 장미 가시에 찔려 춤을 추다 말고 레오의 품에 뛰어와 안기며 쓰러지는 장면과 이어서 레오가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은 ‘지젤’ 1막과 쏙 빼닮았다. 눈을 가린 채 여러 남자들에 의해 허공을 가르며 춤추는 오로라와 그를 찾아온 레오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연상케 한다. 그뿐인가, 강제로 키스하더니 잠에서 깨어난 오로라를 끌고 가 억지로 결혼하려는 마지막 장면은 마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유령과 크리스틴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LG아트센터는 이번 작품에 ‘댄스 뮤지컬’이라는 단어를 붙여 내놓았다. 언론에선 “매튜 본은 그렇게 만든 자신의 작품을 ‘댄스 뮤지컬(Dance Musical)'이라 부릅니다”(SBS 뉴스)라는 말도 나오고, “매튜 본은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안무했지만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댄스 뮤지컬’이야말로 그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국민일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매튜 본과 그의 컴퍼니 뉴 어드벤처스(New Adventures)는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댄스 뮤지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춤이냐, 뮤지컬이냐? 우리는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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