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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Aug 05. 2016

경쟁을 넘어 성장으로

2016 제13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월드갈라

콩쿠르 본연의 의미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선 성장에 있다. 한국 무용계의 발전을 견인해온 서울국제무용콩쿠르, 그중에서도 ‘꽃’이라 부를 수 있는 갈라 공연을 미리 만나본다.


‘콩쿠르(concours)’. 이 단어를 보고 있으면 묘한 설렘과 팽팽한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경쟁 끝에 도출되는 결과는 논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가치 평가가 어려운 ‘예술’과 그 안에서 우열을 논해야 하는 ‘콩쿠르’가 맞붙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럼에도 콩쿠르를 피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체가 양날의 검 같은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체능 분야에서 국제적 단위의 콩쿠르와 대회는 세계무대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효용적인 발판이다. 특히 발레나 클래식 음악처럼 서구에서 태생한 예술이라면 더욱 그렇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인재들에게 콩쿠르는 도전하지 않을 수 없는 필수 불가결의 존재다. 지금이야 전 세계 곳곳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입상 소식이 익숙하지만, 1974년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위를 수상하고 귀국할 때만 해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진행할 정도로 전국이 떠들썩한 일이었다.


경쟁자보다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콩쿠르 본연의 법칙상 ‘경쟁 과열’이라는 부작용이 동반된다. 그러다 보니 예술을 대하는 태도나 연습 과정 또한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형태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될성부른 새싹을 발굴하고 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콩쿠르는 개최의 당위성을 갖는다. 콩쿠르가 없었더라면 그 많은 예술가들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었을까?


윌리엄 포사이스 <슬링어랜드> ⓒIan Whalen


2016년 현재, 한국의 무용수들은 전 세계 ‘콩쿠르 킬러’로 불릴 정도로 수상을 독식하고 있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일상 그 자체가 경쟁인 치열한 연습환경, 엄격한 사제관계에 기반한 결과다. 21세기 들어 국내에 생겨난 크고 작은 국제무용콩쿠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국제무용콩쿠르도 이 같은 결과에 한몫했다. 2004년 첫 개최 당시에는 한국 참가자가 대다수였으나, 수상자들이 점차 세계 유수의 컴퍼니에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레 콩쿠르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국제무용콩쿠르가 여타 무용콩쿠르와 차별되는 것은 발레·컨템퍼러리 댄스 외에 민족무용 부문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부터 추가된 민족무용 부문은 한국무용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민족무용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에서 독특한 인상을 풍기는데, 경쟁보다도 다양한 국가의 전통춤을 함께 이해하고 보존해나가자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서울국제무용콩쿠르는 13년의 짧은 역사지만 그간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다. 2005년에는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에 가입하면서 국제적인 지위를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병역 특례가 적용되는 국내의 몇 안 되는 콩쿠르이기에 남성 무용수라면 누구든 도전하지 않을 수 없는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월드갈라 무대에 오르는 발레리나 이상은·박세은의 콩쿠르 참가 당시 모습(사진제공=서울국제무용콩쿠르 사무국)


2004년 처음 열린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무용수는 러시아의 레오니드 사라파노프다. 왕자님 역할에 제격인 수려한 마스크와 섬세한 몸짓이 매력적인 그는 마린스키 발레를 거쳐 현재 미하일롭스키 발레의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엔 브누아 드 라 당스 남성무용수상을 받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발레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수석무용수 마리야 코쳇코바(2005년 발레 시니어 1위), 로열 발레 퍼스트 솔로이스트 멀리사 해밀턴(2011년 발레 시니어 1위)도 서울국제무용콩쿠르를 거쳐 갔다.


한국의 무용수들은 이 콩쿠르를 기반으로 세계로 뻗어 나갔다. 2005년 마리야 코쳇코바를 제치고 그랑프리를 거머쥔 이상은은 유니버설발레단을 떠나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에 자리 잡았다. 181센티미터에 달하는 신장 때문에 국내에서 파트너를 찾기 어려웠던 그녀는 해외로 이적한 뒤 활발하게 날갯짓하고 있다. 최근엔 다음 시즌부터 수석무용수로 승급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마린스키 발레에서 수석무용수로 굵직한 주역을 도맡고 있는 김기민은 말이 필요 없는 한국 발레의 스타다. 그 또한 이 콩쿠르에서 2008년 발레 주니어 1위를 차지했다. 이 외에도 이현준(털사 발레 수석무용수), 한서혜(보스턴 발레 수석무용수), 이은원(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2016-2017 시즌부터 워싱턴 발레로 이적) 등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남겼다. 물론 이례적인 케이스도 있다. 김기민과 함께 오늘날 ‘한국 발레의 투톱’이라 할 법한, 파리 오페라 발레의 쉬제 박세은은 제3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 참가했다가 파이널에서 고배를 마셨다. 비록 순위권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당시 그녀가 췄던 ‘그랑 파 클라시크’ 솔로 베리에이션은 발레 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박세은이 선보이는 <돈키호테> 3막 파드되 ⓒMarc Nguyen, 뱅자맹 밀피에 <밤의 끝> ⓒIkAubert


오는 8월 12~13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월드갈라는 ‘콩쿠르’의 의미를 짚는 동시에 관객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무대다. 그간 서울국제무용콩쿠르와 인연을 맺은 세계적인 무용수들이 대거 참여한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의 이상은과 크리스티안 바우흐는 윌리엄 포사이스의 <슬링어랜드(Slingerland)>, 오스트레일리아 안무가 크레이그 데이비드슨의 세계초연작 <추억(Reminiscence)>을 준비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의 박세은은 같은 발레단의 미카엘 라퐁과 함께 ‘갈라 공연의 꽃’이라 불리는 <돈키호테> 3막 결혼식 파드되를 선보인다. 컨템퍼러리 작품으로는 뱅자맹 밀피에의 최근작 <밤의 끝(La Nuit S’acheve)>을 무대에 올린다. 볼쇼이 발레의 세묜 추딘(2004년 발레 시니어 3위·2006년 특별상), TV 프로그램 ‘댄싱나인’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은 이선태(2008년 컨템퍼러리 시니어 1위), 미국 모믹스에서 활동하는 성창용(2009년 컨템퍼러리 시니어 1위) 등 출연진 리스트만 봐도 기대를 모은다. 게다가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콩쿠르의 진정한 의미는 ‘경쟁’이 아닌 ‘성장’에 있다는 것을, 이 무대에서 확인해보자.


2016 제13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월드갈라

날짜  8. 12(금)~13(토)

장소  해오름극장

관람료  R석 7만 원, S석 5만 원, A석 3만 원, B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 국립극장 「미르」 2016년 8월호 ‘공연 미리보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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