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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13. 2017

마당놀이 드림팀 납시오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 백스테이지

멋진 공연이 끝난 뒤 무대를 향해 박수를 보내본 적이 있는가. 커튼콜의 박수와 함성이 전해지는 가장 먼 곳을 찾아 무대 뒤로 향했다.


객석으로 향하는 길(사진=전강인/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둘레둘레 초롱에 불을 밝힌다. 로비에는 색색의 휘장이 나부끼고, 관객을 맞이하는 네 개의 문이 활짝 열린다. 오랜만에 만난 듯 서로를 반기는 동창생,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나들이를 나선 대가족. 마당놀이가 진행되는 두 달 동안 국립극장엔 겨울 추위를 녹이는 사람의 온기가 가득하다. 티켓을 받아 들고 객석에 들어서면 둘레막 안쪽 무대 위에선 이미 흥겨운 잔치가 한창이다. 흥을 돋우는 꽹과리 연주를 필두로 길놀이가 시작되고, 비나리 외는 소리에 모두가 무대에 올라 앞길의 행복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


“우리들은 국립극장 마당놀이패. 오늘 오신 손님, 오늘 오신 손님. 오늘 오신 손님네 잘 왔소!”


마당놀이를 한 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그 선율을 익히 떠올릴 법한 첫 곡 ‘오늘 오신 손님 반갑소’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공연을 보러 남산까지 발걸음을 옮긴 관객들을 환대하는 마당놀이만의 인사인 셈. 열일곱 곡의 노래와 춤∙연기∙음악이 어우렁더우렁 우리네 놀이판을 만들어나간다. 날카로운 풍자에 한 번, 배꼽 잡는 해학에 두 번 웃다 보면 금세 두 시간이 지나가기 십상이다. 색색의 조명, 오만 가지 휘황찬란한 의상과 소품, 휙휙 넘어가는 장면들을 보며 온갖 시름을 잊고 오로지 공연에 푹 빠지도록 하는 것이 마당놀이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이내 꽃가루가 휘날리면서 배우∙무용수들과 함께 어린아이처럼 무대 위를 방방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떠나 현실로 돌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지… ‘이 공연의 뒤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공연 4시간 전

전날 공연의 열기가 가라앉은 극장에 다시 활기가 도는 시간. 공연을 4시간여 앞둔 해오름극장 대기실에 배우와 무용수들이 삼삼오오 들어선다. 10개의 대기실로 통하는 복도에 걸린 의상들이 고운 빛깔 뽐내며 단정한 자태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대분장실에선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을 하는 분장사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일반적으로 메이크업은 앙상블에서 주역 순으로 진행된다. 오늘, 이들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날 배우와 무용수만 무려 42명. 마당놀이의 경우 1인 다역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 공연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같은 시각, 음악이 흐르는 무대 위에선 본격적인 점검이 시작됐다. 음향감독의 오늘 선곡은 재즈. 전체적인 음향 점검에 앞서, 객석 뒤쪽에 위치한 조명 콘솔에선 미리 입력해둔 큐(cue)를 체크한다. 이와 동시에 2시간의 공연 동안 쉴 새 없이 오르내릴 각종 무대장치를 확인하는데, 특히 이번 ‘놀보가 온다’에선 공중에 박을 띄우는 것과 공연 중반 천장에서 색색의 비단을 늘어뜨리는 것이 관건이라고. 통통하고 탐스러운 박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이 시간 가스를 가득 주입하고, 곱디고운 비단 천 역시 하나하나 돌돌 말아 올린다.



무대 위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마이크 음향 점검이 진행된다. 매 공연 빼놓지 않고 34개의 핀 마이크와 50개가 넘는 악기 마이크를 모두 점검한다. 음향 콘솔 가까이 다가가니 핀 마이크를 착용하는 배우 34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1번부터 할게요.” 콘솔에 자리한 음향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 곧바로 음성이 들려온다. “1번 놀보 마이크입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보통 음향과 조명 콘솔은 무대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마당놀이에선 독특하게도 무대 위 가설 객석 G열 가장 뒤쪽에 설치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냐하면 여기가 가장 비싼 좌석이기 때문이죠. 농담이고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관객이 체감하는 소리를 그대로 듣기 위해서예요. 무대 위 배우들과 가까운 위치에서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둘째는 관객의 호응에 따라 감흥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음향감독에게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무대 사방에서 관객들이 박수 치고 웃으며 호응할 때는 배우의 목소리도 좀 더 크게 들리도록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죠. 음향에선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거든요. 배우의 소리와 오케스트라 음악 간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공연 전 분주한 분장실(사진=전강인/국립극장)


#공연 2시간 전

두 달여 장기 공연을 진행하는 마당놀이 출연진에게 콜(call)부터 공연 직전까지의 대기 시간은, 긴장의 연속보다 오히려 아주 평화로운 일상처럼 느껴졌다. 메이크업을 마친 무용수들의 대기실에 침투했더니 “까르르” 웃음소리가 먼저 맞이한다. 저마다 거울 앞에 앉아 머리에 젤을 바르고 곱게 매만지는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드라마 속 생각시들의 방을 엿본 것 같달까.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가 다가가자 각자 여배우 뺨치는 표정 연기를 선보인다.


“부우우웅~” 마당놀이에 웬 바순?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도달한 곳은 바로 관현악단 대기실. 바순으로 착각했던 중후한 음색의 주인공은 저피리였다. 묵직한 저음을 내다가도 “뚜뚜~” 하며 피리 특유의 소리를 들려주니 이만한 팔색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여성 배우들의 대기실을 노크하고 열었더니 웬걸, 치맛자락이 눈앞에 떡하니 펼쳐진다. 금남의 구역답게(?) 치마와 각종 옷가지로 파티션을 만들어 문이 열렸을 때 바로 보일 수 있는 공간을 가려두었다고. 주역 배우들이 사용하는 건너편 개인 대기실은 어떤 모습일까? 놀보 역을 맡은 김학용의 대기실에 들어가 보니 의상 몇 벌과 음료수 두어 병, 휴대전화 충전기와 대본 정도가 단출하게 놓여 있다. 누구보다 일찍 메이크업을 마친 그는 대기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거나 대본을 검토한다고 했다.


대분장실에선 나머지 주역 배우들의 메이크업이 한창이다. 다가가 인사를 건네니 긴장한 기색도 없이 “오셨어. 반가워요~”라며 반겨준다. 한쪽에선 상투를 틀고 있고, 분장을 마친 배우들은 구석에 마련된 토스트와 사탕∙초콜릿∙커피 등 간식을 즐기기도 한다. 특히 땅콩버터와 딸기잼 등이 다양하게 준비된 토스트 코너는 마당놀이의 시그니처라고.



하수 방향 백스테이지로 나서니 RF(Radio Frequency) 엔지니어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데스크에는 배우들이 착용할 무선마이크가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고, 엔지니어는 수십 개의 배터리를 새로 교체하느라 무척 바쁘다. 중앙에 놓인 태블릿PC로는 음향감독 간의 사인이 오간다.


“오퍼레이터와 음향 콘솔, 그리고 여기 백스테이지까지 총 네 명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연결된 태블릿PC예요. 음향을 체크하는 동시에 오더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보통 무선마이크에 사용되는 배터리의 수명은 최장 5시간 정도인데요. 새 배터리라도 어느 정도 충전되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매 공연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줘야 합니다.”


공연 전 악기를 점검하는 관현악단(사진=전강인/국립극장)


#공연 1시간 전

무대에서 악기를 점검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공연 1시간 전을 알리는 신호! 마당놀이를 위해 설계된 독특한 오케스트라 피트에 연주자들이 모이고, 피트가 하강하면 각자의 자리에서 악기를 들어 소리를 확인한다. 오케스트라 튜닝 겸 악기 마이크의 음향을 체크하는 과정이다. 지휘자 계성원의 사인과 함께 연주자들이 본 공연과 동일하게 첫 곡을 연주한다. 오케스트라 피트 옆에선 음향감독이 악기 마이크의 음향을 점검하느라 분주하다. 이렇게 연습이 짧아도 되나 싶지만 숙련된 관현악단이니 가능한 것! 그런데 이들을 관찰하던 중 독특한 장면이 포착됐다. 양쪽에 숨겨진 오케스트라 피트.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수 방향으로 3대의 아쟁, 하수 방향엔 드럼과 키보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대에 반쯤 드러나 있는 연주자가 전부일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 더욱 풍성한 음악을 위해 곳곳에 자리한 연주자가 모두 26명이다.


무대 하부에선 스크린을 통해 지휘자와 무대를 바라보며 연주한다(사진=전강인/국립극장)


대기실에서 휴식을 마친 출연진이 속속 백스테이지에 등장한다. RF데스크에선 마이크를 장착하느라 분주하다. 왼쪽 귀 옆으로 마이크를 걸고 의상 안쪽으로 라인을 쏙 집어넣으니 배우들도 능숙하게 뒤로 돌아선다. “고개 좌우로 돌려보세요.” 움직이기에 불편한 부분이 없다면 이 과정도 수월하게 완료된다.


#공연 30분 전

하우스 오픈. 무대가 정리되면 관객이 입장하기 시작한다. 가설 객석이 설치된 덕에 관객들은 평소 출연진만 드나들 수 있는 무대 출입구를 통과하게 된다. 하우스 오픈 후에도 무대 뒤에선 준비가 계속된다. 배우와 무용수들은 각자의 소품 위치를 점검하고, 자신의 의상을 챙겨 약속된 자리에 옮겨둔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자신의 것이 아니면 구분도 못할 정도. 이와 동시에 백스테이지에는 작은 사무실이 여럿 차려진다. 상∙하수에는 각각 남녀용 임시 탈의실 1개소가 준비되고, 각 파트의 감독들도 작은 테이블을 두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오늘의 엿장수 당번(사진=전강인/국립극장)


몇몇 배우가 짚신을 고쳐 멘다. 마당놀이 또 하나의 재미, 이들이 오늘 엿장수 당번이다. “엿을 잘 팔아야 돼. 내가 어떻게 파는지 오늘 보여줄게”라며 보부상처럼 엿판을 들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나선다. 일부는 로비로, 또 일부는 무대 위로 등장! “저희가 마당놀이 땅콩엿을 팔러 나왔습니다~” 하고 너스레를 떠니 곧이어 북 장단이 뒤따른다. 이들의 흥겨운 구음과 함께 관객과 배우 사이 엿과 지폐가 오가면 프롤로그의 시작이다.


무대에서 타악 울림이 시작되면 마치 파도를 타듯 대기실까지 이어진다. 저마다 문을 열고 나와 복도에 나란히 쌓여 있는 소고와 북, 상모를 하나씩 들고 판으로 나선다. “파이팅!” 소리에 드디어 공연의 막이 오르려는 모양이다.


대분장실에서 마지막 점검이 한창이다. 서로 머리 모양을 만져주기도 하고, 무대에 오르기 전 분장을 마무리하는 모습이다. 전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던 흥보 처 역 서정금이 “다녀올게~”라며 문을 나선다. 흥보 역을 맡은 유태평양의 뒤를 따라 백스테이지를 지나쳐 극장 로비로 향했다. 걸음걸음마다 마주치는 관객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정겹게 인사도 건네고,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요?”라는 관객의 요청에 기념사진 촬영도 서슴지 않고 오케이. 한구석에선 상모돌리기를 연습하고, 엿 판매를 마무리하고, 목청을 틔우는 가운데 마이크 점검까지 마치고 나면 힘찬 구령과 함께 길놀이를 시작한다.


#막이 오르고

점검, 또 점검. 거듭 확인을 거쳐 막이 오르면 백스테이지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유독 장면 전환이 잦은 마당놀이기에, 무대 옆엔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바탕 뛰고 들어온 배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상모 끈을 감고, 그 옆에선 분장사가 땀을 닦아준다. 배우들이 사용하고 들어온 팻말은 다음 신(scene)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스태프에게 착착 건네져 정리된다. 한 장면을 마치고 배우와 무용수들이 우르르 뛰어 들어오면 한 명은 저고리를 갈아 입혀주고, 한 명은 생수병을 들어 바로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말없이 눈빛과 타이밍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마당놀이 전담 드림팀!


마당놀이의 완성은 무대 뒤의 숨은 응원, ‘방창’이 있기에 가능하다(사진=전강인/국립극장)


이윽고 다섯 번째 노래 ‘흥보가 건너간다’가 시작되자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스크린에 띄워진 지휘자의 모습을 보며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극의 상황을 보충하기 위해 배우들이 무대 밖에서 노래하는 ‘방창’. 무대에서 퇴장한 뒤 지친 기색에도 마이크 앞에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힘차게 노래하는 배우들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기서 놀라기엔 끝이 아니다. 공연 시작 40분 뒤, ‘흥부놀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비’의 등장을 위해 와이어가 준비됐다. 하늘하늘한 의상, 높게 세운 머리 장식을 갖춘 무용수가 발판 위에 올라서자 두 명의 스태프가 바짝 붙어 와이어를 매달고, 행여나 의상이 어딘가에 걸릴까 치맛자락 끝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고도가 꽤 높은 탓에 무섭지 않으냐고 무용수에게 질문하자 “처음엔 그랬는데 이젠 괜찮아요. 오히려 공중을 나는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도르래를 살짝 당겨 장치의 이상 유무를 확인한 뒤, 그 높이가 아득해지면 준비는 끝. 스크린을 통해 장면을 확인한 뒤 정확한 타이밍에 둘레막 한쪽을 열어젖히면 한 마리의 새처럼 눈 깜짝할 사이 공중을 가로질러 무대 반대편으로 날아간다.


마당놀이 대분장실에 들어서면 두 달여 공연 일정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담당 프로듀서는 “처음 일주일은 죽을 것 같았다”라고 시작을 회고한다. 백스테이지 취재가 있던 날은 딱 전체 공연의 중반을 넘긴 시점이었다. 53일간 46회. 겨우 23회를 공연하고 나서야 배우도 스태프도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고 말한다. 오직 이 공연만을 위해 꾸려진 것 같은 드림팀은 쉽게 완성된 것이 아닐 터다. 철저하게 설계된 큐에 따라 무대는 완벽하게 준비되지만, 그것을 매회 공연으로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출연진과 제작진의 몫이다. 커튼콜의 함성과 박수는 무대 뒤 모든 제작진에게 보내는 관객의 응원이다.


글 김태희 국립극장 홍보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서울문화재단을 거쳐 「미르」 제작을 맡고 있다. 2015년 제12회 SPAF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미르」 2017년 2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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