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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Feb 01. 2018

무대 위 상상을 펼치다

음향감독 지영


그는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잠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부지런히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참 재미없게 일만 하며 살았네요.”


학창 시절 음악에 빠져 음향을 만나게 됐고, 어느새 15년이 흘렀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던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만든 밴드로 시작해 국립경찰교향악단과 음향 관련 회사를 거쳐 국립극장 음향실에 이르기까지.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부지런히 걸어왔다.


그는 요즘 매일같이 하늘극장으로 출근한다.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의 음향감독으로 지난해 12월부터 거의 석 달 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중이다. 원형 극장 특성상 객석 위에 음향 콘솔이 위치하는데,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아래로는 무대의 배우들을, 위로는 스무 명 남짓한 악단 연주자들을 챙겨야 한다. 마당놀이에선 음향감독도 한 사람의 배우가 된다. 관객의 반응을 살펴가며 30개 넘는 핀 마이크와 50개 남짓한 악기 마이크를 섬세하게 조절해 감흥을 이끌어낸다. 무대 사방에서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웃을 때면 배우의 목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리도록 조절하는 동시에 악단과의 음향 밸런스도 맞춰야 한다. 눈은 무대 위에, 귀는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손은 콘솔 위에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음향감독의 업무는 크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할 수 있어요. 하드웨어라 함은 공연의 장르와 규모에 따라 콘솔·스피커 등 장비를 배치하는 일이죠. 음향 시스템을 디자인한다고 해요. 공연의 특성에 따라 음색이 고르게 편성될 수 있도록 스피커의 위치를 설계하고, 효과용 스피커는 어디에 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지 등을 조정하는 작업이죠. 소프트웨어라 표현한 건 ‘음향 디자이너’의 역할을 말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창극 ‘산불’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어떻게 달리 표현할지, 과거·현재·미래 시점 혹은 액자식 구성을 음향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소리를 디자인하는 일이죠. 음향으로 작품의 시공간을 구현하는 겁니다.”


여러 장르의 공연이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극장의 특성상 음향감독의 손은 창극·무용·국악관현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로 뻗어나간다.


“창극은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서양 오페라처럼 자연스러운 음향을 요구하는 전통 창극과 뮤지컬처럼 대중적인 노래, 화려한 무대가 특징인 창작 창극으로 구분돼요. 전자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듯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음향을 요구하면서도 극적인 장면에선 강조가 필요해 다이내믹 레인지가 무척 넓죠. 그래서 극의 흐름을 분석하고 배우의 호흡에 맞춰 실시간으로 레벨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창극 ‘메디아’처럼 송스루 형식의 창극에선 대사 전달이 관건인데요. 반주나 효과음이 대사와 노래를 방해하지 않도록 밸런스를 유지하면서도 강조할 부분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기술이 필요하죠. 무용도 창극과 마찬가지로 드라마가 핵심이기 때문에 음향에도 기승전결을 구성하려고 해요. ‘향연’의 경우 녹음된 음악을 사용하는데, 정적으로 시작해 화려하고 웅장하게 끝나도록 컴필레이션(compilation)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국악관현악은 악기 마이크가 가장 중요한데, 합주를 위해 연주자들이 하모니를 만드는 것처럼 음향 역시 각각의 악기가 서로 침범하거나 방해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의 강점은 단연 ‘경험’이다. 질문할 때마다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그에게 음향감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좋은 공연을 많이 봐야겠죠. 관객이 좋아하는 공연, 흥행하는 공연을 보면서 어떤 점이 사람을 매료하는지 전체 그림을 살펴보는 게 필요해요. 그래야 다방면으로 고민하게 되고, 실제로 구현할 수 있지요. 또, 무대를 바라보며 상상력을 활짝 펼쳐야 합니다. 무대 세트와 장치는 공간을 구현하고 조명은 빛으로 극의 심리와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음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로 시공간을 표현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시도해야 하죠.”


스스로 “일만 하며 재미없게 살았다”라며 운을 뗐지만 그의 이야기는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그 모든 에피소드에는 땀방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 나는 자연스레 답했다. “일이 너무 재밌었던 건 아닐까요.”


글 김태희 국립극장 홍보팀 |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미르」 2018년 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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