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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Dec 01. 2017

관계를 통한 예측

CRM 마케팅 최성민


반듯하고 선한 인상을 지닌 청년의 포부는 극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뽀얀 피부에 포마드를 발라 앞머리를 살짝 올려붙이고, 하얀 셔츠를 반듯하게 갖춰 입었다. 상대가 질문하면 경청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상체를 상대에게 조금 가까이 기울인다. 동그랗고 얇은 테의 안경이 반듯하고 선한 인상에 썩 잘 어울린다. 망설임 없이 딱딱 부러지는 대답이 유쾌하다. 그는 국립극장 CRM 마케팅 담당자다.


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을 준비하던 때부터 그는 매일매일 바빠 보였다. CRM을 담당한다는데, 대체 그 업무가 무엇이기에 저렇게나 동분서주하는 것일까. ‘묵향’ 공연이 있던 날, 짬을 내어 그와 마주 앉았다.

“대체 CRM이 뭔가요?” 그는 준비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준비해 온 멘트를 줄줄 읊었다. “CRM은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고객관계관리’라고 해요.” 그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할 리 없다. “뻔한 질문에 뻔한 얘기 말고, 실제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멋쩍은 표정이지만 싫지 않은 눈치다.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증권사나 은행에서는 이미 널리 사용하고 있는 마케팅 방법이에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마케팅 방법이 아니라, 특정 대상을 찾아내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예요. CRM이란 관객의 성별, 연령, 예매 채널, 거주지, 장르 선호도, 패키지 구매 여부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극장과 관객의 관계를 분석하는 시스템이에요. 관객이 왜, 무엇 때문에 우리 극장을 이용하는지까지 분석할 수 있죠. 롱테일 법칙이 아닌, 파레토 법칙에 의거한 방법이죠.”


잠시 당황했다. “무슨 법칙이라고요? 저는 그보다, 다른 공연장도 이걸 하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국내의 유사한 공연 관련 기관 중에 CRM 마케팅을 하는 곳은 몇 안 될 거예요. 자체 예매 시스템이 있어야만 가능한데, 대부분 대기업의 티켓 예매 시스템에 위탁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CRM 마케팅이야말로 공연장의 색깔을 살리고, 고유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극장의 관객이 어떤 성향인지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국립극장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실제로 공연을 보러 찾아오는 거잖아요. 우리는 이들을 파악해 극장에 더욱 자주, 편하고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죠. 그냥 공연 한번 보는 것이 아니라, 국립극장에 처음 방문한 관객이 다시 한 번 찾아오도록 하고, 점점 더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나아가 공연예술 애호가가 될 수 있도록 관객을 발굴하는 것. 이 역시 극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포부가 남다른 그는 2014년 9월, 국립극장과 마케팅 업무로 연을 맺었다.


“‘단테의 신곡’이 처음이었어요. 간간이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의 마케팅이나 국립극장 겨울축제, 문화 바우처 같은 사업도 함께 진행했지만, 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마케팅을 담당했죠.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맡으면서 CRM 마케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대중음악 콘서트나 뮤지컬에 비해 전통음악은 관객 저변이 넓지 않잖아요.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쳐야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올까,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국악학원·국악오케스트라·동호회 등 전국 곳곳에 연락도 해보고, 모객이 안 될 때면 밤잠을 설치기도 했죠. 관객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정확한 타깃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그때 어려움을 느낀 부분들을 지금 CRM 시스템에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죠.”


국립극장은 2016년 초 사전조사를 마치고 같은 해 12월 CRM 시스템 개발을 마쳤다. 시범 운영과 시스템 수정·보완을 거쳐 올해 7월, 새로운 티켓 예매 시스템과 함께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공연장에서 CRM 마케팅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공연장 실정에 딱 맞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CRM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우리 극장의 동료들이 CRM 시스템을 많이 사용하고, 활용해줘야 해요. CRM은 빅데이터처럼 많이 이용할수록 경험이 축적돼 이를 토대로 시스템을 고도화할 수 있거든요. 공연을 위한 마케팅이 프로모션·광고·판매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라면, CRM 마케팅은 그 결과를 가지고 극장 전체 상황을 바라보는 일이에요. 함께할수록 더 빨리, 수월하게 할 수 있겠죠?”


글 김태희 국립극장 홍보팀 |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미르」 2017년 1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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