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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Nov 29. 2017

엄마의 마음으로

국립무용단 총무 변승희

인터뷰 내내 그녀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더 많이 걱정하고 아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직원으로서 극장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극장사람들’ 인터뷰를 진행할 때면 으레 던지는 질문에 그녀는 여태껏 보지 못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고민에 빠진다.


“극장에 바라는 거요? 그런 게 있을까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또다시 깊은 침묵) 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러고 보니 늘 단원들 걱정만 했던 것 같네요.”


남다른 ‘기럭지’ 덕에 종종 국립무용단 단원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드는 그녀. 2012년 5월부터 국립무용단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변승희 총무다. 대학 때까지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실은 발레와 현대무용을 더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어떻게 ‘총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총무로서 제 업무는 공연을 제작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에요. 공연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죠. 단원들 의견을 취합해 전달하고, 이들의 행정 업무를 대행하고, 복무 상황을 관리하는 등 모든 절차의 중간에 서 있습니다. 단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줘야 하는 자리이면서 형평성 등의 이유로 업무를 칼 같이 처리해야 하는 자리죠. 따로 비서를 두지 않는 예술감독님을 보좌해 단체 구성원과 예술감독님 사이를 유연하게 잇는 역할도 합니다. 아참, 현재 국립무용단에는 인턴단원이 여섯 명 있는데, 이들의 인사와 급여 업무도 맡고 있어요. 해외 투어를 갈 때면 통상 ‘매니저(manager)’로 불리고요. 책임감이 만만치 않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재학하던 스물다섯 나이에 국립극장에 입사했다. 총무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알고 들어왔다지만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어요. 올해로 5년 차인데, 3년 차 될 때까지 사직서를 세 번 썼을 정도니까요. 전환점으로 삼을 만한 경우가 몇 번 있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일이 너무 많고 정신없어서 사직서 내는 걸 깜빡한 탓에 다행히(!) 지금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간을 반추하는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말갛다. 일이 점차 손에 익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생각도 많아진다고 했다. 최근 들어 관심을 두는 이슈는 예술가 ‘복지’다.

“인턴단원의 경우는 개인정보부터 급여까지 관리하고 있다 보니 특히나 많이 생각하게 되죠. 훌륭한 친구들이 많은데 사정상 2, 3년 지나 헤어져야 할 때면 너무 안타까워요. 이전에 모신 윤성주 예술감독님은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을 지내셨는데, 그래서인지 예술가의 복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셨어요. 저 역시 정년에 이르러 퇴임하는 무용수들을 보면서, 그들이 몇십 년간 쌓은 경험을 활용할 통로가 마땅히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대에서 내려온 예술가들이 교육이나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러한 활동이 다시 예술계 전반에 의미 있게 작용하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늘 자신보다 다른 이를 우선으로 염두에 두는 일. 그것이 총무가 갖춰야 할 자질일까.


“공연을 보고 나면 힘들었던 게 싹 녹아내려요. 거기서 힘을 얻어 꾸준히 일하는 것 같아요. 업무로 갈등을 겪은 단원이 무대에서 누구보다 멋진 모습을 보여줄 때, 연습 중 부상당해 걱정하던 단원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칠 때, 정말로 뿌듯해요. 저는 아이가 없어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엄마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대화를 나누는 내내 이러다 너무나 모범적인 직원 인터뷰가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던 찰나.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그녀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저뿐만 아니라 전속단체 총무들의 노고를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총무라서 힘든 점이 정말 많은데, 사실 가려진 존재라 저희를 아는 분이 거의 없을 거예요. 이 인터뷰를 통해 ‘총무’의 존재와 하는 일만 알아주셔도… 더 바랄 나위가 없겠네요.”


이제나저제나 한결같은 마음, 그녀가 지치지 않고 일하는 비결이지 싶다.


글 김태희 국립극장 홍보팀 |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미르」 2017년 1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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