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이라는 딱딱한 단어보다는 '노동요'라는 정겨운 표현이 좋다. 모두가 새마을 운동모자를 쓰고 논 밭에서 노동요를 들으면서 일하다가 꼭 같이 새참을 먹을 것처럼.
우리는 랜선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단절되어 있다.
초연결 시대에서 느끼는 허전함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감정을 종종 느낀다.
마치 엘피판을 세련되게 틀어주는
재즈 힙합 DJ의 음악 같다
1. 저음질을 뜻하는 음향 용어이자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음악 장르. 저가의 녹음 장비를 이용하며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가 특징이다.
<네이버지식백과>
2.
이후 1990년대부터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인식되며 록, 힙합, 재즈 같은 여러 음악 장르에 활용됐다. 깔끔하고 선명한 음질을 추구하는 음악과 결을 달리하는 꺼끌 거리고 긁어대는 소리와 잔잔하고 조용한 비트로 색다른 음악을 탄생시키며 점점 마니아층을 늘려왔다.
<노블레스>
그럴 때면 킨다. 로파이 채널을.
이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다한다. 첫 번째는 노동요로서의 탁월한 역할. 두 번째는 9천 명이 함께 로파이 채널에서 음악을 실시간으로 들으며 작업하면서 가장 얇은 선의 유대를 잇는다.
로파이는 로 피델리티(low fidelity)의 약자이다. 고음질을 뜻하는 하이파이(hi-fi)와 달리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구현한다. 랩과 가사에 지쳤다면, 끝을 달리는 하이파이의 분주함이 싫다면. 로파이를 틀어보시라. 낮은 음역대는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면서 간간히 들리는 비트와 멜로디는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노동요로는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온갖 뉴에이지 음악을 찾아 돌아다니며 집중을 하기 위한 'flow'라는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놨지만, 이마저 너무 질려버렸다. 그동안 히사이 조, 어쿠스틱 카페, 에딘 히겐스 트리오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요새는 작업할 때, 책을 읽을 때, 글을 쓸 때, 쉴 때 로파이 음악을 틀어 놓는다.(거의 무엇을 하는 모든 순간에) 이어폰을 지나서, 스피커를 거쳐서 나오는 로파이 음악은 장소를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특별한 힘이 있다. 꼭 현실 세계에서 인스타 필터를 끼워 놓은 듯이, 지금 있는 장소를 작업에 집중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자주 듣는 몇몇 채널을 소개하자면,
1. ChilledCow / 구독자 298만
https://www.youtube.com/watch?v=hHW1oY26kxQ
로파이 음악을 들려주는 채널에선 가장 큰 채널이자 실시간으로 수많은 채팅이 오고 가는데. 그중에 보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 그리고 정체모를 언어들로 채팅방에 대화가 오고 간다.(흡사 다국어 아무 말 대잔치) 가장 자주 가는 채널이고 저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이 계속 나오는 데 은근히 중독성 있어, 이 썸네일을 클릭하기도 한다.
2. Fantastic Music / 33만
https://www.youtube.com/watch?v=GGBm9gTY2NU&t=1602s
스트리밍의 재미는 없지만(왜 스트리밍이 재밌냐고 물어본다면 직접 칠드 카우에서 멍 때리며 채팅방을 봐보시라. 그만한 소소잼이 없다), 꽤나 괜찮은 재즈 힙합 로파이 플레이 리스트가 있다. 음악이 30분 정도 있다가 끊기니 플레이리스트를 통으로 틀어 놓는 것도 꽤나 괜찮은 팁. 밤에 틀어 놓으면 너무 치명적이니 조심하세요.
3. Chillhop Music / 222만
https://www.youtube.com/watch?v=bebuiaSKtU4
Chilledcow에 공부하는 소녀가 있다면 Chillhop Music에는 노트북 하는 너구리가 있다. 여기도 로파이 음악을 틀어주고 살짝 루즈한 비트의 로파이 음악이 주로 선별된다. 책 읽거나 쉴 때 듣기 좋다.
리스트 설명에 'studying / chilling / working'할 때 듣기 좋은 로파이 음악이라고 써져 있는데, 엄연히 따지면 이 세 가지 목적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뭔가 어정쩡한 음악 같다는 느낌도 있다. ChilledCow의 꽤나 괜찮은 대체제이지만 보완재까지는 되지 못한다.
플레이리스트에서 한 단계 넘어 로파이 아티스트를 알고 싶어 진다면(지금 내가 이 단계!),
두 아티스트를 추천한다.
#1 일단 가장 많이 알려진 'Mellow Fellow'
https://www.youtube.com/watch?v=Ew6-ZsLToIg&feature=youtu.be
로파이 추천 아티스트로 처음 알게 됐는데, 당연히 일본 쪽 아티스트일 줄 알았는데. 필리핀 마닐라 출신 밴드였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편협한 세상에 살았나) 의외로 로파이 인기 밴드들은 동아시아 출신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밴드 이름처럼 달달한 멜로팝, 드림팝 장르의 음악을 선보인다. 이번 주말은 'dancing'에 빠져 지내겠구나. 이른 봄 햇살 갬성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사운드.
#2 Sunset Rollercoaster落日飛車
이 밴드도 이름만 듣고선 일본 밴드인 줄 알았다(당연히. 심지어 한자 이름까지 4 글자니까).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니 이는 영문 이름인 Sunset Rollercoaster의 대만 이름인 落日飛車가 함께 붙여진 이름이었다.
'My Jinji'를 듣고 한 방에 꽂혀버렸다.
"특히 <Jinji Kikko>에서는 전보다 신시사이저에 많은 비중을 뒀는데, 그래서 많이들 일본의 80년대 시티팝이 떠오른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희는 트로피컬 록(Tropical Rock)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오후의 바람, 따뜻한 햇살, 간간이 퍼붓는 소나기 같은 낭만적인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요."
-<인디포스트> 인터뷰-
신시사이저 때문이었나, 당연히 일본 밴드인 줄 알았다. 음악 후반부에 격양되다 짠 하고 끝내는 게 이 노래의 킬포. 알고 보니 한국에서도 공연도 하고 인기도 꽤나 많은 밴드였다. 개인적으로 초기 음악보다는 'My Jinji'가 실린 EP <Jinji Kikko>가 취향에 더 가깝다.
Sunset Rollercoaster落日飛車 – My Jinji
https://www.youtube.com/watch?v=BrF2DQW-vps
감정의 허기를 달래주기엔 '로파이' 음악이 요새는 딱인 것 같다. 작업의 외로움도 혼자 있는 허전함까지 산뜻하게 채워주는 음악이랄까. 혼자서 외롭거나 함께여도 고독한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장담컨대 다가오는 봄의 갬성을 한 층 더 채워줄 음악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