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을 좋아한다. 광화문에는 내가 좋아하는 예술영화관부터 시작해서 전시회 그리고 서점까지. 심지어 곳곳에 숨어있는 카페들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광화문에 자주 가는 사람들이면 이 곳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안다. 그리고 이 곳이 얼마나 다양성의 집합 인지도 알게 된다. 종로 근처에 살던 시절, 나는 주말마다 광화문을 향했지만 토요일에는 웬만하면 가질 않았다.
토요일 광화문에는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이념이 날짜를 바꿔가며 매주 집회를 연다.
그중에는 내가 옹호하는 집단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집단도 퍽 많았기 때문에 교통 체증을 피하려고 가지 않는 선택을 했다. 그 여러 시위들 중에 유난히 마음이 아팠던 시위들이 있었다. 해고 노동자,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여성 낙태 등 모두 불합리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에 대해 관심이 적었다.
사실 그들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세상에서 들려오는 모든 통증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없었다. 그들의 고통을 인내하며 듣기엔 나는 너무 바빴고 할 일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간 너무나 많은 아픔이 나에게 들어올 것이라는 걸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너무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다고 여겼다. 사실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너무 아프고 힘든 사람들. 불합리한 제도하에 고통받는 사람들. 내가 도와줄 일은 많지 않았기에 고개를 돌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서명과 기부금을 내는 그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은 오만이었다. 내가 갖는 관심과 주위 사람들의 대화가 작은 시작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 선뜻 나서질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토록 바라고 있다. 기부를 하고 기증을 하고 후원을 하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공동체가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내 주위에는 크고 작게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또 그 고통을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다.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 등장하는 성소수자가 주위에 있다. 동성애는 의학적으로 정해진 질병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이미 오래전에 의학계에서는 내려진 결론이지만,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는 전환 치료 등 동성애를 하나의 정신 질환으로 취급한다.
나는 사실 부끄럽지만 적지 않은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부끄럽다고 쓴 이유는 지금은 자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활동했었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에서는 1주일간 일본 대학생들과 함께 피스로드에 참여하면서 한 주제로 함께 고민했었다. 그 계기를 이어서 중-한 번역 봉사도 참여했다. 더불어, 대학생 때 태국으로 여행 갔을 때는 시간을 내어 야생동물구조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그곳에서 정말 멋진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희망이었고 이상향이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분들이었기에 언젠가는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직접 만난 이기적 이타주의자들이었다.
김승섭 교수님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회 곳곳의 아픔에 대해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의 목소리 덕분에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