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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태태 Jul 10. 2019

낡은 자신을 소환해 죽여야만 비로소 새롭게 태어날수있다


사람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들의 트라우마는 왜 오래도록 우리를 괴롭히는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나의 트라우마는 너무나 컸고 가족들에 관한 트라우마가 다수를 차지했기에, 나는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나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그들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한계치에 다다랐음을 최근 많이 느꼈다. 


가족과 함께 상의하고 논의해봐야 할 일들이 부쩍 많아지면서 나는 너무나 힘들었다. 부모님이 나를 대하는 변함없는 태도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겪게 되는 아픔이 너무나 선명했기에. 나는 회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서였는지 깊은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졌다. 운동을 아무리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를 더욱 몰아붙였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나의 트라우마를 피하려고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너무나 쉽게 부서질 테고 오랫동안 회복하지 못할걸 너무 잘 알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장 해결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름 이런 아픔과 트라우마는 왜 나를 괴롭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지인에게 추천받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장에 줄을 치는 내내 가슴이 아파왔다. 어렸을 적 내가 떠올랐고 여전히 힘들어하는 나를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는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인생의 중간 항로에서 겪는 여러 심리적 문제들을 다뤘다.(여기서 중간 항로는 마흔을 뜻하는데, 인생의 변곡점이나 전환점으로도 볼 수가 있을 것 같다. 굳이 마흔이 아니더라도 많이 공감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중간 항로를 의미 있게 만드는 첫 단계를 '가족과 문화로부터 얻은 렌즈가 실은 완전하지 않으며 세상의 일부만을 보여준다는 사실, 그리고 불완전한 렌즈를 통해 결정을 내려왔고 그 결과 때문에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형성된 자아와 성격의 많은 부분은 부모와 함께한 환경에서 만들어졌고, 현실에 짓눌리는 아이는 자신의 연약한 경계를 뚫고 타자가 침범해오는 강렬한 아픔을 경험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얼마나 강렬하고 아픈지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사례로 나오는 한 여성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자기 파괴적 인식이 강하게 심어져 있었다. 자신을 '사랑받아본 적이 없고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내가 힘들어하는 어렸을 때 경험이 나는 그때 겪고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생각보다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고 무기력함에 빠지게 만들었다. 가족에 관한 트라우마로 나는 아이가 싫어졌고 앞으로도 가질 생각이 없다. 어릴 때 부모님은 나와 오빠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싸웠고, 그때 나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었다. 너무 연약했고 힘이 없었기에.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싫었다. 


내가 갖고 있는 방어적인 성격은 어디서 왔을까 살펴봤다. 저자는 성인기의 성격은 어린 시절 상처에서 나온다고 하며, 일련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초기 경험과 트라우마에 대한 반사 반응에 가깝다고 한다. 내가 조금 더 화목한 집에서 자랐거나, 나의 선택들이 조금이라도 존중받았거나, 엄마가 조금이라도 집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살았더라면 나도 화목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으로 자랐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그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뒤를 따랐다.



문제는 우리가 콤플렉스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콤플렉스가 우리를 소유하는 데 있다.


저자는 우리가 불가피하게 콤플렉스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콤플렉스가 우리를 소유한다는 것에 있다. 개인의 선택을 방해하고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콤플렉스도 있다. 나의 경우도 깊이 뿌리 박힌 트라우마들로 일상생활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오랜 시간들이 축적되어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다. 요새 내가 힘든 이유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과 비슷한 감정들을 느껴, 과거와 똑같은 반응을 일으킨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소설가 헤밍웨이와 카프카의 부모님 콤플렉스도 집필한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헤밍웨이 소설 속 마초 영웅들은 어린 시절 자신에 대한 과잉보상을 표현한다. 카프카는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주눅이 든 나머지, 우주 자체를 강력하고 냉정하며 무관심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들이 지닌 창조력의 주요 모티프와 형태가 바로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부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보상하며 이를 초월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인간은 낡은 자신을 소환해서 죽여야만
비로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나는 나의 불안과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나를 몰아붙이거나 타인에게 날을 세웠다. 최근에 가족들과 대화가 많이 지면서 잦아지는 마찰에 견디기가 힘들다. 한 가지가 넘어가면 다른 일들이 찾아온다. 최대한 좋게 좋게 넘기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 속에서 나는 어렸을 적 부모님과 나눴던 대화 그리고 받았던 수많은 상처들이 내 안에서 반등했다. 책을 방금 읽기 시작했지만 계속 기대되는 책이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에는 조금이라도 나를 이해하고 내 트라우마를 이해했으면 좋겠다. 설령 치유되지는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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