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되고 싶은 당신이 길러야 할 '관찰력'
창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관찰'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김중혁
김중혁 작가의 글쓰기 조언이 담긴 책에서 건진 문장이다. 소설가와 에세이스트로서 활동하는 그의 창작 원동력은 '관찰'에서 나온다고 한다.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도 많이 느낀다. 우연히 본 영화 혹은 책이 기억에 남아 새로운 글로 탄생하거나, 콘텐츠로 만들어진 적이 꽤나 많다. 그뿐만 아겠는가. 무언가를 관찰하는 일은 너무나 재미있다.
카페에서 작업하기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멀리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아이 한 명과 아빠를 보면 이들은 왜 일요일에 자주 이 카페에 오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아이는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고 있고 아빠는 노트북을 가져와 밀린 일 혹은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노는 게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기 때문-! 주말에 아이와 혼자 카페에 온걸 보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데려온 걸 수도 있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흔히 여행지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 얼마나 알고 가느냐에 따라서 많이 이해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더불어, 어떤 전문가의 시선으로 한 가지 현상을 봤을 때, 일반인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로 해석된다. 흔히, 건축가들의 여행기를 보면 그들에게는 건물이 하나의 물체가 아닌, '이야기'가 된다. 이 건물은 언제 지어졌으며 어떤 양식이며 어떤 기법으로 만들어졌는지. 섬세하고 자세히 건축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거리를 이런 전문가들과 함께 걸으면 어떨까? <관찰의 인문학>에서는 지질학자, 타이포그라퍼, 일러스트레이터 등 9명의 전문가와 저자의 아이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전문가의 관점에서 세세하게 길에 녹여 있는 특정 분야의 사실을 위트 있게 서술한다. 실제로 이 책에는 사진 한 장 없지만, 그 어떤 책 보다 전문가들이 묘사하는 길거리가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진다.
가장 흥미로웠던 전문가를 꼽자면, '타이포그라퍼 폴 쇼'와 함께 걸었던 산책이었다. 저자와 폴은 한 건축 갤러리 문 앞에서 평범하게 적힌 간판을 보았다. 저자는 글자를 읽었지만, 폴은 글자뿐만이 아니라 '레터링'을 함께 읽었다.
"헬베티카로군요. 이런 간판에서 평범하게 예상할 수 있는 거죠" 헬베티카는 건축가들이 즐겨 쓰는 글꼴이다.
"그러고는 어도비 가라몬드를 또 이탤릭으로 썼고요. 자간이 영 별로네요"
세 번째 산책, 타이포그라퍼 폴 쇼와 함께 <관찰의 인문학>
그는 타아포그라퍼 관점에서, 간판들이 어떤 폰트를 썼고 어떤 레터링으로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해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간판의 글씨들이 단순한 알파벳의 나열이 아닌 '레터링'으로 느껴진다. 더욱 재밌었던 부분은 그가 간판을 넘어서 '레터링'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다. 작가는 멋진 간판을 보고는 흡족해하고 특색이 없는 간판을 보면서 따분해하는 폴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쇼의 시선이 간판만의 독특한 개성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따분한 비닐 간판들 사이에서 용감무쌍하게 개성을 뽐내며 서 있는 간판의 모습이 흡족하게 느껴졌다.
세 번째 산책, 타이포그라퍼 폴 쇼와 함께 <관찰의 인문학>
평범한 AQUARIUM 간판에서 그는 'Q'가 얼마나 특별한지 이야기해준다. 일반 Q와 달랐던 점은 그 간판의 'Q'는 꼬리가 안으로 들어가 있다는 부분이었다. "평범한 과거의 간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저 Q가 완벽한 사례죠." 그는 이런 Q를 처음 본다고 했다.
타이포그라퍼인 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처음부터 저런 기질이 타고났을까? 세상에는 많은 전문가가 있지만(흔히들 이야기하는 전문 분야), 특출 나게 뛰어난 전문가에겐 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관찰력'이다. <관찰의 인문학>에서는 관찰을 통해서 우리가 지나쳤던 일상들 속에서 알 수 있는 수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려주는데, 이건 모두가 '관찰'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들이다.
어떤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사실만 알고 있어도 화제를 따라가기 훨씬 쉬워진다. 그 최소한의 사실이 점차 발전해서 지식의 호수를 이루게 되면 우리는 전문가를 자처하며 그 사실을 지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전문성을 얻음과 동시에 우리가 보고 듣는 것에 변화게 생기고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도 달라진다.
무용 공연을 보는 무용가의 뇌는 보통 사람들의 뇌보다 훨씬 활발한 운동을 보인다. 일단 전문성이 생기고 나면 이윽고 더 큰 전문성으로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두 번째 산책, 지질학자 시드니 호렌슈타인과 함께 <관찰의 인문학>
책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밑줄을 그었다. 저자는 함께 산책하는 전문가가 그저 지식의 축적만으로 전문가가 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관찰을 하다 보면 우리는 어떤 분야의 호기심을 갖게 되며 '최소한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최소한의 사실에서 호기심이 더해져 얕았던 지식이 넓고 깊은 지식으로 변해간다. 그저 정보를 쌓아 올린 전문가와 관찰과 함께 공부해온 전문가들은 지식의 넓이와 폭이 남다르다.
아는 만큼 보인다?
관찰한 만큼 알게 된다.
<관찰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문장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다. 이제는 조금 더 다르게 쓰고 싶어 졌다. '관찰한 만큼 알게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서 관찰과 정보 축적을 함께 하게 된다면, 우리가 몰랐던 부분 그리고 원래 갖고 있던 프레임 외의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흔히들 21세기가 정보의 시대라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의 화두 속에도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범용적으로 흔히 알 수 있는 정보 외에, 자신만의 전문 분야에를 더욱 견고히 쌓아 올리려면 꼭 필요한 능력은 바로 '관찰력'이다. 정보에 관찰이 더해지면, 평범한 'Q'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타이포그라퍼 '폴'처럼, 지식이 상충되면서 스파크가 일어나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일어나게 될 테니까.
일상은 여행처럼
여행은 일상처럼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
유년 시절에는 모든 것이 새롭지만, 나이가 들면 무뎌지는 이유는 '모두 이미 본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마주칠지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른들에게도 새로운 창이 생기는 기간이 바로 '휴가' 때라고 한다. 휴가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새로운 것'을 볼 기회가 많은 환경에 가는 것이다.
그래도 휴가는 우리를 잠시나마 바꿔놓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익숙한 환경을 신선한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는 작은 창 하나가 생긴다는 점이 그렇다.
첫 번째 산책, 아들 오그던과 함께 <관찰의 인문학>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상은 여행처럼, 여행은 일상처럼' 볼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이미 익숙해져 있는 풍경들을 여행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들여다보자. 평소에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관찰력을 기르는 것이다. 여행에서는 여행자의 시선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처럼 이 곳에 어떤 곳이 인기가 많고 어떤 면 때문에 사람들이 사는지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가 '관찰력'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