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설이 되었고 집에서 나온 지 딱 1년이 되었다. 좋지 않은 이유로 나왔고 그만큼 상처도 많고 여전히 그걸로 힘이 들고, 불현듯이 생각날 때면 하루를 다 망쳐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1년이 지났고, 여러 면에서 기록해보고자 글을 쓴다.
겉보기에는 다들 멀쩡해 보이고 별 탈 없어 보이지만 사연 없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최근에 정신과 약을 타 오면서 자꾸 '분노'라는 감정이 올라온다고 의사 선생님이랑 상담을 할 때 말했다. 불교에서는 '분노'라는 감정을 "내 손에 뜨거운 돌덩이를 쥐면서 던지려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만큼 분노는 타인에게 고통을 주기보다는 내가 겪는 아픔이 더 크다. 하지만 나는 분노를 이길 만큼의 멘탈도 힘도 없어졌다. 분노는 나를 태워버렸지만 손 쓸 방법도 없다. 분노가 지나가자 큰 무기력이 찾아왔다. 물리적으로는 분리가 되었지만 정신적으로 완벽한 분리는 불가능하다. 그저 조금씩 덜 신경 쓰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최근에 알 수 없는 편두통이 밀려오면서 새벽 3-4시에 잠에서 깨고 머리가 엄청 지끈지끈 아파와서 고생하고 있다. 결국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는데 약이 좀 세서 오랫동안 오전에 누워 있어야 겨우 일어나고 있다. 여러 모로 쉽지 않은 시기다.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고, 뭘 먹어도 뭘 보고 뭘 해도 시큰둥하다. 내가 먹는 약은 약간 신경을 누르면서 멍한 상태가 되게 만들 때가 종종 있는데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뭐라고 딱 잘라서는 알 수가 없는 게 정신 질환이다. 그래서 약도 본인이 조절도 하고 병원도 바꿔보고 그런 부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병원을 바꾸면서 먹는 약이 줄었고 부작용도 좀 덜해졌다.
작년 이맘때 너무 힘들어서 살면서 이렇게 힘든 순간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겪은 폭력은 하룻밤 이야기였지만, 그 고통은 여전히 생생하다. 1년 사이에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졌고 만나도 크게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희망도 기대도 없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또한 이런 감정을 겪었을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두렵지 않은 상태. 그런 상태가 되면 인간은 자유로울까. 하지만 난 여전히 바라는 게 많고 두려운 것도 많다. 살면서 어떻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태평양을 방황하는 돛단배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언제든 파도에 휩쓸려서 침몰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체가 약해지니 멘탈도 같이 침울하다. 연초에 가장 쌩쌩하고 의욕이 넘치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작년 트라우마를 몸이 기억해서 그런지 명절이 되어서 그런지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힘드니까 글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