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 개선, 역량 관점에서 바라볼 순 없을까
모듈러 디자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구분하면 크게 설계 상의 이익과 밸류 체인 상의 이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설계 상의 이익을 제외하고는 모두 밸류 체인 상의 이익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밸류 체인 상의 이익이 비중이 큰 편입니다.
설계 상의 이익이란 다양한 제품, 신규 세대의 제품을 만들 때 설계 자산을 재사용 또는 공용화하여 설계 리소스, 설계 시간을 절감하는 효과를 말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설계 자산의 반복 사용은 해당 설계 자산의 검증 사례를 늘려서 품질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설계 상의 이익은 품질의 이익으로 연결이 됩니다.
밸류 체인 상의 이익은 제품군을 기획, 설계, 생산, 구매, 생산, 서비스, 폐기하는 과정에서 얻는 직간접적인 효과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품군에서 사용하는 특정 부품이나 모듈을 공용화하여 단일 품목에 대한 생산량, 구매량을 늘림으로써 학습 효과, 구매 비용 절감 효과 등을 얻는 것도 밸류 체인 상의 이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제품의 특정 영역을 모듈화 하고 이를 외주화 하여 내부 고정 비용을 줄이고, 물량에 대한 유연성을 높이는 효과 또한 밸류 체인 상의 효과로 볼 수 있습니다. 익숙하진 않겠지만, 모듈들과 그 모듈에 대한 운영 활동을 디커플링 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 또한 밸류 체인 상의 이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모듈러 건축에서 공장, 오프 사이트에서 사전 제작하여 만드는 모듈, 온 사이트에서 모듈을 연결하여 주택 등 건축물을 만드는 과정은 온 사이트와 오프사이트 사이를 디커플링 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만드는 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익의 종류를 위 두 가지로 나누는 이유는 첫 번째 기구,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종류나 비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기구는 설계 상의 이익, 밸류 체인 상의 이익을 모두 얻을 수 있으나, 후자의 비중이 큰 편에 속하는 반면에 소프트웨어는 밸류 체인 상의 이익보다는 설계 상의 이익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큽니다. 하드웨어 같은 경우는 하드웨어 아키텍처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설계 상의 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밸류 체인 상의 이익을 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기구와 소프트웨어의 중간 정도 위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죠.
두 번째는 의도하는 이익의 종류에 따라서 추진하는 활동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설계 상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면 먼저 재사용하거나 공용화하는 설계 자산을 식별하는 작업이 우선시되어야 하고, 그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어떤 방식으로 산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설계 상의 이익은 일반적으로 비용으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절감된 설계 리소스나 설계 시간을 돈으로 표현하려면 억지로 표현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그 수치는 일반적으로 공감을 얻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10명이서 1년간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던 것을 5명이서 1년간 하나의 제품을 개발한다면 5명만큼의 리소스를 줄였다고 볼 수 있으나, 그들 또한 어디선가는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였다고 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파악하긴 쉽죠. 물론, 동의하느냐는 다른 문제이지만요.
반면에 밸류 체인 상의 이익은 상대적으로 비용으로 표현하기 용이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체로 밸류 체인 상의 이익은 히든 코스트를 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치화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즉, 설계 상의 이익은 리소스나 시간으로 수치화는 할 수 있으나, 비용으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밸류 체인 상의 이익은 비용으로도 표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많은 기업들이 손을 털고 포기하게 됩니다.
취지는 공감합니다. 목적이나 방향성도 동의합니다. 방법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경영 활동에서 효과를 수치화하지 못한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활동 자체를 인정받는 근거를 마련하지 못함을 의미하므로,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단기 과제를 병행해서 활동을 추진하자고 해도 전체 활동에 대한 단기 실적을 뽑아내야 하는 욕구는 전반적인 활동을 왜곡하고, 구호만 모듈러 디자인인 활동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실제로 내비게이션으로 추천 경로만 받고,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 결과를 내놓으라는 식으로 성급히 효과를 내놓길 원합니다. 그리고, 나서 “모듈러 디자인은 효과가 없는 활동이야”라고 포기하게 되죠.
이게 유행처럼 몇 년에 한 번씩 모듈러 디자인이 관심을 받다가 잊혔다가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그와 별개로 복잡성을 절감하기 위한 다양성 관리 활동은 지속적으로 남아있죠. 예전만큼 관심을 못 받을 뿐이죠. 유행과 관계없이 체질 개선을 위해서, 역량 관점에서 모듈러 디자인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