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는 왜 아름다운가
『곤돌린의 몰락』은 제목부터 결말을 드러냅니다.
읽기도 전에 우리는 압니다. 이 도시는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그 느낌은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을 읽었을 때와 비슷했습니다.
역사든, 신화든… 사라질 운명을 안고 있는 찬란한 도시 앞에 우리는 더욱 숨죽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곤돌린의 찬란함은 더 눈부시고, 몰락은 더 깊게 다가옵니다.
이 책은 J.R.R. 톨킨이 남긴 미완성 원고들을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정리해 펴낸 세 번째 유작입니다.
『후린의 아이들』, 『베렌과 루시엔』에 이어 제1시대의 마지막 조각을 채우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이 제3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이 책은 그 신화의 가장 오래된 뿌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투오르(Tuor)"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인간의 운명을 초월합니다.
그는 바다의 발라 "울모(Ulmo)"의 인도를 받아,
신의 메시지를 전하러 엘프들의 숨겨진 도시 곤돌린으로 향합니다.
그 순간부터 곤돌린의 몰락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투오르는 예언자가 되고, 사랑에 빠지며, 결국 파멸의 그림자를 마주합니다.
그는 전사라기보다는 운명을 전하는 자이자 관찰자,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희망의 불씨로 존재합니다.
곤돌린은 톨킨 세계관에서 가장 신비로운 도시입니다.
중간계의 비잔티움이라 부를 만한 그곳은 산맥과 협곡에 둘러싸여 외부로부터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고, 내부에는 평화와 예술, 질서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립은 곧 나약함과 자만을 불러왔고, 도시의 종말을 재촉합니다.
결국 모르고스의 눈을 피하지 못한 곤돌린은, 발로그와 오르크, 수많은 용들의 습격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톨킨은 이 장면에 1차 세계대전에서 겪은 전장의 참혹함과 무너진 이상향을 투영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곤돌린의 최후는 더 현실적이고, 더 아름답게 비극적입니다.
몰락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투오르와 그의 아내 이드릴(Idril), 그리고 아들 에아렌딜(Eärendil)은 비상 탈출로를 통해 도시를 빠져나옵니다.
그 길은 단순한 도피가 아닌, 다음 시대를 여는 희망의 길이었습니다.
에아렌딜은 훗날 별이 되어 하늘을 떠돌고, 그의 후손은 『반지의 제왕』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곤돌린의 몰락은 한 시대의 종말이자, 다음 시대의 서곡이 됩니다.
『곤돌린의 몰락』은 “사라졌기에 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곤돌린만이 아니라, 끝내 완성되지 못한 톨킨의 세계관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조국의 신화가 없다는 슬픔 속에서 스스로 신화를 만들어냈던 톨킨.
그가 남긴 세계는 지금도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욱 신화처럼 느껴집니다.
곤돌린은 무너졌지만, 그 이름은 내 마음속 골짜기에서 여전히 은은히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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