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질 즈음, 다시 떠난다

정착하지 못하는 삶이 아니라, 이동하며 쌓아가는 시간

by 심야서점

사주나 점을 적극적으로 믿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재미 삼아 듣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묘하게 마음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제 사주에는 ‘역마살’이 있다고 합니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굳이 믿지는 않지만, 제 이력을 돌아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닙니다.


금요일 밤과 일요일 밤 사이


사회생활은 SI 사업을 수행하던 한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 장기 출장을 경험했습니다.

광주, 진해, 대전...

금요일 저녁에 올라왔다가,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내려가는 생활이 반복됐습니다. 몸이 힘든 것보다도 생활의 리듬이 계속 끊기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출장 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옮긴 대기업 역시 출장이 기본인 조직이었습니다.

창원 출장이 이어졌고, 화요일 아침에 내려가 금요일 오후에 올라오는 패턴으로 바뀌었을 뿐,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출장 중일 때 가장 안정적이다


현재 회사에 들어와서 천안에서 3년을 생활했습니다.

이제 단기 출장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불안정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삶처럼 보이니까요.


그런데 저에게 가장 안정적인 순간은 출장 중일 때입니다.


컨설턴트에게 본사 근무는 대개 프로젝트 공백기입니다.

준비하거나 대기하는 시간입니다.


반대로 출장 중이라는 것은, 지금 제가 필요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기여할 일이 있고, 책임져야 할 과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동 중일 때가 가장 분명합니다.


익숙해질 즈음이면, 끝이 난다


프로젝트는 늘 비슷한 흐름을 가집니다.

처음에는 조직을 파악합니다.

사람을 읽고, 의사결정 구조를 이해하고, 문제의 본질을 찾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 즈음, 프로젝트는 마무리됩니다.

다시 낯선 환경으로 이동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매번 새롭기 때문에 편안해질 틈도 없고, 지루해질 틈도 없습니다.


안정의 기준


주변에서는 이제는 조금 더 안정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안정은 다릅니다.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필요로 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안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이동이 많고 변화가 잦아 보이지만,

스스로의 경쟁력을 축적하며 일하는 이 방식이 오히려 더 단단하다고 느낍니다.


지금 프로젝트 막바지에 이 글을 씁니다.

익숙해질 즈음이면 또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하겠지요.


짐을 완전히 풀어놓지 않는 삶.

하지만 그래서 멈추지 않는 삶.


저는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이동하며 쌓아가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컨설턴트로 살아가는 한 이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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