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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나 혼자 떠난 45일 7개국 유럽여행기

즐기러 갔다가 세상을 배우고 돌아왔다

by 기타치는 권작가
유럽여행, 그게 뭐라고 다들 난리지?
그깟 유럽배낭여행 나도 한 번 가보자!!



여행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언젠간 꼭 해외여행을 떠나겠다는 다짐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20대에는 일에만 매여 살다보니 여행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남 얘기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28살이 되었을 때쯤 갑자기 해외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는 인생을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죽더라도 오늘을 살자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너도 나도 유럽여행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걸 보면서 ‘그게 뭐라고 그렇게들 난리지? 그깟 유럽여행 나도 한번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1년 동안 돈을 바짝 모은 후에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했다. 우선 항공권부터 구매했고 나머지 필요한 경비는 일을 해서 마련하기로 했다. 매달 100만 원씩 저축해서 10개월 만에 1,000만 원을 모았다.


어디를 여행할지 아무 계획이 없었다. 짜인 코스보다는 발 닿는 대로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45일이라는 적지 않은 여행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항공권만 구매했을 뿐 숙소나 교통편도 하나도 예약하지 않고 그냥 떠났다. 비수기라 가능했던 것도 맞지만 어쨌든 내가 가지고 간 건 오로지 배짱 하나뿐이었다.


45일 동안 7개국 20개 도시를 여행하다


유명한 나라와 도시만을 골라 짧게 머물며 최대한 여러 나라를 다닐 생각이었다. 부지런히 다닌 결과 45일 동안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프랑스 등 7개국 20개 도시를 여행할 수 있었다.


여행을 단순히 여행이라고만 생각하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 재미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았던 것들이 기억에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유럽여행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그런 점에서 유럽은 내게 놀이터가 아니라 배움의 장이었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지하철 안에서
왜 그렇게 맨날 졸아?


독일 사람들을 보면 표정에 여유가 가득하다. 모르는 사람과도 서슴없이 인사를 나누고 문 앞에서 마주치거나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서로 양보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독일에 유학을 다녀온 친누나에게 들은 바로는 독일 사람들은 항상 정시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다보니 여가시간이 많았고 그렇다보니 여유가 많은 거라고 했다.


출퇴근 시간에 자느라 정신없는 우리나라 버스나 지하철 풍경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조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 번은 한국에 여행을 다녀온 독일 사람이 친누나에게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조는 거냐고 물으며 상당히 의아해했다고 하는데 그 질문을 독일여행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적절한 노동과 휴식이 보장되어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를 보며 선진국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이, 배경 상관없이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는 독일, 스페인, 칠레, 인도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아무도 국적,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 같이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20대의 어린 친구들뿐만 아니라 60대로 보이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와도 다들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려하거나 또는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이, 직업 등은 묻지도 않고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편안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사람에 대해 아무런 편견을 가지지 않고 다 같이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내 눈에는 굉장히 신기하게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편견 없이 사람을 사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라마다 생각과 문화는 다 다르지만 사람의 배경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보고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꽤나 부러웠다.


외국에서 손짓, 발짓만 잘해도 된다고?
No!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베네치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언어의 중요성도 실감했다. 같이 묵었던 사람들이 전부다 영어를 잘했는데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만 영어를 못했다. 한 때 영어회화 스터디를 조금이나마 했던 덕분에 짧고 간단한 문장 정도는 구사할 수 있었지만 긴 문장은 말을 할 수 없을뿐더러 알아듣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다들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혼자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는 손짓, 발짓으로도 충분히 말이 통하니 영어를 잘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생존을 위한 언어는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만큼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느냐에 따라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순한 여행이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자 했던 터라 그런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았다.

실팔찌 채워주는 남자,
나도 당했다 제길

이탈리아 밀라노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키가 2m에 가까운 거구의 흑인이 나를 보더니

“Hey Korea~”

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악수를 했고 그 흑인은 ‘Gift’라며 내 손목에 실 팔찌를 채워줬다. 그러고는 갑자기 돈을 요구했다. 당했구나 싶었지만 돈을 안 줬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무서워서 1유로를 주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흑인에게서 느꼈던 위압감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유럽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바로 소매치기와 관련된 이야기다. 유럽에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과감히 떠나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걱정한 만큼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사실 소매치기는 자신만 조심하면 당하지 않는다.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방심하다가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위험한 일 없이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매사에 조심했기 때문이다.


유난히 걱정이 많았던 나는 캐리어는 물론이고 백팩에도 항상 자물쇠를 채우고 다녔고 걸을 때도 수시로 옆과 뒤를 살피곤 했다. 여권과 지갑이 들어있는 복대는 24시간 동안 차고 있었고 잠을 잘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절대 빼는 일이 없었다. 나라 간 이동을 위해 버스나 기차를 탈 때도 기둥에 캐리어를 와이어로 묶은 후 자물쇠로 채워놓곤 했다. 이런 치밀함 덕분에 큰 사건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퍽치기와 같이 극단적인 유형의 범죄는 막기 어렵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이다. 나 같은 경우엔 설령 여행가서 죽더라도 그것 또한 내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떠났다. 두려워도 때로는 과감하게 부딪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도 45일간의 유럽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유럽여행을 가서 가장 좋았던 점,
'나도 가봤다'라는 거!


유럽여행을 또 가고 싶지는 않다. 공짜로 보내준다면 모를까 굳이 내 돈 내서 또 갈 생각은 없다. 혼자라서 그런지 너무 심심하고 외로웠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유럽의 멋진 풍경도 좋았고 그 나라만의 특색 있는 음식들도 너무나 맛있었다. 하지만 심심하다 못해 외로움마저 느꼈던 순간들이 많아 마냥 즐거웠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여행을 갔다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유럽여행을 나도 가봤다는 거!’


예전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고 또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질투와 부러움을 많이 느끼곤 했다. 유럽여행도 나에게는 굉장히 부러운 것 중 하나였는데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가끔은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런 유럽여행을 이제는 나도 가봤다는 것이 여행 이후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지금은 유럽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을 봐도, 명절에 해외여행을 간다는 뉴스를 봐도 더 이상 부럽지 않다. 여행 관련 프로그램에서 해외의 멋진 풍경이 나와도 전혀 부럽지 않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 끼어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

‘나는 언제쯤 유럽여행을 갈 수 있으려나.’

하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도 유럽여행을 다녀온 한 직장 동료를 보고 여러 사람들이 “우와~”하고 부러움의 탄성을 질렀는데 나만큼은 여유롭게 웃을 수 있었다. 유럽을 가본 사람으로서의 여유를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


유럽여행은 나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었다


해외여행 한 번 떠나본 적 없던 내가 첫 여행을 유럽으로, 그것도 아무 계획 없이 45일을 혼자 다녔다는 것만으로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스럽다.


유럽여행은 내게 단순한 놀이나 휴식을 넘어 하나의 도전이었다. 단순한 도전이 아닌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생존을 위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 어떤 도전보다도 스케일이 가장 컸던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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