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를 보면 하루 아침에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각종 사건사고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 주위에서 멀쩡한 사람들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를 볼 때면 더더욱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다가올 수 있겠구나.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이란 생각이 들면서 언제 올지 모를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삶이 무한정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 생각했다.
오늘에 살며 현실에 집중하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이다. 문제는 타인에 대한 준비이다. 나는 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특히 가족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에 집중하며 사는 개인적인 차원의 준비뿐만 아니라 가족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미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 중 누군가 죽었을 때 자신을 슬프게 만드는 것은 그동안 담아두었던 말을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좀 더 잘 할걸, 그때 이렇게 해줄걸."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허나 죽어서는 해줄 수 없다. 때문에 살아있을 때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을 하기로 했다.
얼마 전이었다.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말했다.
"엄마,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편지로 쓰면 엄마가 너무 놀랄 것 같아서 이렇게 말로 해보려고 해."
엄마는 조금 놀란 듯이 내게 되물었다.
"어, 뭔데?"
"요즘 사람들이 죽는 걸 보면서 나 역시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미리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동안 미안했다, 고마웠다는 말도 좋지만 내가 죽었을 때 엄마가 괴로움에 빠져 살지도 모른다는 점이 내게는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가 죽어도 너무 괴로워 하지 마. 당장은 슬프겠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살아. 아들이 죽었다고 해서 엄마까지 괴롭게 살 필요는 없어. 내가 죽어도 엄마는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면 돼. 자식이 죽었는데 부모가 웃고 산다고 해서 죄책감 가질 필요 전혀 없어."
엄마는 묵묵히 듣고 있었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엄마, 내가 죽었다고 엄마가 맨날 울고 그러면 내가 좋은 데 갈 수 있을까? 엄마가 웃으면서 살아야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디선가 들은 죽음에 대한 스님의 좋은 이야기도 덧붙였다.
"엄마, 죽은 것과 슬픈 것은 관련이 없대. 죽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슬픈 거래. 예를 들어 내일 아침에 엄마의 친한 친구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슬프겠지? 그런데 그 친구가 죽은 시간이 아침이 아니라 전날 밤, 그러니까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 죽었다고 생각해봐. 실제로 죽은 시간에는 우리가 이렇게 웃고 있는데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면 갑자기 슬퍼지잖아? 그러니까 죽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슬픈 것이지, 실제로 죽음과 슬픔은 상관이 없는 거래. 그러니까 내가 죽어도 죽었다는 생각에 갇히지 말고 엄마 인생 즐기면서 웃으면서 살아. 알겠지?"
내 말을 다 들은 엄마가 말했다.
"그래, 진짜 필요한 얘기인 거 같다. 나중에 아빠랑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엄마도 한 마디 하자면, 만약에 엄마가 죽더라도 절대로 슬퍼하지 마라. 알겠제? 못 해준 거 생각하지 말고 태현이도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
얘기를 나누고 나니 괜히 마음이 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얘기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도,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맞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말하지 않을 때보다는 훨씬 죽음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령 내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가더라도 웃으면서 엄마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가족과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생각때문에 장난으로라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해야 할 때라는 걸 느꼈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하루 아침에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를 가정해서 전하고 싶은 말은 미리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았다. 죽은 사람은 죽어서 좋은 데 가고 살아있는 사람은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평생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 죽어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뿐 나와는 관련없다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죽을지 그 시기를 모를 뿐이지 사람이 죽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원하는 만큼 살다가 죽으면 모르겠지만 사람의 인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돈이 인생의 전부인양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죽으면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좇아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언제 죽을지 모를 우리의 삶을 한 번쯤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족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한 말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도 수 십 명이 죽고 있지만 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 밉니 곱니 해도 가족과 얼굴을 맞대며 얘기나눌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마음을 가져본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설령 누군가가 죽어도 그 죽음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별을 받아 들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