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옷을 입어도 마음까지 채워주진 않더라
옷 안 사고 살아보기
옷에 관심이 많았다. 2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른 건 안 사도 옷은 꼭 샀다.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옷을 구매하곤 했다. 지출 중 주요 소비 항목은 의류비였다. 신발이나 가방은 필요하거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샀던 것과 달리 옷은 조금씩 자주 사기보다는 한 번 살 때 풀세트로 왕창 사는 스타일이다.
보통 계절마다 옷을 사러 갔고 한 번 살 때마다 40 ~ 50만 원 정도 쓰곤 했다. 1년에 구매횟수는 대략 4~5번, 금액은 200 ~ 250만 원 정도 쓰는 셈이었다. 옷 한 벌에 몇 십 만 원이나 하는 것을 구매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리 많은 돈을 쓰는 건 아니지만 보통 남자들에 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을 옷값으로 쓴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웬만한 여성분보다도 많이 쓰는 걸지도 모르겠다.
옷 사는 비용을 조금 줄여볼까도 생각했지만 옷이 없어서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을 바에는 돈 들여서 옷을 사는 게 더 나은 거라 생각했다. 하나의 기회비용이라 생각하며 옷을 사고 또 샀다.
예쁜 옷을 입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듯 나도 예쁜 옷을 사고 입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예전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때문에 옷을 차려 입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반대였던 것 같다. 나는 누구보다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입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다.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이성에게 호감가는 남성으로 비쳐지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잘생기지 않았고 키는 작았으며 몸도 말랐던 탓에 누군가에게 외모로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옷을 예쁘게 입기로 했다. 더 멋있어 보이게, 더 스타일리시하게 보이도록 나를 꾸몄다. 거울만 보면 눈에 띄는 단점들을 자꾸만 옷으로 커버하려 했다. 갈수록 걸치는 옷은 많아졌고 그만큼 신발굽도 높아져만 갔다.
그렇게 옷을 예쁘게 입으며 치장을 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 속 공허함만은 채워지지 않았다. 예쁜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옷이라는 껍데기로 나를 잠시 가렸을 뿐이었다.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나였다. 텅 빈 마음 속은 채우지 않고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들로 몸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옷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됐다. 계기가 있었다. 하루는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하며 옷을 고르고 있는데 여러 옷들 사이에서 검은 색 점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작년에 산 옷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한 번 입고 안 입은 옷이었다. 지금 입으려 하니 유행이 지난 옷이라 입고 싶지 않았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던 터라 그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한 번 입고 안 입을 거면 왜 샀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 옷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옷을 사면 보통 한 해 정도 입었고 오래 입어도 두 해를 넘기기는 힘든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쁜 옷을 사서 입으면 순간의 만족감은 있겠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옷을 사든 안 사든 지금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옷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던 것이다.
여자 친구가 없어서 옷을 항상 바꿔 입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만나는 친구도 별로 없다보니 예쁘게 꾸미고 나갈 필요도 없었다는 것도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옷 안 사기를 실천하게 된 것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바로 <딱 1년만 옷 안 사고 살아보기>라는 책이다.
저자는 특별히 비싼 걸 산 적이 없는데 가계부 적자가 늘어나는 걸 발견했고 옷을 사봤자 그리 예쁘지도 않은데 돈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딱 1년 동안 쇼핑을 멈추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옷장을 비움으로써 나를 채울 수 있었고 옷장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옷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은 자기위로는 그만두자는 메시지가 특히 와 닿았는데 그녀의 책을 읽고 난 뒤 나도 본격적으로 옷 안 사기 프로젝트에 들어갔던 것이다.
책 <딱 1년만 옷 안 사고 살아보기>를 읽은 지 4개월이 되었다. 옷 안 사기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부터 옷을 안 사고 있었기 때문에 옷을 안 산 지는 1년 정도 됐다.
옷을 안 사고 살다보니 드는 생각은 옷을 안 사도 살아진다는 점이다. 예전엔 옷에 대한 애정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한 계절이라도 옷을 안 사면 큰일날 것처럼 살았는데 요즘은 옷을 안 사도 있는 옷 입어가며 잘 살고 있다. 지금은 더 이상 껍데기를 꾸미는 데 그렇게 용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과거의 나와 달리 지금은 내 마음 속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죽기살기로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해서 작가가 되었다. 꾸준히 독서를 하며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있고 브런치에서 매일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있는 나를 만난다. 기타를 배우며 슬기로운 음악생활도 하고 있고 운동을 하며 건강 관리에도 힘 쓰고 있다. 겉으로 화려해보이는 것을 좇기보다는 이렇게 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온 결과 성장할 수 있었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었다. 자존감은 자동적으로 향상됐다.
이미 내 안에는 많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옷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옷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옷에 신경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옷을 잘 입는 것은 중요하다.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현대 사회에서 옷은 단순한 껍데기가 아닌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자 나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날개이다. 다만 내실은 다지지 않고 오로지 겉만 신경쓰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나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을 겉만 번지르르하게 해서 채우려는 생각으로 옷을 입게 되면 결코 만족감을 안겨주지 못한다. 옷을 잘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내 마음을 단단히 하고 성장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낭중지추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이 재주가 빼어난 사람은 저절로 눈에 띈다는 말이다.
과거의 나는 주머니를 꾸미는 데만 신경썼다. 더 예쁘고 더 화려한 주머니를 찾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이제는 달라졌다. 송곳을 갈고닦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속이 꽉 찬 사람은 송곳처럼 자연스레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