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직업은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스펙과 배경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by 기타치는 권작가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이와 직업을 묻지 않는다. 가끔 나이를 말해야 할 때는 있지만 직업만큼은 되도록이면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나이와 직업을 알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배경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 자기 직업을 교사 또는 공무원이라고 말할 때 주위 사람들의 "오~~~"하는 그 감탄이 듣기 싫었기, 아니 꼴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26살 때부터 영어, 기타, 독서, 수영 등등 동호회와 각종 모임을 찾아다녔다. 모임에서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자기소개를 하는데 자기소개 내용은 뻔하다.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게 바로 나이와 직업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정해놓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교사, 경찰, 공무원과 같은 직업, 소위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야~~"하면서 부러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직업이 없거나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언제나 후자였다. 백수, 막노동꾼, 과일장수, 배달원 이것이 그때의 나의 커리어였기 때문이다.


내 직업을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별 생각 없이 사는 사람처럼 쳐다봤고 '젊은 사람이 무슨 저런 일을 하나'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런 일을 왜 하냐고 물으면서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가까운 지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막노동을 한다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는지 100% 장담할 수는 없다. 어쩌면 나의 자격지심과 피해의식 때문에 사람들의 눈빛, 표정, 말투, 행동을 내 마음대로 해석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불편하긴 해도 대충 넘어가면 그만이었지만 문제는 교사, 공무원인 사람들을 치켜세우며 마치 대단한 사람인양 관심을 보일 때였다. 백수인 나를 바라볼 때와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공무원인 사람을 바라볼 때의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나는 그게 못마땅했다.


'공무원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저렇게 유난을 떤다니?'


사람들에게 잘보이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내가 돋보이고 싶었고 내가 더 잘나보이고 싶은데 그렇지를 못하니 질투가 났던 것이다.


그런데 직업을 묻는 것을 싫어하게 된 것은 순전히 질투때문만은 아니었다. 배경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것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던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직업이 좋다는 이유로 훌륭한 사람인 것마냥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얘기하면 되는 거지 나이, 직업, 학벌, 재산과 같은 배경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걸까?'


물론 사람의 스펙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배경에 따라 사람이 달리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길이라 생각했다. 바꿀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덧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나는 어디가서 내 직업을 얘기하지 않는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이렇게 얘기한다.


"사무직해요."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무직이냐고 집요하게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땐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 두드리는 일해요."

"그냥 뭐 서류 만지고 하는 일해요."


물론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냐고 하는 지인도 있다. 공무원이면 공무원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면 되지 왜 예전 기억 때문에 자신을 숨기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당당하지 못한 게 아니다. 나 자신을 숨기려는 것도 아니다.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저항이다.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며 나만큼은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는 다짐이다. 사람이 다 그렇다고 한들 나는 그 사람들의 생각에 동참하지 말자는 의지이다. 그래서 나도 묻지 않는다. 나이도 직업도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로지 사람으로서 대하려 한다.


가끔은 이런 저항심이 과할 때면 내 마음을 조금 삐뚤어지게 표출할 때도 있다. 얼마 전 한 모임에 가입을 했는데 자기소개에 이름, 사는 곳, 나이, 직업을 적으라고 되어 있었다. 그때 직업란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막노동


사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뜻이 있었다. 직업으로 나를 판단할 거면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약간의 반발심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미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얻었기 때문에 누가 뭐라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부부와도 잘 어울렸던 유럽사람들

유럽여행 중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한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이 생각난다. 독일, 이탈리아, 인도, 칠레, 스위스 등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고 나이대도 다 달랐다. 그중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도 있었다. 당연히 젊은 우리들끼리만 같이 어울려 놀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사람들은 노부부에게도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며 대화를 나눴고 심지어 근처에 있는 펍에 갈 때도 함께 동행했다.


한국 사람 같았으면 노땅이라며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 놀았을 텐데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달랐다. 나이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대했던 것이다. 부러웠다. 물론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건 맞지만 그 부분만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워야 할 문화와 가치라 생각했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백수 시절에, 나중에 내가 잘 되더라도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현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얻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다행히 과거의 그 결심을 잘 지키고 있다. 이 마음 잊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남들이 스펙으로 사람을 판단한다고 해도 나만큼은 그러지 말아야겠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먹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대가 좋아보이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