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좋아보이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by 기타치는 권작가

20대 때 내가 활동했던 영어회화 동호회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반에는 유독 40 ~ 50대 분들이 많았다. 나와 나이 차이는 조금 났지만 성격상 형, 누나들을 좋아하고 잘 따랐던 나는 어색할 것 하나 없이 같이 재밌게 공부하곤 했다.


하루는 스터디 후 우리반 멤버님들과 식사를 같이 한 적 있었다. 부산 서면에서 모여 식당으로 가는 길, 서면 길거리는 부산 최고의 번화가라는 명성답게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인파 속에는 화장을 하고 예쁘게 옷을 입은, 20대로 보이는 풋풋한 청춘들이 많았다. 깔깔거리며 웃는 해맑은 20대 청년들을 보며 우리반 멤버 중 J라는 이름의 40대 중반인 한 누님(?)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야~ 20대가 좋긴 좋네. 다들 풋풋하고 참 예쁘다."


선배 J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마치 자신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듯 20대 청년들을 바라봤다. 마치 20대 때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J에게 내가 물었다.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세요?"


선배 J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허나 그 대답은 의외였다.


"20대가 좋아보이긴한데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당연히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의아해하며 눈을 껌뻑거리는 나를 보며 선배 J가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이 좋다. 20대 때를 돌이켜보면 세상 물정도 모르고 사는 재미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 나이쯤 되고 보니까 오히려 지금이 더 사는 재미도 있고 그렇네. 또 20대 때는 방황을 많이 할 때잖아. 또 다시 그런 걸 겪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그래.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아무튼 나는 지금이 즐겁고 행복해."


의아했다. 그때만 해도 그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젊음이라며 누구나 젊음을 원하는데 선배J는 돈을 준다고 해도 젊음을 얻지 않겠다고 말할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30대가 되고 보니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어느덧 나는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었다. 나이가 서른쯤 되면 인생을 요만~~큼 안다고 누가 그랬던가. 故 김광석 님의 노래제목처럼 서른즈음을 넘기고 보니 선배 J가 했던 말이 요즘따라 자꾸 생각이 난다. 내가 많은 나이도 아니고 선배 J처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본 것도 아니기에 20대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선배의 마음을 완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 역시도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도 사람도 다 힘들었던 나의 20대 시절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이유가 지금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20대 때를 다시 겪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지난 20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좋았던 기억보다는 방황하고 고생했던 기억들이 더 많다. 한 달에 한 번도 못쉬고 매일 16시간씩 중노동을 했던 날들, 비에 몸을 흠뻑 젖어가며 과일을 배달했던 날들, 밥도 굶어가며 무거운 가구를 등에 짊어지고 아파트를 오르내렸던 날들, 공사장에서 온갖 욕을 들어가며 막노동을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몸이 힘든 건 참을 만했다. 항상 내 어깨를 짓눌렀던 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 바로 그 막막함이었다.


일 못지않게 인간관계도 서툴렀던 나는 사람 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어릴 때부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아이였던 나는 웃는 날보다 화내고 짜증내는 날이 더 많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울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의 문을 닫았고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리기도 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불평하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인간관계가 어렵다보니 연애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랑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여자 친구와 줄곧 다투기만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몇 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게 다 내가 모질고 어리석은 탓이었다. 원인이 노력의 부재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여유,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시간말이다.



지금이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지금은 내·외적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죽어라 공부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었고 작년엔 책을 출간하면서 작가도 되었다. 매일 독서를 하며 삶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쌓아가고 있고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쓰며 내 안에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 20대 때는 돈을 헤프게 쓰기만 하다가 이제는 매달 꼬박 적금을 넣으며 돈 모으는 재미도 느끼고 있다. 격동의 20대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것이다. 누군가는 결혼을 했을 때를, 누군가는 결혼을 해서 낳은 자식을 독립시켜 보냈을 때를 안정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바로 지금, 내 생애 가장 안정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사람은 나이를 괜히 먹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든다는 것은 곧 그 만큼의 경험이 쌓이는 것이다. 경험이라는 벽돌로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물론 세상 경험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은 아니지만 삶의 풍파를 많이 겪어본 사람일수록 세상을 좀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의 풋풋함, 젊을 때의 혈기도 좋지만 나는 한층 더 성숙해진 지금이 좋다. 점점 소화가 안 돼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도 없고 슬슬 머리가 빠지면서 탈모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조금은 슬프지만 마음만은 에너지가 넘치는 지금이 좋다. 덜 익은 바나나보다 잘 익은 바나나가 더 달달하듯 시간이 갈수록 샛노랗게 익으며 달달함을 풍기는 오늘이 좋다.


과연 내가 40대를 지나 50대, 60대가 되어도 지금처럼 생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이 좋다.',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나는 매순간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 가짐을 잊지 않는다면 나이가 더 들었을 때 나도 선배J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대가 좋아보이지만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지금이 좋으니까.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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