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자살예방교육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강연자로 초빙된 자살예방교육 전문가는 강단에 서서 영상과 함께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자살예방교육을 시작했다.
"저는 자살 유가족의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도 자살 유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강연자의 첫 마디를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들으러 갔던 교육이었지만 왠지 교육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강연자는 이어서 말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자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버지도 자살을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그렇게 보내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자살한 이후로 자신이 겪었던 고통,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평생 가슴에 멍이 든 채로 살아가는 자살 유가족의 이야기까지, 모두 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슴 절절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나 책에서 보고 배운 연구결과를 가지고 교육을 하는 게 아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말 하나하나가 다 가슴을 파고들었다. 몇 번이나 울컥하던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계속해서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라며 강연자는 이렇게 말했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살고 싶다는 말이에요."
흔히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주위에서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얘기를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기 전 일종의 신호를 남기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싶다고 털어놓는 말이다.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고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기운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이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심정이라고 한다. 아무리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라도 주위 사람들의 진심어린 관심과 따뜻한 말 한 마디만 있다면 그 결심을 바꾸고 삶에 대한 희망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죽기 전에 남기는 신호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심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울함을 자주 느끼곤 했다. 가정불화, 친구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중학생 시절 특히 심했는데 너무 힘든 나머지 새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죽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죽고 싶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었다. 그 역시도 일종의 신호였다. 누군가 나 좀 도와 달라고,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게 힘을 달라는 처절한 메시지였다. 부모님이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 학교에서 힘 깨나 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겪은 심장떨리는 많은 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바람, 그런 나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누군가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다행히 힘든 시절을 잘 이겨내고 지금은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려웠던 학창시절을 더 잘 극복해냈을지도 모르겠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교육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강연자는 오늘 이렇게 자살예방교육을 들었으니 실천을 해봐야하지 않겠냐며 집에 가거든 가족에게 이렇게 말해보라고 했다.
"오늘 자살예방교육을 들었는데 요즘 마음이 어떻니?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니?"
사실 요즘 우리 가족은 힘든 일 없이 웃으며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직장선배 중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평소 가족문제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이 둘 엄마인 직장 선배였다. 선배에게 내가 조금 멋쩍은 듯이 물었다.
"혹시 자살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 선배도 같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의미에서 하는 질문인지 알는 듯했다. 직장선배는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ㅎ"
뭐랄까, 이런 질문이 뭔가 조금 낯설고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졌지만 의미있는 질문을 한 것 같았다. 어쩌면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 바로 이런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동료에게서 죽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게 이럴 것이다.
"너만 죽고 싶냐? 나도 죽고 싶다. 어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죽을 용기로 살어."
"이런 일로 그렇게 힘들어해서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냐."
위로를 해주겠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다. 사람을 더 궁지로 몰아갈 수도 있는 언어이다. 온기가 느껴지는 관심어린 말이 필요하다. 아니,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힘들어하거나 슬퍼하는 동료를 보면 먼저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는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많다. 괜히 나섰다가 그게 실례가 되거나 자존심을 건드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내 식대로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얘기를 들어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한 생명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차례다. 살아갈 희망을 다시 되찾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타인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류승범 주연의 영화 <수상한 고객들>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과 그 일을 막으려는 보험설계사 병우(류승범)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드라마이다. 극중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다가 마음을 돌려먹게 된 것은 사소한 데 있었다. 쪽방에서 살며 힘들게 아이 넷을 키우던 엄마 성희는 큰 딸의 사랑으로, 부모님도 집도 없고 빚만 산더미인 삶을 포기하려던 소연은 해맑게 웃으며 기타치는 남동생의 동영상으로,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날려버리고 삶에 의욕을 잃은 기러기아빠 상열은 딸 아이의 전화 한 통으로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주인공 병우의 거칠면서도 인간적인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소해보이지만 그 사소한 관심과 사랑과 애정 그리고 이해와 공감이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영화 속만의 일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이고 배워야 할 스토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