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by 기타치는 권작가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1년 365일 술을 마시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였으니까. 평소엔 말 한 마디 없을 정도로 무뚝뚝하지만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우리 아버지는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민원 상대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나? 스트레스 받아 미치겠다."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태껏 직장 얘기를 한 적이 거의 없어서 큰 어려움 없이 업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을 달랐다. 얘기만 하지 않았을 뿐 매일 민원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느라 여러모로 애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정년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는 그동안 여러 부서에서 일하며 별의별 사람을 다 겪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 진짜 보통 아이다. 뭐 있으면 그냥 마 민원부터 넣고 다짜고짜 따지고, 자기 마음에 안 들거나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전화해가지고 막 큰소리부터 친다니까. 민원을 넣었으면 좀 기다리면 될낀데 시간 단위로 전화해가지고 언제 처리 해줄거냐고 신경질부리고 쌍욕도 하고 그란다. 반말은 기본이다. 그따대고 우리가 조금만 뭐라 말하면 어디 공무원이 주민한테 말대꾸하냐면서 노예취급하듯이 말을 하지를 않나, 시청 홈페이지 글 올릴 거라면서 협박도 하고 그란다니까."


아버지는 지난 일들이 다시 생각났는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어떤 사람이 민원을 넣었는데 밀린 일이 많아서 조금 지체가 됐거든. 근데 민원 넣은 사람이 전화가 왔더라고. 왜 빨리 안해주냐고, 언제 되냐고 따지더니 마지막에 하는 말이, 일처리 끝나고 나면 언제 어떻게 끝냈는지 자기한테 전화해서 '보고'를 하란다. 진짜 어이가 없어가지고..하.."


내 입에서 "별 미친놈 다 보겠네."하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내가 들어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데 당사자인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싶었다. 사실 우리 아버지가 평소에 되게 털털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는 사람인데 이 정도로 분노하며 격하게 얘기를 할 정도면 민원 스트레스가 정말 보통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역주민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이 공무원의 역할이자 임무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보니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인 인권을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오남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좋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누려야 할 권리를 넘어서서 공무원 위에서 군림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역 주민들의 권리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의 권리는 어디로 간 것인가? 아버지의 인권은 누가 보장해줄 것인가?


이건 민원을 상대하는 공무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호의가 권리인 것마냥 행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손님이 왕이라고요? 천만의 말씀

손님이 왕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가게 사장님이 우리 물건을 구매해주는 손님을 깎듯하게 모시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말을 다른 의미로 변질시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손님인 자신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도 무조건 왕처럼 대접하라는 의미로 바꿔 생각하며 왕노릇을 하려는 고객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서 좋다. 이왕 구매할 거 기분 좋게 살 수 있도록 가게 사장님이 친절이라는 호의를 베푸는 것인데 그것이 당연한 권리라도 되는 듯이 비상식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진다. 점원이 친절하면 좋지만 친절하지 않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다. 소비자가 점원으로부터 친절하게 응대를 받으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각도만큼 점원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해서 화내고 따질 일은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 건 없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차가 어찌됐든 간에 사람이 안 다친 게 먼저고 집에 불이 났을 때도 재산이 얼마나 있든 간에 사람부터 살고 보는 게 우선이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사람이 먼저다.


그러나 이 말 역시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운전할 때가 그렇다. 차가 오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느릿느릿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보면 운전자로서 솔직히 화가 난다. 사람이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한 건 맞지만 보행자가 차를 봤으면 서둘러 걷는 시늉이라도 좀 해줬으면 하는 게 운전자인 나의 바람이다.


물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경우에는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 맞다. 보행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와 있으면 보행자가 천천히 걷든 전화통화를 하면서 걷든 상관없이 운전자는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내가 말하는 사람은 횡단보도가 아닌 길을 건너는 사람이나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다. 무단횡단이 금지된 길에서 차가 오든말든 신경쓰지 않고 엉기적엉기적 거리며 걷는 사람들 보면 목에 뭔가 걸린 듯 답답해진다. 차가 접근하는 것을 인지시키기 위해 경적이라도 살짝 울리면 보행자는 그런 나를 쏘아보며 "야, 사람이 먼저인 거 몰라? 얻다대고 경적을 울리고 지랄이야?"하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순간 나는 무기력해지고 만다.



"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에서 배우 류승범이 했던 명대사이다. 이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택시기사가 손님을 친절하게 모시는 것은 택시기사의 호의이다. 전화상담원이 고객에게 상냥하게 응대하는 것은 상담원의 호의이자 서비스이다. 조금 불친절하다고 해서 또는 자신을 깎듯이 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우습게 아냐고 큰소리 치는 것은 국민이 누리는 정당한 권리도 인권도 아니다. 약자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자신의 권리에 침을 뱉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은 누가 주는 게 아니다. 나라에서 주는 것도 아니고 지역사회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나가야 한다. 국민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할 때 인권은 주어진다. 그리고 그 권리를 누리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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