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이 낳은 부작용

by 기타치는 권작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배우 김해숙, 손호준 주연의 영화 <크게 될 놈>을 봤다. 전라도 섬마을에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던 기강(손호준)은 성공하기 위해 집을 떠나 상경하지만 결국 범죄자로 전락해 사형을 선고 받게 된다. 절망 속에 빠져 살던 기강은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어머니(김해숙)를 보며 조금씩 희망을 가지기 시작한다. 사람을 죽여도 하나뿐인 내 아들이라며 자식에 대한 모성애를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가 바로 영화 <크게 될 놈>이다.


내가 꽂혔던 명대사는 영화 마지막에 있었다. 기강(손호준)은 재소자들 앞에서 과거의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왜 자신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며 이렇게 말한다.


크게 될 놈이라는 말, 그 말은 제 마음 속 깊숙이 박혔습니다. 현실은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시골 촌놈이었지만 마음에선 이미 큰 사람이 되었고 사람들이 다 우습게 보였습니다. 크게 될 놈, 그 생각이 제 인생을 완전히 망쳐놨던 겁니다.


이 대사를 보며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 사실 나 역시도 예전부터 느끼고 생각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크게 될 놈이라는 말, 좋은 칭찬이지만 그 칭찬이 기강에게는 독이 됐듯이 어 때는 사람을 자만하게 만들고 오만하게 만드는 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마음 속에 더 오랫동안 남았던 것은 바로 주인공 기강의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집념이었다. 열정에 감동받아서가 아니었다. 성공하겠다는 강한 집념, 성공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때로는 사람을 망칠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획일화된 성공의 기준

사람은 다 다르다. 가치관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 각자 자기만의 인생이 있고 추구하는 방향이 있는데 성공이라는 어떤 획일화된 기준을 정해놓고 강요하는 것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패배자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며 길을 정해놓고 그 길을 가지 않는 보통 사람들을 실패자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멘토로 불리는 명강사들은 말한다.

"꿈을 가져라."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라."

"가슴 뛰는 일을 해라."


좋은 말이다.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열정을 심어주고 때로는 게으른 자신을 채찍질해주는 명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이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신화적인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은 어느덧 자신도 그렇게 돼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꿈이 없거나 목표가 작거나 가슴 뛰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시대의 멘토들 덕분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 하지만 그만큼 성공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아진 것도 사실이다. 꿈이 없거나 작은 목표를 가진 자신을 게으르거나 나약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 하는 일에 가슴이 뛰지 않으니 내가 지금 잘못된 일을 선택해서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양산해내고 말았다.


불가능한 목표만이 꼭 의미있는 도전인 걸까? 자기 능력 내에서 작은 목표부터 하나씩 달성해 나가면 안 되는 걸까? 목표가 있으면 좋은 건 맞다. 없는 것보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꿈이 없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 어떻게? 그냥 살면 된다. 출근해서 일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고, 다들 그렇게 산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 지루하다고 해도 먹고 자고 싸고 일하며 사는 게 사람이 사는 모습이다. 특별할 게 뭐 있겠는가. 다들 그렇게 사는 건데.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기나 한 걸까?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는 순간 하기 싫어지기 마련인데 어떻게 가슴 뛰는 일을 한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좋아하거나 보람된 일을 하면서 처음엔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영원할 순 없다. 첫눈에 뿅~가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도 자꾸 보면 처음에 느꼈던 그 떨림은 금세 사라지기 쉬운데 하물며 일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일을 통해 돈도 벌고 가슴 떨릴 정도로 보람도 느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1% 미만이라고 감히 단정한다.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니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우선 아무 일이나 시작하는 게 먼저다.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은 여러 일을 하면서 찾아봐도 늦지 않다.


살면서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런 말들이었다. 성공해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 진정한 친구 1명이 있어야 성공한 인생이다, 젊을 때는 무조건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 등등 세상의 이런 기준과 요구가 멀쩡하게 살아가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진정한 친구 1명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요?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학청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거의 연락을 안 한다. 안 본 지도 꽤 됐다. 지금은 혼자서도 잘 놀고 혼자 노는 게 오히려 더 편하고 또 익숙해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 외로움과 심심함을 견디는 것보다 더 마음을 괴롭게 했던 것은 바로 '진정한 친구가 1명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이었다. 그말을 곱씹다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친구가 없는 나는, 그럼 실패한 인생인가?'


진정한 친구가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친구 없이도 잘 사는 사람 많다. 나도 혼자서 잘 사는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 1명을 가진 것이 곧 성공한 인생이라는 그 글귀가 나를 친구가 없는 하자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조금 외롭고 심심할 뿐이지 나는 별 문제도 없는데 말이다.



젊을 때 연애를 많이 해봐 된다고요?

지금까지 연애를 적게 해본 건 아니다. 그렇다고 많이 해본 것도 아닌데 가끔은 '좀 더 적극적으로 여자를 많이 만나봤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에게 '젊을 때는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이다. 어떤 뜻에서 하는 말인지는 안다.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사람보는 눈이 생기고 그래야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중에 나이들면 사람 만나기가 어려우니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많이 만나봐라, 뭐 이 정도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하는 바이다. 나 역시도 요즘 많이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젊을 때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지금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일부러 나서서 누군가를 만날 생각은 없는데 그말 때문에라도 당장 아무나 만나 연애를 시작해야 할 것만 같다. 혼자인 지금이 제일 좋은데도 말이다. 앞으로도 혼자 재밌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한데 누군가가 "결혼은 안 하더라도 연애는 해야 한다."라는 말을 마치 진리인양 얘기할 때면 내가 뭔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냥 이렇게 혼자 살면 안 되나?



좋은 대학만 가면 인생 끝이라고요?

고등학생 수험생 시절 나는 공부밖에 안 했다. 공부를 잘해서? 공부를 좋아해서? 절대 아니다. 학교, 학원 할 것 없이 모든 선생님들이 좋은 대학만 가면 인생이 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다며 우리에게 성적 제일주의를 주입시켰다. 완벽히 세뇌당한 나는 매일 4시간씩 자며 평일, 주말 할것 없이 공부만 했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이기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점에서는 스스로 대견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나 자신을 너무 혹사시켰다는 점이다. 잠을 못 자 피곤에 절어있어 매사에 신경질적이었고 공부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마다 미친듯이 짜증을 부리곤 했다. 살려 달라며 몸과 마음이 절규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외침을 무시한 채 공부에만 파묻혀 살았다. 가족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말이다.


물론 잘 거 다 자고 놀 거 다 놀면서 편하게 공부하는 수험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어차피 대학도 자퇴했거니와 고졸이라는 학벌을 가지고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잘 사는데 이런 나에게 좋은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던 거다. 학교 다닐 때 공부말고 좀 더 다양한 것을 배우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으리라.


지금껏 나를 괴롭혀 왔던 사람들이 으레하는 그런 말들, 이제는 다 내려놨다. 진정한 친구를 찾을 시간에 나를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실천하기로 했고 연애를 많이 하기보다는 노력은 하되 인연법에 따르기로 했다. 대학 안 나오고도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대한 미련도 버린 지 오래다.


오해는 마시라. 꿈이나 목표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성공 따윈 필요없으니 대충 살아라는 말도 아니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철저한 성공 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렇게 열심히 독서를 했던 이유도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책 출간이라는 꿈과 목표를 가슴 속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내가 어찌 꿈, 도전, 성공과 같은 단어를 폄하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나이기에 누군가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왕이면 꿈을 가져라고 할 것이고 도전하라고 말할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라고 말하며 꿈과 도전의 중요성을 강력히 어필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가 말하는 획일화된 성공을 강요하지 말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성공을 응원하고 지켜봐주자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 억대 연봉을 벌어야 한다 등등 뭔가를 해야 되고 뭔가가 돼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지 않았으면 바람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장 먼저, 가장 빨리 또 가장 많이 획득하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무한경쟁 속으로 내몰고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다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지금에 집중하고 오늘을 살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다.(단, 최소한의 노력도 안하면서 해도 안 된다거나 아무것도 안하면서 대충 살자거나 나로 살겠다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건 나 역시도 반대다.)


영화 <크게 될 놈>에서 김해숙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기강(손호준)이 말한다.

"엄마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가꼬 엄마 호강시켜줄라니까 좀만 기달려."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 안 해도 돼야. 무슨 일을 해도, 니 얼굴만 봐도 이 엄만 호강잉."


성공하면 좋지만 안 해도 괜찮다. 성공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응원해주자.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해주자. 오늘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을 모른 채 성공에만 목매며 사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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