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권작가 Mar 20. 2020

중고나라에서 구매한 에어컨,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더니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더니

작년에 에어컨을 구매했다. 덥기로 유명한 대구에서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보려다 찜통 더위에 호되게 당하고는 다음해인 19년에 곧바로 에어컨을 구매했다. 평수가 작아 소형 벽걸이 에어컨 하나면 될 것 같았다. 중고나라에서 물건을 검색했다. 얼마 쓰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하게 내놓은 S사 에어컨을 발견했다. 이건 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구매해도 될 정도로 가격과 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아직 여러 물건을 둘러본 게 아니라 단 번에 바로 사기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일단 보류해놓고 다른 에어컨을 좀더 검색해봤다. 하루 정도 여유를 가지고 둘러봤지만 처음 봤던 그 S사 에어컨만큼 괜찮은 물건이 없었다. 처음 결정대로 S사 에어컨을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중고나라에서 에어컨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구매가능한가요?"


판매자에게서 답장이 왔다.

"금방 팔렸어요."


헉!! 금방 팔렸다니. 조금만 더 빨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괜히 하루 더 고민하다가 놓쳐버린 것이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른 에어컨을 찾아봤지만 그 에어컨만큼 괜찮은 물건이 없었던 터라 더욱 아쉬웠다. 역시 나는 생각이 많아서 탈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했고 빨리 연락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어쩔 수 없었다. 버스는 이미 지나갔으니. 체념하고 다른 에어컨이 나오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매일같이 중고 에어컨을 찾아보던 어느 날 괜찮은 물건이 하나 나왔다. 사용한 지도 1년밖에 되지 않았고 가격도 저렴하게 내놓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더군다나 판매자가 가지고 있는 에어컨을 떼어내서 우리집까지 직접 배송까지 해준다고 했다.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처음에 봤던 S사 에어컨 판매자의 집이 우리집하고 거리가 좀 있어서 구매를 조금 망설인 것도 있었는데 이 제품은 집까지 가져다준다고 하니 결국 구매하기로 했다. 순간 처음에 봤던 S사 에어컨이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S사 에어컨을 아깝게 놓쳤을 때는 그게 그렇게 아쉽더니 내가 이 제품을 사려고 그렇게 된 거였구나. S사 에어컨을 놓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었네.'


며칠 뒤 판매자로부터 에어컨을 받았고 설치기사를 불러 집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설치 후 에어컨을 틀어보니 얼마나 시원한지 '지상천국이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여름 오기 전에 미리 저렴하게 잘 구매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사실 에어컨 설치비용이 만만치 않아 '에어컨 가격이랑 설치비용이 합해서 이 정도 금액이면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새걸 살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새것같은 중고라 단돈 얼마라도 아낄 수 있었던 것에 위안을 삼았다. '이번 여름은 걱정없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행복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선배가 조만간 이사를 갈 예정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이 좀 있으면 이사를 가게 가서 집에 있는 에어컨을 다른 사람 주고 가려고 하는데 혹시 필요한 사람 있나?"


순간 일주일 전에 구매해서 설치했던 우리집 에어컨이 생각났고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엥? 에어컨을 무료로 주겠다니? 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에어컨을 안 사는 건데. 며칠만 기다리면 공짜로 에어컨을 얻을 수 있는 건데 내가 왜 샀을까. 하..'


정리하자면 이렇다. 처음에 S사 에어컨을 아깝게 놓친 것을 두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생각해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나중에 가격과 품질도 좋은데 판매자가 배송까지 해준 C사 에어컨을 구매하게 되면서 S사 에어컨을 못 샀던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어 기분이 좋았지만 며칠 뒤 직장 선배가 공짜로 에어컨을 주겠다고 했고 결국 잘 샀다고 생각했던 일이 후회로 바뀌게 된 것이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도 아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즉, 눈 앞에 벌어지는 결과에만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다. 평소 마음 속에 새겨놓은 글귀인데 에어컨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그 말의 의미가 더 깊이 와 닿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좋은 일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을 나쁜 일로 생각하기 쉽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당장은 실패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일이 나중에 더 좋은 일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처음 내가 S사 에어컨을 사지 않은 것이 지나서 보니 잘된 일이었던 것처럼. 반대로 당장은 성공인 것처럼 보였던 일이 나중에는 안 좋은 일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내가 괜찮은 에어컨을 구매했다고 좋아했지만 결국 안 사는 게 나았던 것처럼. 지금 일어난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은 반드시 나쁜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치면 성공한다고 해도 교만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해도 비굴하지 않을 수 있다. 결과에 대해 일희일비 하지 않고 인생을 좀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안목을 가질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성공과 실패에 울고 웃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연애는 하고 싶지만, 결혼은 글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