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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r 30. 2020

깊이가 2m인 수영장은 나도 처음이라

작년에 업무차 대전에서 2달간 머문 적이 있었다. 한창 수영을 하고 있던 때라 숙소 근처에 수영장이 있는지부터 알아봤다. 마침 가까운 거리에 추목수영장이라고 있었다. 바로 아침자유수영을 등록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6시에 수영장에 도착했다. 샤워하고 수영복으로 환복한 후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떨릴 정도로 공기는 쌀쌀했고 서둘러 준비운동을 한 후 물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순간 뭔가 이상했다. 물이 상당히 깊어보였다. 주위를 둘러봤고 푯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수심 1.8m"


적잖이 당황했다. 내 키는 170cm 아니, 솔직히 말하면 169cm였기 때문이다. 수영을 몇 달 정도 배워서 자유, 배, 평 등 접을 제외한 기본적인 수영법은 할 줄 알았지만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한 번도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제자리에서 뜨는 방법도 몰랐던 터라 쉽사리 물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수영장 길이가 무려 50m였다. 25m인 일반 수영장보다 두 배나 더 길었다. 깊은 데다가 길이까지 길다보니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운동을 핑계로 한참을 서성이다 벽을 잡고 천천히 물에 들어갔다. 내부 공기만큼이나 물은 차가웠고 생각만큼이나 물은 깊었다. 차가운 물은 내 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고 발이 닿지 않는 공포심은 내 마음을 얼게 만들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단 한번 수영을 해보기로 했다. 가다가 안 되면 벽을 짚어도 되고 레일을 잡아도 되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마에 있는 수경을 눈에 착용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수영장 벽을 발로 힘껏 밀치고 수영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출발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반에 반도 못 가서 멈추고 말았다. 발이 닿지 않는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손과 발을 제대로 놀릴 수도 없었고 호흡이 흐트러져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벽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더는 못 할 것 같아 그대로 수영장을 빠져나왔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서웠지만 반대쪽 벽까지 완주를 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이 깊고도 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계속해서 물에 들어가 헤엄을 치는 것 말고는.



1m에 집중하자

다음 날 아침 다시 수영장에 갔다. 첫 날 받았던 충격만큼은 아니었지만 물이 무서운 건 똑같았다. 전날처럼 물 밖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물에 몸을 담갔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 몸을 던졌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반도 못가서 수영장 벽을 붙잡고 말았다. 원인은 역시 공포심이었다. 발이 닿지 않는다는 것과 1m씩 나아갈 때마다 숨이 점점 조여오는 그 공포심이 자꾸 내 몸을 옥죄었다. 지금 중요한 건 수영방법이 아니라 마인드 콘트롤이었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발이 안 닿아도 괜찮아. 레일을 잡으면 되니까.'

'숨이 차다고 해서 무서워할 필요 없어. 힘들면 중간에 수영장 벽을 붙잡고 서면 돼.'


그리고 이 한 문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50m말고 1m에 집중하자.'


25m도 헉헉거리며 수영하던 내가 50m를 가려고 하니 몸에 힘이 들어가서 수영하기가 더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1m에 집중하기로 했다. 앞을 보며 남은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지 말고 땅만 보며 지금 이 1m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매일 아침 연습했다. 하면 할수록 나아가는 거리는 점점 길어졌다. 반복하고 또 반복했고 결국 수영장을 다닌 지 일주일 만에 50m를 쉬지 않고 단 번에 완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m가 모여 어느새 50m가 완성된 것이었다. 수영 이게 뭐라고, 그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 번 50m를 완주해보니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목표를 한 단계 더 높이기로 했다. 편도가 아닌 왕복으로 수영해서 쉬지 않고 총 100m를 완주하는 것이었다. 100m를 쉬지 않고 수영하려면 남아있는 공포심까지 완전히 털어냄과 동시에 체력도 필요했다. 연습하면 반드시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수영을 했고 그렇게 노력한 지 일주일이 더 지났을 때쯤 100m를 완주할 수 있었다. 다시 목표를 수정해서 이번에는 150m와 200m에 도전했다. 처음이 어려웠을 뿐 이후에는 쉬웠다. 며칠 지나지 않아 200m 완주에도 성공했다. 수영장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느꼈던 처음의 그 공포심은 잊은 지 오래였다.



새로운 도전

더 깊은 곳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다른 수영장을 검색해보니 더 깊은 수영장이 있었다. 길이는 동일하게 50m였고 깊이는 20cm 더 깊은 2m라고 했다. 바로 한밭수영장이었다. 아침 6시에 한밭수영장으로 향했다. 규모만큼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깊이가 2m인 수영장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곳이어서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두려움 따윈 없었다. 이미 1.8m를 경험해본 덕분에 호기심만이 가득했다. 수영장에 들어가 얼마나 깊은지 수심부터 체크했다. 2m가 1.8m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1.8m는 수영장 바닥에서 까치발을 들면 수면위로 머리가 조금은 나왔는데 2m는 머리가 완전히 잠겼다. 막상 물어 들어가니 1.8m 수영장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그 공포심이 다시 떠올라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한밭수영장을 갔던 그 첫날에 두려움을 단번에 극복하고 자유롭게 2m 깊이의 수영장을 헤엄치고 다닐 수 있었다.



수영장에서 배운 교훈

현재 주말 아침마다 가는 수영장이 있다. 대전에서 2달간의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복귀한 후 항상 가던 그 수영장에 갔다. 길이 25m, 수심은 가슴까지 오는 일반적인 수영장이었다. 준비운동을 한 후 물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25m 레일이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더 희한했던 건 몇 번을 왔다갔다 해도 힘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에는 분명 왕복으로 한 번만 갔다가 돌아와도 헉헉거리며 숨을 골라야했는데 훨씬 깊고 길이도 긴 대전 수영장에서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25m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변화된 내가 신기했고 그때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예전엔 그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뻔한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 '큰물'에서 놀아보니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매일 작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는 조금만 수영을 해도 숨이 찼는데 더 넓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 이후로는 기존에 그 작은 수영장이 '벌써 다 왔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쉬웠다.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물고기가 있다고 한다. 바로 비단잉어인 '코이'이다. 작은 어항에 키우면 5~8cm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까지 자란다고 한다. 넓은 강물에 방류하면 무려 90 ~12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지는 코이의 특성을 빗대어 사람도 환경에 따라 능력이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이 만들어졌다.


내가 바로 코이와 같았다. 작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는 연습을 해도 실력이 크게 늘지가 않았는데 넓은 수영장에서 매일 같이 수영을 한 이후로는 어느 수영장에 가서도 물 만난 고기마냥 쉬지 않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넓은 강물에서 자라 몸집이 커진 코이처럼 수영장 크기라는 환경이 나의 체력과 자신감도 몰라보게 향상시켰던 것이다.


성장하는 삶을 추구한다. 큰물을 경험해보니 수영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큰물을 경험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에 나를 던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두려울 것이다. 무서워서 중간에 멈춰설 수도 있겠지만 수영을 할 때처럼 1m에 집중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언젠간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실패 속에서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우물 안을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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