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권작가 Apr 06. 2020

양희은의 '그럴 수 있어.'가 주는 교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한창 영화에 집중하며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 휴대폰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같은 줄 제일 오른쪽에 앉아있던 사람이 범인이었다. 그 사람은 재빠르게 휴대폰을 껐다. 영화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벨소리 때문에 산통이 깨져 심기가 불편했던 나는 휴대폰 주인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 뭐야. 영화관 들어오면 휴대폰이 진동으로 돼있는지 확인부터 했어야지. 진짜 매너없네.'


며칠 뒤 영화를 보러갔다. 숨을 죽이고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데 또 어디선가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누구 휴대폰이냐며 불쾌해 할 겨를 없었다. 벨소리가 울리는 휴대폰의 주인 나였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잽싸게 휴대폰을 껐다. 


'뭐지. 분명히 진동으로 해놓은 거 같은데 왜 갑자기 벨소리가 울리는 거야.'


나중에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데 문득 지난번에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지 않아 벨소리 울렸던 그 사람이 생각났다. 


'그 사람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겠구나.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는다고 했는데 실수를 했던 것일 수도 있겠구나.'


다른 사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릴 때만 해도 매너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언짢게 느꼈는데 내가 똑같은 상황을 겪고 보니 그 사람도, 그 상황도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혼자 45일 유럽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일찍이 공항에 도착해 수속절차를 밟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출발시간이 다 돼가는데도 기내 분위기는 전혀 서두름이 없어보였다. 몇 분 뒤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직 탑승하지 못한 고객이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출발이 지연되어 죄송합니다." 


지각을 한 탑승객 한 명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출발이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었지만 한 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이 기다려야 했기에 별로 좋아보이진 않았다.


'비행기를 타려면 일찍 나와서 시간 맞춰탑승을 해야지, 다른 사람들 다 기다리게 만들고, 이게 뭐래.'


그러고 몇 년 뒤 홍콩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비행기 출발까지 시간이 아직 남아있었다. 의자에 앉아 활기찬 공항 분위기를 즐기며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방송이 나왔다.


"○○○님, 비행기가 곧 출발하오니 서둘러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듣고 있는데 왠지 낯익은 이름이었다. 그랬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내 이름이었던 것이다. 출발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의아했다. 얼른 카운터에 가서 확인을 보니 내가 비행기 출발 시간을 잘못 봤던 것이다. 부랴부랴 짐을 부치고 탑승게이트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 겨우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나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든 것이 죄송했고 또 부끄러웠다. 얼마나 뛰었던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열을 식히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유럽여행 때 비행기 출발을 지연시켰던 그 사람 생각이 났다.

 

'그 사람도 지각을 하려고 한 게 아니었겠구나. 나처럼 시간을 잘못 봤다거나 아니면 버스에서 졸다가 정류장을 지나쳤거나 뭐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늦었을 만한 이유가 있었겠구나.'



지하철에서

시내에 나가기 위해 지하철을 다. 책을 읽으며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같은 칸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큰 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크게 떠드는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아니, 저 사람들은 공공예절도 없나? 뭘 저렇게 떠들고 난리래. 조용히 좀 하지 진짜.'


얼마 뒤 지인들과 술을 한잔했다. 다른 곳에서 한잔 더 하기로 하고는 다같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다. 대여섯명에서 지하철 칸 한 줄에 줄지어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뭔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왜 저렇게 보나 싶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 조용한데 우리만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걸 알아챘다. 우리 중에서 제일 크게 떠들고 있었던 사람은 나였다. 나름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큰소리로 얘기하고 있는 줄 몰랐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크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봤을 때만 해도 어쩜 저렇게 개념 없는 사람들이 다 있냐며 속으로 욕을 했는데 내가 딱 그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생각했다.


'그때 그 사람들도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얘기를 하다보니 자기들도 모르게 떠들었을 수도 있겠구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공공장소 에티켓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 맞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다른 사람도 실수할 수도 있겠구나.'



양희은 님의 '그럴 수 있어.'가 주는 교훈

연예인들이 하는 성대모사 중 양희은 님의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좋아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실수를 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 자신에게는 관대하나 타인에게는 엄격하다. 자신 실수 그냥 넘어가면서 다른 사람 실수에는 분개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인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닐 터이다.


하지만 양희은 님의 유행어처럼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저런 사람이 다 있냐며 손가락질 하고 혀를 끌끌 차다가도 언젠가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때도 있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욕을 하지만 살다보면 세상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고 있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다.


이제는, 그럴 수 있다고 넓은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못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내가 되지 않으란 법 없다.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갈등은 대부분 입장차이에서 비롯된다. 내 기준에서만 상대방을 보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의견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럴 수 있겠구나.'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낸다면 사람과의 관계가 좀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통불감증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럴 수 있어.'라는 따뜻한 말 한 마디인지도 모른다. 


여태껏 나의 기준에서만 상대방의 언행을 판단한 것을 반성한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비방한 것을 뉘우친다. 이제는 상대방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같은 일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겠다. 그렇게 나부터 바꿔나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깊이가 2m인 수영장은 나도 처음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