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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pr 20. 2020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습니다

20살에 자동차운전면허증을 취득한 후 바로 아버지 차를 몰고 다녔다. 차가 워낙 오래돼서 부모님이 새차는 아니더라도 다른 중고차로 바꿨으면 했지만 그저 운전할 수 있다는 차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친누나가 차를 샀다. 그것도 새차를 뽑았다. 부러움을 넘어 질투심이 많이 났다. 엄마가 사준 차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엄마가 누나가 돈을 반반 보태서 산 것이었지만 그것조차도 나는 못마땅했다. 내가 오래된 우리 차 좀 바꾸자고 그렇게 말해도 안 들어주더니 누나가 필요하다고 하니 바로 돈을 보태준 것이다. 물론 그냥 좀 더 나은 차를 타고 싶었던 나와 달리 누나는 일 때문에 차가 필요했던 거라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땐 많이 서운했다. 그래서 엄마와 누나가 새차를 사러 갈 때도, 새로 뽑은 차를 누나가 타고 다닐 때도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음은 정말 타보고 싶었지만 심술이 나서 억지로 참았다. 답답한 마음에 아는 형인 K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며 하소연했다. 있었던 일을 한바탕 쏟아내고는 입을 삐죽거리며 이렇게 말다.


"앞으로 누나차 절대로 안 탈 거에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형이 내게 말했다.

"태현아,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어."


절대라는 건 없다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위로랍시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된 건 10년이 더 지난 이후였다.



사무직은 나랑 절대로 안 맞는 줄 알았다

현재의 직장에서 나는 정비파트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정비가 아닌 행정부서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내가 지원한 직렬과 다른 일을 맡게 되어 어리둥절했다. 현장보다 사무직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예전부터 사무직을 굉장히 싫어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사무직이 싫다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일 하는 걸 싫어한다. 몸을 움직이며 하는 일을 좋아한다. 몸을 움직이며 하는 것이 평소 내가 생각하는 일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은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앉아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은 도무지 적성과 맞지 않았다. 사무직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 취향이 그랬다는 것이다.


20대 시절에 과일가게며 보험영업이며 막노동이며 가리지 않고 다 해봤지만 사무직만큼은 단 한 번도 지원한 적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정도로 나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을 못 견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사무직을 하는 일만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온 종일 앉아서 컴퓨터와 대화를 나누는 행정업무를 맡게 되었으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래도 어쩌겠는가. 그만둘 수도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꾸역꾸역 일을 해야만 했다.


사무실 한 편에 놓인 내 책상에 앉아 업무를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일을 해보니 사무 업무는 역시나 생각한 것 이상으로 피곤했다. 앉아있으니 몸도 찌뿌듯하고 종일 컴퓨터를 보고 있으니 눈도 피했다. 서류작성 할 건 왜 이렇게 많은지 또 공문작성은 뭐가 그렇게 번거롭고 어려운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함께 감내해야 했다. 며칠을 일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왜 행정부서로 일을 배정받은 건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앞으로 이걸 어떻게 계속 해야 하나 하고 걱정이 많았다.


어떻게든 견뎌가며 일을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시간은 잘 흘러갔다. 그렇게 일한 지 6개월쯤 됐을 때쯤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라? 하다보니 이 일도 생각보다 할 만하네.'


싫다싫다하면서도 계속 하다보니 업무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지나 1년쯤 일을 해보고 나니 그때는 손에 일이 제법 익기 시작했고 업무에 대한 친밀감도 조금씩 상승했다. 그쯤되니 처음 입사했을 때의 내가 떠올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행정업무가 그렇게 싫더니 계속 하다보니 이 일도 할 만하고 나름 보람도 있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행정업무에 내가 적응을 하고 있다니. 사람이 아무리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이건 나 스스로도 너무 신기했다. 종일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두드리는 게 그게 일이냐며 '절대'로 사무직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내가, 설령 하더라도 내 적성에는 '절대'로 맞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내가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그제야 10년도 더 전에 K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절대라는 건 없다더니. 그게 이런 거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생각을 토대로 사건과 사물을 판단한다. 자신의 주장에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절대로'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K의 말처럼 세상에서 절대라는 건 없다. '절대'라는 말은 완벽 또는 100%와 같은 말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것도 없고 100%인 것도 없다. 100% 성공하는 일도 없고 100%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왜, 황금빛을 뽐내는 순금도 금 함량이 100%가 아닌 99.9%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는 절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오만한 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두고 절대로라는 말을 붙이며 매사를 쉽게 단정짓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내 마음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일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하늘님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


인생 앞에 겸손하려 한다. 절대가 아닌 언제든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예측해보려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행할 때 지혜의 문이 열린다. 세상을 좀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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