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할 자유
"야, 내 학원 애들한테 배신당한 거 아나?"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학생이 선생을 배신할 일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학원 잘 다니던 애들이 어느날 갑자기 다 같이 학원을 그만두고 옆에 있는 학원으로 옮긴 거 있제. 내가 지금까지 애들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나 완전히 배신 당했다니까."
친구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게 과연 배신인 걸까?'
또 다른 일화이다. 5년 넘게 이용하고 있는 옷가게가 있다. 오래 보고 지내다보니 옷을 사러갈 때마다 옷가게 사장인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날 내게 이런 하소연을 했다.
"우리집에 몇 년 넘게 옷 사러 오는 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안 보이는거라. 알고 보니까 옆에 있는 다른 가게에서 옷을 사더라고. 우리 집에 그렇게 옷 사러 자주 오더니, 임마 이게 이제 나를 배신한 거지."
그렇군요 하고 머리를 끄덕거리며 넘어갔지만 그 형을 말을 듣고도 나는 생각했다.
'그게 왜 배신인 거지?'
나에게 잘해주거나 호의를 베풀거나 도움을 주거나 인정을 나누던 사람이 등을 돌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배신이라고 말한다. 나는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갔을 뿐이라 생각한다. 친구가 일하는 학원의 아이들이 옆에 있는 학원으로 옮긴 것은 더 잘 가르친다는 학원에서 공부하기 위함이지 학원강사인 친구를 배신하려고 한 게 아니다.
학창시절에 나도 학원을 여러 군데 옮겨다닌 경험이 있다. 과외선생님도 여러 번 바꿨다. 그게 선생님을 배신하기 위해서 바꿨을까? 아니다. 더 잘가르친다고 하니 옮겨본 것이다. 실력이 더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니 바꿔본 것이다. 친구가 옮긴다고 하니 친구따라 강남 가본 것이다. 나의 이익을 위해 내 나름대로 선택하고 행동한 것이지 누군가를 배신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옷가게 형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옷가게 형이 배신자라고 낙인 찍은 그 동생은 형을 배신하려는 목적으로 옆 가게 옷집에서 옷을 구매한 게 아닐 것이다. 다른 가게에 더 예쁜 옷이 있을 수도 있고 가격이 저렴할 수도 있다. 직원이 친절하다거나 친구가 일하는 가게라 도와주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여러 이유로 다른 가게에서 옷을 구매했던 것이지 원래 알던 옷가게 형을 배신하려는 건 아닐 게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
항상 가던 마트를 안 가고 새로 생긴 다른 마트를 가면 그게 배신일까? 매주 가던 교회를 안 가고 다른 교회를 가면 배신일까? 매일 이용하던 식당을 안 가고 옆에 있는 다른 식당을 가면 배신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 때문에 더 저렴한 마트에 갈 수 있고 더 맛있는 밥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교회를 갈 수도 있고 교회, 성당, 절을 다 같이 한번에 다녀도 괜찮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고 움직일 뿐이다.
사람관계에서, 특히 연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사람들은 배신을 당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 또한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별을 통보했을 때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싫어졌을 수도 있고 계속 만날 상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배신해야지' 하고 이별을 통보하는 게 아니라 헤어지고 싶으니까 이별을 고한 것이라는 말이다. 설령 양다리를 걸치는 등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날 자유가 있다. 물론 도덕적으로는 지탄받을 수 있겠지만 결혼을 한 게 아닌 이상 그 사람이 평생 나만 만나야 할 의무는 없다. 배신이 아니라 그렇게 자기 이익을 쫓아 떠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듯이 그 사람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난 것뿐이다.
배신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배신이란 본래 없다는 것을 말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등을 돌렸을 때 배신당했다고 하면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커진다. 그 분노는 내 몸과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때로는 나를 잡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면 달라질 수 있다.
'그래, 그 사람도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간 것이구나. 나를 배신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상대방의 언행을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배신당했다며 부들부들 떨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을 수 있다. 마음이 훨씬 편안해질 수 있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이해가 쉬워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가벼워질 수 있다. 그럼으로써 괴로움에 빠지는 횟수를 줄일 수 있게 된다. 내가 타인을 이해하고 사람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 것도 배신이란 본래 없다는 깨달음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듯 남들도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가 있다. 타인에게 작정하고 사기를 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