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선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차가 밀리는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차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 싶을 정도로 차들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1차선에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앞차 뒤꽁무니를 바짝 붙어서 갔다. 이상하게 내가 있는 1차선만 느리고 2, 3차선만 빨리 가는 듯보였다. 2, 3차선은 빨리 가는데 왜 내가 있는 차선만 이렇게 느리냐며 투덜투덜거렸다. 짜증이 났던 나는 깜빡이를 넣고 2차선으로 차를 들이밀었다. 2차선으로 바꾸고 나니 1차선 보다 더 빨리 차가 움직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1차선에 있는 차들을 보며 '느려서 답답하겠구먼 ㅋ' 하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있던 2차선이 잘 가더니 어느 순간부터 다시 막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3차선에 있는 차들이 더 빨리 가는 게 아닌가. 내가 있던 2차선이 빨리 간다고 기분 좋아했다가 이번엔 3차선이 더 빨리 가는 걸 보며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다시 안절부절못했다. 천천히 갈까 아니면 3차선으로 이동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깜빡이를 넣고 3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3차선에서 빨리 달리다 보니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1, 2차선에서 느릿느릿 가고 있는 차들을 보며 나는 다시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미소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좀더 가다보니 이번엔 1차선에 차들이 그나마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내가 있는 3차선이 다시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길 위에서 그렇게 몇 번의 기쁨과 짜증을 반복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기분이 왜 다른 차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는 거지?'
나아가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왜 내 행복을 남에게 맡기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서 괴롭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괴롭다, 여자 친구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슬프다, 친구가 나를 챙겨주지 않아 섭섭하다 라고. 한 강연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상대방 때문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이다. 상대가 기대한 만큼 또는 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 괴롭다고 느끼는 것을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네가 잘해줘서 기쁘고 못해줘서 슬프다는 건 상대방이 나의 행복권을 쥐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의 행복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도적으로 사는 자세가 중요하듯 나의 감정 역시 내가 선택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굳건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걸까?
사람마다 방법이 다 다르겠지만 사실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정진하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는 듯하다. 운전을 잘하고 싶으면 계속 운전연습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근육질의 몸매를 만들고 싶다면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렇듯이 마음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나같은 경우는 늘 깨어있는 연습을 한다. 항상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나의 상태를 체크한다. 같은 말이나 상황도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려 한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언짢은 말을 하거나 불쾌한 행동을 하더라도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왜 그런 언행을 했는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본다. 괴로움이 생기면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길을 찾으려 하고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렇게 매일 나의 마음과 감정을 되돌아본다.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점은 반성하며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물론 쉽지는 않다. 또 놓치고 상대방의 감정에 휩쓸려버리곤 한다. 하지만 다만 할 뿐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걸어나갈 뿐이다.
너 때문에, 엄마 때문에, 친구 때문에, 선생님 때문에, 직장상사 때문에,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이런 식으로 남탓만 하면 달라지는 건 없다. 남탓을 하는 사람은 항상 핑계대기에 급급해한다. 이는 곧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고 성숙하지 못하게 만든다. 더 이상 누구 때문에가 아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책 <인생수업>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오늘도 상대방의 짜증에 휘둘리며 나까지도 불쾌한 하루를 보낼지, 아니면 상대방이 뭐라고 하든 지그시 웃으며 여유있는 하루를 보낼지는 결국 내가 만드는 것이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 당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