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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07. 2020

쇼핑요? 저는 백화점이 아닌 서점에서 합니다.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혀 살다시피 하다가 며칠 전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간만에 바깥구경을 해서 그런지 발걸음은 가벼웠고 햇살은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졌다. 시내에 나갔다. 먼저 들른 곳은 알라딘 서점이었다. 거의 3달 만에 들른 서점이라 그런지 책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한 권 한 권 훑어보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

 

역사의 쓸모, 오늘부터 나는 세계 시민입니다,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왜 하필 교도관이야?, 환장할 우리 가족,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등 총 7권의 책을 구매했다. 보통 책을 살 때 한두 권 정도 사는데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책을 구입하긴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정도의 양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니다. 책은 무조건 사서 읽는다. 단지 읽고 싶은 책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많이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다. 책 편식이 좀 있다. 하지만 이번에 서점을 들렀을 때는 유독 눈에 띄는 책이 많았다. 반가운 마음에 뷔페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접시에 담아내듯 신나게 책을 골랐다.  


한권 두권 계속 고르다보니 어느새 5권을 넘겼고 그쯤되니 손으로 들고 있기가 버거웠다. 책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줍기를 두어 번 정도 반복하다가 담을 데가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문득 전에 서점에 왔을 때 봤던 바구니가 생각나 구석구석 찾아봤다. 카운터를 마주보고 있는 기둥 앞에 은색 바구니가 보였다.


품이 가장 넉넉한 바구니를 집어들고는 손에 쥐어있던 책을 담았다.


알라딘 서점을 자주 이용하면서도 이 은색바구니를 본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본 것도 같았지만 어떤 용도로 쓰라고 놔둔 건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랬던 바구니를 이번에 내가 이용하게 됐던 것은 오래 전 이 은색바구니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그 가족을 만난 건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여느 때처럼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고 있는데 내 옆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 아빠가 책을 고르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했고 아이들이 선택한 책을 손에 들고 있던 이 은색바구니에 담았다. 자신들이 읽고 싶은 책도 함께 담았다. 한두 권도 아니고 여러 권의 책을 바구니에 한가득 담는 그 모습을 보면서 떠오른 단어가 바로 '쇼핑'이었다. 책 쇼핑을 하는 그 가족의 모습이 너무나 이색적으로 보였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옷 가게에서 옷을 구매하는 쇼핑은 봤지만 이렇게 서점에서 책을 쇼핑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생각해보게 됐다. 살다보면 생각지 못한 것을 일깨워주는 신선한 충격을 받을 때가 있는데 내게는 이때가 딱 그랬다.


책을 구매한다는 것과 책을 쇼핑하다는 말은 비슷한 말 같지만 왠지 나에게는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책을 구매한다는 것은 필요한 책을 산다는 느낌이 있는 반면 책을 쇼핑한다는 것은 책 자체를 즐긴다는 느낌이 강하다. 백화점에 가면 뭘 사지 않고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는 것처럼 책 쇼핑도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책을 종이쪼가리가 아닌 살아 숨쉬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인다. 서재 사이를 거니는 모습이 책이라는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책이라는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곳곳에 꽂혀있는 책을 한 권씩 훑어보는 사람의 모습은 흡사 보물찾기를 하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가족이 읽고 싶은 책을 바구니에 담는 모습이 겉보기엔 단순히 책을 고르는 것이었지만 내 눈에는 지식 한 줌, 지혜 한 줌을 담는 것처럼 보였고 희망과 행복을 한가득 퍼담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 모습에 나는 매료되고 말았다. 마음같아서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가족상으로 간직하고 싶어서.


서점을 나오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백화점에서 하는 옷, 가방, 신발 등의 쇼핑이 아닌 서점에서 하는 책 쇼핑을 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라고.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다. 책을 구매하는 사람은 더 줄어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 읽는 사람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많아졌다. 손바닥 만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다. 점점 시간적인 틈이 좁아지면서 책이 파고들어갈 자리 역시 좁아지고 말았다. 적은 양이지만 꾸역꾸역 책을 읽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시대의 변화가 아쉽기만 하다. e-book으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종이책을 좋아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왠지 그립다.


책을 좋아한다. 읽는 것보다 책을 사거나 모으는 것을 더 좋아한다. 책이 주는 진정한 가치와 의미? 그런 거 잘 모른다. 그냥 읽는다. 읽음으로써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행복할 뿐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함께 책을 읽고 나눌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온통 연예인, 게임, 스포츠와 같은 이야기뿐이다. 독서와 글쓰기라는 취미를 가진 나는 대화에 끼지 못한다. 뭐 굳이 끼고 싶지도 않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져 책을 읽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에는 서로 공감하고 다른 의견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을 얻고 싶다.



서점에서 장 보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세상이 이럴진대 사람들에게 책 쇼핑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먹고살기 바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소 귀에 경 읽기와 다름 없는 것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서를 권유하는 바이다. 책을 통해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책이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밀접해하고 관련되어 있는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역시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꼭 성공이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한번 겪어봤으면 좋겠다. 책의 효용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 모두다 장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책을 쇼핑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직장에서 커피 한 잔 하는 쉬는 시간에 연예인 이야기가 아닌, 직장 상사 때문에 못 살겠다며 한탄하는 이야기가 아닌, 책을 공유하고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일상이 피어나길 바란다. 그럴러면 나부터가 많이 읽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레 앞으로 더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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