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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08. 2020

현금이 최고라지만 꽃이 없으면 허전한 날

때로는 형식도 필요하다

어버이날에 길거리에서 꽃을 팔아본 적이 있었다.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부산 센텀시티의 한 사거리에 가지고 온 꽃을 펼쳐놓았다.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현금이 최고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꽃이 빠지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예쁜 꽃에다가 현금을 딱 올려서 같이 드리면 최고지요! 자 꽃사세요, 꽃!"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가 잠시 뒤 한두 사람이 다가와 꽃을 구경했고 이윽고 살까말까 망설이는 듯 보이던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며 다가와 꽃을 하나씩 사갔다. 사람들이 부모님께 드릴 꽃을 사려고 원래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외쳤던, 돈도 좋지만 꽃이라는 형식도 필요하다는 말이 그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멘트를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버이날에 꽃은 사지 말라던 우리 어머니

작년 어버이날에 혼자 마트에 들렀을 때 입구에 어버이날 기념 꽃을 파는 매대가 보였다. 작은 꽃바구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진열되어 있는 샛노란 꽃들이 너무나 예뻤다. 부모님께 드리기 위해 꽃을 사가지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약간의 용돈과 함께 꽃을 드렸다. 이게 웬 꽃이냐며 기뻐하시던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굉장히 좋아하셨다. 꽃이 마음에 드셨는지 폰으로 사진도 여러 장 찍으셨다. 그 모습을 보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어버이날에는 어떻게 꽃을 선물해드렸지만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부모님께 꽃을 선물한 적이 거의 없었다. 평소 어머니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어버이날이라고 돈 아깝게 꽃 사고 그러지 마라. 알겠제. 그런 거 다 형식이다."


어머니는 어릴 적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항상 절약하는 습관이 몸이 배어 있었다. 허튼 데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고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 애썼다. 그런 생활습관 때문인지 어머니에게 꽃이란 먹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시들고 나면 쓰레기가 되고마는 그런 사치품에 불과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말은 그렇게 해도 막상 사다드리면 좋아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했지만 어머니의 성향을 많이 닮은 나 역시도 꽃을 사는 건 돈 아까운 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어머니께 예쁜 꽃 한 번 선물해드린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그런 건 다 형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조건 실속을 우선으로 여긴 어머니와 나는 4명의 식구 중에서 누가 생일이라고 해도 그 흔한 케이크도 사지 않았다. 몸에도 안 좋은 거 먹어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밥만 먹었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와 같은 각종 데이도 식품업계에서 만든 쓸데없는 행사라 생각해 초콜릿과 사탕 따위는 거의 사지 않았다.


매사에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나는 새해가 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하나 있었는데 티브이에서 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었다. 진짜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닌 그냥 해마다 으레하는 형식적인 인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새해가 되어도 지인에게 안부를 물을 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때로는 형식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형식적인 액션이라도 취해야 그럴 때 사람 간에 정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버이날에 현금이 최고라지만 예쁜 꽃을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은 또 다르다. 돈으로 꽃보다 더 예쁜 것들을 살 수는 있겠지만 꽃이 주는 살아있는 그 아름다움은 꽃만이 가져다줄 수 있다.


또 물질 따라 마음 간다고, 각종 '데이'에 주고받는 초콜릿이나 사탕과 같은 것들을 통해 사람 간에 따스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 해마다 하는 형식적인 말에 불과할지라도 그런 말을 핑계삼아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것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형식적인 기념일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지정을 해놔야 그 기념일과 관련된 일이나 사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그렇게 형식적으로 지정해놓은 공휴일이 있기 때문에 빨간 날에 우리가 이렇게 쉴 수 있는 것이다.



실속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형식도 중요하다

진실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듯 실속만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적절한 핑계와 선의의 거짓말이 관계를 더 부드럽게 만들 듯이 때로는 형식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형식적인 말이도 행동조차도 없다면 사람관계는 더 무미건조 해질지도 모른다. 형식보다 실속을 따지는 것이 삶에 더 도움이 되지만 살다보면 실속보다 형식을 따져야 할 때가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이제는 실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되 그만큼 형식도 챙기기로 했다. 특별한 날에는 눈을 잠깐 즐겁게 할 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꽃을 산다. 케이크가 몸에 안 좋은 설탕 덩어리에 불과하더라도 생일 날에는 항상 케이크를 구매해 생일촛불을 분다. 어떤 '데이'가 되면 데이에 해당하는 작은 것들을 사서 친분이 있는 지인에게 건넨다. 부끄러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형식적인 날에 형식적인 행동을 통해 그렇게 전달해보려 한다.


별 것 아니지만 소소한 것을 챙기고 나눌 때 사람과의 거리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곳곳에 온기가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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