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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10. 2020

가공식품을 끊고 건강식을 먹기까지

속이 안 좋을 때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나면 의사에게서 이러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밀가루 음식 먹지 마시구요. 기름진 음식도 먹지 마시구요. 피자,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도 먹지 마시고, 과식하지 말고, 밤 늦게 먹고 바로 자지 말고, 술 마시지 말고, 담배도 피우지 말고 커피나 탄산음료도 마시지 마세요."


의사의 이러한 조언이 건강해지고 싶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름진 음식이 안 좋다는 걸 몰라서 먹는 게 아니다. 피자,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가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는 것도 몰라서 먹는 게 아니다. 알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안 먹기가 힘들기 때문에 지키지 못할 뿐이다. 술과 담배도 마찬가지다.


한 때는 나 역시도 그랬다. 워낙에 식탐이 많았던 나는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을 안 먹고 어떻게 사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마음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그냥 먹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먹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먹는 행복'을 예전처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해?"라고 생각했던 의사의 그 조언들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2년 전쯤이었다. 음식을 잘못 먹고 체했는지 갑자기 속이 쓰리기 시작했고 속쓰림은 몇 달동안 나를 괴롭혔다. 밥을 먹어도 속이 안 좋았고 안 먹어도 불편했다. 심할 때는 속쓰림 때문에 배를 부여잡고 잠을 자지 못하기도 했다. 각각 다른 병원에서 위 내시경을 두 번 받아봤지만 내시경 결과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위에 염증이 있거나 출혈이 있다고 하면 속이 안 좋은 게 이해가 되는데 위가 깨끗하다고 하니 원인을 몰라 답답했다. 약을 먹어도 소용없었다.


정확한 원인은 몰랐지만 사실 선천적으로 위장이 약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게 태어나 구토 증세와 어지럼증을 자주 호소하곤 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됐을 때쯤부터 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고등학생을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빵, 과자, 아이스크림과 같은 가공식품부터 피자,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까지 마음껏 먹고 즐겼다. 친구들과 술도 부어라 마셔라 하며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곤 했다. 물론 원래부터 위장기능 자체가 약하다 보니 밤 늦게 많이 먹고 자거나 안 좋은 음식을 자주 여러 번 먹을 때는 체해서 한동안 금식을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적절히 조절만 하면 됐기에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나름 음식을 조심해왔지만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술, 과식, 야식과 같은 안 좋은 식습관이 점점 쌓여 결국 몸에 탈이 났고 2년 전 그때가 시발점이 되었다. 그때부터 철저한 식습관 관리에 들어갔다. 한 때는 이런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살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죽을 정도로 아파보니 음식을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흔한 조언처럼 기름진 음식, 밀가루 음식, 햄, 라면, 커피,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술 등을 거의 끊다시피 했고 양배추, 브로콜리, 버섯, 김치, 김, 콩, 낫또, 시금치 등 채소 위주의 자연식으로 식단을 바꿨다. 달걀은 친환경 매장에서 파는 가장 비싼 것으로 사먹고 고기는 콩으로 만든 콩고기를 먹는다. 일반 소고기, 돼지고기가 먹고 싶을 땐 굽기보단 삶거나 장조림을 해서 먹는다. 세 끼 사이에 간식은 먹지 않고 밤 늦게도 먹지 않는다. 저녁 7시 전에는 저녁식사를 마친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습관이 돼서 이렇게도 먹고살 만하지만 사실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것이 제일 괴로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내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한창 건강할 때의 나의 몸과 뭘 먹어도 속이 안 좋은 지금의 내 몸을 비교를 하니 현재의 내가 불만족스러웠다. 예전처럼 맛있는 음식을 배터지게 먹고 싶은데 지금은 그만큼 먹지를 못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밤 늦은 시간에 음식점에서 술과 함께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나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집에서 야식으로 먹는 그 흔한 치맥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건강이 나빠진 나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힘든 시간 다 지나고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의 내 몸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풀떼기만 먹고 어떻게 사냐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살 만하다. 식품산업이 만든 첨가물 가득한 음식을 줄이고 나니 오히려 자연 본연의 입맛을 찾게 되었다. 간식을 안 먹다 보니 매 식사 때마다 밥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자연식이 주는 건강한 맛을 느끼게 된 것이다. 치킨, 케이크와 같은 입 안을 자극하는 맛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건강한 음식이 주는 건강한 맛은 아는 사람만 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더 먹으려는 나와 절제하려는 내가 수시로 싸우고 있다. 빵, 과자를 먹지 말자고, 저녁 식사량을 줄이자고 몇 번을 다짐하건만 나의 결심은 매번 맛있는 음식 앞에 무너지고 만다. 그러다 한 동안 또 조심하다가 또 음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다. 그렇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일어설 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한다. 식습관을 조절하는 일이 내게는 매 순간이 도전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다들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말하는 걸로 봐서는 세상에서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또 식욕은 인간의 3대 욕구 중 가장 첫 번째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먹고자 하는 욕구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유혹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나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제일 강한 유혹을 견뎌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매일, 매순간을, 1년 365일을.


건강한 식습관으로 몸 관리를 하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보통의 사람들만큼의 건강을 따라가지는 못 한다. 평생 절제하며 살 수밖에 없는 몸이다. 나도 이런 내가 불쌍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원망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아프고 보니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많이 공감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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