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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14. 2020

글 잘 쓰는 사람은 길게 쓰지 않습니다

모 판사님이 쓴 책을 읽었다. 평범한 일상 이야기가 많아 내용 자체는 어려운 게 없었지만 이상하게 글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문장마다 길이가 너무 길다는 게 문제였다. 익숙지 않은 어려운 단어도 많이 썼다. 글 잘 쓰는 사람인냥 잘난 척 하려고 일부러 현란하게 썼다는 생각까지 었다. 내가 부족해서려니 하고 계속 읽었지만 결국 승질이 나서 책을 덮었다.


국회에 몸을 담고 있다는 한 저자의 책을 읽었다. 자신의 삶과 생각에 대해 쓴 책이었다. 어려운 내용의 책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단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많았다. 역시나 문제는 문장의 길이에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길었다. 끝날 듯 하면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글이 많았다. 부정에 부정을 더해 비비꼬아놓은 문장도 많았다. 이쯤 되니 드는 생각, '좀 배운 사람이라고 글까지도 잘 쓴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건가?'


책을 읽다보면 이따금씩 열이 받을 때가 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이다. 고학력자이거나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쓴 책만 그런 건 아니다. 요즘 책을 보면 나이, 직업, 학력과 상관 없이 글을 길고 복잡하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 한 문장의 길이가 4~5줄이나 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쓸데없는 접속사가 난무한다. 문장이 길어짐에 따라 앞뒤 문맥도 안 맞고 주어, 서술어 호응도 되지 않는다. 꼭 그렇게 국어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다보면 그냥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문장이 길어도 이해가 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을 때면 짜증이 확 난다. 책 안에 있는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데 문장 해석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쯤되면 책의 주제나 내용이 좋고 나쁨은 뒷전이 되고 혼자 승질을 부린다. 그대로 덮어버리고 싶지만 혹시 읽을 만한 좋은 내용이 있을까 봐 쉽게 덮지도 못한다. 읽어야 할지 덮어야 할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고 만다.



어떤 글이 잘 쓴 글일까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 잘 쓴 글이라 칭하는 글은 바로 짧고 간결하게 쓴 글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글을 길게 쓰는 경향이 있다. 길게 쓴 글이 잘 쓴 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짧게 쓴 글은 못 쓴 글이라 여긴다. 때문에 짧게 쓸 수 있는 글도 무조건 길게 늘여쓰려 하는 것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독서모임에는 신입멤버가 들어오면 자기소개와 함께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글로 써서 올려야 하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다 문장을 길게 쓴다. 난해할 정도로 길다. 한 문장 안에 모든 내용을 다 담으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고 읽으면서 위로가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뭐 이런 식이다. 문장이 길어서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숨이 찬다. 내용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주어와 서술어 호응도 되지 않는다. 한번 바꿔 써보자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힘들었던 내 마음에 위로가 많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렇게 짧게 끊어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간결하기 때문에 이해가 더 잘 된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보인다.


영어회화의 경우 중학교 수준의 문법과 단어만 알면 의사소통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굳이 어려운 단어를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의 사람들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고집한다. 겉보기에만 멋있어 보일 뿐 소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은유적인 표현도 좋고 설명이 아닌 눈에 보이는 듯 쓰는 글도 좋다. 적절한 비유와 예시를 드는 것도 좋고 생동감 있는 단어를 구사하는 것도 글을 잘쓰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기본은 역시 짧게 쓰는 것이다. 간결하게 쓰는 것이다. 현란하게 보이려고 글을 길게 늘여써봤자 독자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뭐든지 기본이 중요하다. 짧게 쓰는 노력 없이는 어떤 글쓰기 스킬도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괜찮은 책이라 생각하고 구매해서 읽었는데 글이 이해가 안 되면 솔직히 돈 아깝다. 책 읽는 사람이 책값을 아까워해서 되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그 책을 읽기까지의 나의 수고가 헛된 노력이 돼버린 것에 대한 분노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열심히 끓인 라면이 간이 싱겁거나 퍼졌을 때의 짜증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간이 싱겁거나 퍼진 라면을 먹을 때면 짜증이 나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돈 몇 푼 때문이 아니다. 슈퍼에 가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신체의 노동, 라면을 사느라 왔다갔다 소비한 시간, 맛있는 라면을 먹는다는 설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기대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한 절규이다. 버리고 새로 끓이려고 하면 그만큼 나의 식욕을 채우기 위한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문장이 길고 어려워 이해가 안 될때면, 책을 사느라 소모한 시간과 체력,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와 책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 등과 같은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독자로서 바랍니다

글 잘 쓰는 비법이랍시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나는 타인에게 글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알려줄 만한 그릇이 못 된다. 그런 재능도 없다. 글 쓰는 작가로서가 아닌 그저 한 명의 독자로서 많은 작가분들이 글을 쉽게 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본 것이다. 책 내용이 재미가 없거나 견해 차이로 인해 공감하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장 자체가 이해가 안 돼서 같은 문장을 되새김질 하듯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건 어쩐지 좀 답답하다. 화딱지가 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문장이 길고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책은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못하다.


아무나 책을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브런치와 각종 SNS에서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왕이면 독자들에게 좀 더 쉽게 읽히는 글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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