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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20. 2020

짧고 간결하게 글 쓰고 싶다면, 《강원국의 글쓰기》

한 편의 글이 있다. 이 글은 과연 잘 쓴 글일까, 못 쓴 글일까?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하고 있으면 뒤에서 누군가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갈수록 이런 증상이 심해졌다.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도 쳐다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태가 됐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내내 수시로 뒤를 봐야 했다. 안 그러면 숨이 가빠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급기야 정신신경과 치료를 받았다.

잘 썼다고 느껴지는가, 못 썼다고 생각되는가?

여기 또 다른 글을 보자.

회사에서 누군가 회의하자고 한다. 내 생각에 회의한다고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지 않다. 별로 할 말도 없다. 왜 회의를 하자는 건지 짜증부터 난다. 그런데 신기하다. 회의를 시작하면 할 말이 생긴다. 30분도 채우지 못할 것 같던 회의가 2시간을 넘겨도 안 끝난다.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급기야 회의를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잘 썼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 썼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잘 쓰지도 못 쓰지도 않은 그저 그런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이 두 글을 읽었을 때 대체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문장이 너무 짧아서 그런지 밋밋하네.'

'글이 너무 간결해서 흐름이 끊기는 거 같잖아.'

'뭔가 좀 심심하단 말이야.'


과거의 내가 이 글을 읽었다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길게 쓰는 글이 잘 쓴 글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이 못 쓴 글이냐고? 아니다. 잘 쓴 글이다. 잘 쓴 글과 못 쓴 글을 구분하는 기준이 다양하고 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다 다르지만 글 쓰기의 기본인 '짧고 간결하게 쓰기'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글은 누구의 글일까? 바로 회장님의 글쓰기》,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등의 책을 쓴 저자 강원국의 글이다.


얼마 전 '글 잘 쓰는 사람은 길게 쓰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문장이 너무 길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불쾌함을 토로했다. 짧고 간결하게 쓴 글이 잘 쓴 글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 글을 읽으신 분은 짧게 쓰는 게 잘 쓴 글이라는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전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헷갈리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예전에 한 특강에서 작가님이 글을 쓸 때 짧게 쓸 것을 강조했지만 어떻게 짧게 써라는 건지 구체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아, 짧게 쓴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하고 깨치게 되었다. 바로 강원국 저자의 책 강원국의 글쓰기》였다. 백분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짧게 써라고 백 번 말해봤자 한 번 보여주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 책에 나와있는 짧게 쓴 글을 몇 개 보여주려 한다.  


글이 안 써지면 이렇게 과거를 돌아본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함께 주변도 둘러본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다. 책이건 칼럼이건 우리가 보는 모든 글은 완성본이다. 최종본을 보니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얼마나 우아하고 완전하게 보이는지. 하지만 미처 못 본 것이 있다.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거쳐온 암중모색의 과정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쓰다 보면 술술 풀리는 때가 반드시 온다. 어둠이 지나면 대명천지가 나타난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물론 믿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방법은 근심하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잊지 않는 것이다. 손은 놓고 있지만 생각은 붙들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기보다는 막연하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기름기 쫙 뺀 담백한 글이다. 문장이 짧으니 이해하기 쉽다. 눈에 확 들어온다. 아래 글처럼 더 짧게 쓸 수도 있다.

글쓰기는 또한 고도의 정신 활동이다. 복합적 능력을 요구한다. 머릿속 생각을 끄집어내면서 적절한 어휘를 찾는다. 문장을 쓴다. 논리적으로 문장을 연결한다. 전체 구성을 짠다. 핵심적인 메시지를 찾아 표현한다. 독자의 지적도 염두에 둬야 한다.

책을 펼쳐보면 3줄 안에 이 8문장이 다 들어간다. 보통 다른 작가들은 1문장을 4~5줄에 걸쳐 쓰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에 반해 강원국 작가의 글은 짧고 간결하다. 1줄에 3개의 문장 또는 2줄에 5개의 문장이 들어가기도 한다. 짧아서 밋밋한 게 아니라 오히려 유려하다. 문장마다 여백의 미가 살아있다. 문장이 너무 짧아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것이 잘 쓴 글이다.


책 한 권을 읽을 때 많은 것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욕심부리지 않고 1개만 내 것으로 만들어서 실천하자는 목표로 책을 읽는다. 책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으면서 배운 한 가지는 이것이다.


'이렇게까지 짧게 쓸 수 있는 거구나!!'


글쓰기나 책 쓰기 방법에 대한 책을 쓴 많은 작가들이 다들 짧게 써라고 말하지만 강원국 작가처럼 짧고 간결하게 쓴 글은 보지 못했다. 강원국 작가는 짧고 간결하게 쓰는 방법을 제대로 보여준다. 나의 생각이나 습관을 바꿔준 책이 몇 권 있다. 강원국의 글쓰기》도 그중 한 권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짧고 간결하게 쓰는 것으로 문체를 바꿨다. 이외에도 좋은 글쓰기 책이나 특강도 많지만 이 책 한 권만 잘 읽어도 아마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짧은 글이 어떤 글인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더 훌륭한 글쓰기 비법은 '짧고 간결하게 쓰기'라는 기본을 지킨 다음에 연구해도 늦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다 짧게 써야 한다는 건 아니다. 긴 문장도 필요하다. 짧고 긴 문장이 조화를 이룰 때 운율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글의 성격에 따라 호흡이 긴 글이 있고 짧은 글이 있다. 하지만 어떤 성격의 글이라도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짧은 문장이라는 말이다. 짧은 문장을 잘 써야 긴 문장도 잘 쓸 수 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라 생각한다. 마치 자신의 학식을 뽐내기라도 하듯 온갖 어려운 내용을 갖다 붙이며 설명해봤자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학문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글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떤 이야기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쓴 글이 좋은 글이다. 그 글이 모여 좋은 책이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면 우선 '짧고 간결하게 쓰기'라는 이 한 가지부터 잘 실천해보자. 무슨 일이든 기본이 중요하다. 짧게 쓰는 기본만 잘 지킨다면 반은 글쓰기에서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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