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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y 31. 2020

가끔은 이렇게 우울한 날도 있는 거겠죠

오늘도 여느 주말과 다름 없이 스타벅스 카페로 향했다. 오전 10시에 도착해서 아이스 디카페인 돌체라뗴를 주문했다. 시원하게 목을 좀 축인 후 노트북을 꺼내 글을 썼다. 책도 읽었다. 한 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왠지 좀 지루했다. 몸도 뻐근했다. 금요일에 연차를 쓰고 금, 토, 일 3일을 달아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탓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목표가 없어서였다. 크고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매일 사소한 목표들, 그러니까 책을 몇 페이지 읽는다거나 글을 한 편 쓴다거나 하는 등의 작은 목표를 매일 세워놓고 실천을 하는데 이런 소소한 목표가 오늘따라 결여된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학교 과제 때문이었으리라.


현재 방송통신대학교에 재학중인 나는 지난 며칠동안 학교 과제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걸 언제 다 하나'하고 생각하며 매일 꾸역꾸역 과제를 했다. 서둘러 한 덕분에 어제 과제를 다 끝낼 수 있었다. 과제를 끝내고 난 다음 날인 오늘, 과제를 할 때만 해도 과제물만 다 끝나면 속이 후련하겠다 싶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제만 끝나고 나면 그동안 쓰고 싶었던 글을 마음껏 쓰고 읽고 싶었던 책을 원없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과제를 끝내고 나니 허무함이 몰려왔다. 과제를 끝내고야 말겠다는 작은 목표가 사라진 것에 대한 허탈함이었다.


글을 쓰기도 싫었고 책을 읽기도 싫었다. 카페에 앉아있기도 싫었고 그렇다고 어디 갈 데도 없었다. 그때 시각 오후 5시였다. 날이 밝아 집에 들어가기도 애매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카페 뒤쪽 골목을 서성거렸다. 만날 친구도 애인도 없었다. 연락할 사람이 딱 두 사람 있었다. 지인 H와 친누나였다. 먼저 친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집에서 키우는 골든 리트리버인 마늘이랑 같이 바닷가에 산책가자고 할 요량이었다. 누나는 매형이랑 아들 도윤이랑 같이 식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했다. 혹시 피곤할까 봐 광안리에 가자는 말도 못 꺼내고 안부만 묻고 끊었다. 다음으로 친한 누나인 H에게 전화했다. 집이라고 했다. 혹시나 볼려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굳이 만나려고 전화한 건 아니었다. 그냥 심심해서 전화를 걸어본 거였다.


폰으로 근처에 산책할 만한 곳을 검색했다. 부산 구남역 위쪽으로 올라가면 구포무장애숲길이 괜찮다는 블로그 글을 봤다. 산책로가 되게 잘 되어있는 것 같았다. 위치 확인 후 곧바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좋았다. 산책로뿐만 아니라 내 기분까지도. 운전하며 이동중일 때는 뭔가 감정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숲길을 걷다보니 금세 진정이 되었다. 가볍게 산책할 생각으로 신고 있던 슬리퍼를 그대로 신고 올라갔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등산복 아니면 트레이닝복이다. 다들 최소한 운동화는 신고 왔는데 나만 슬리퍼다.

나혼자 낯선 이방인이다. 그래도 괜찮다. 어색하긴 했지만 남들 시선을 신경쓰는 것보다 내 마음을 신경쓰는 게 우선이었다. 새소리를 보며 그렇게 걸었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한다. 가까운 거리는 웬만하면 걸어다닌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특히나 더 걷는다. 걷는 것만큼 건강에 좋은 운동은 없는 것 같다. 몸보다 마음건강에 더 특효다.


걸은 지 한 10분 정도 됐던가. 반의 반도 못 올라갔는데 갑자기 물이 떨어졌다. 새똥인가 싶어 올려다보니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비였다. 소나기인 듯했지만 괜히 더 올라갔다가 비만 더 맞을 것 같아 곧바로 내려왔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데 웃음이 났다. 기분전환 좀 해보겠다고 일부러 찾은 숲길이었건만 하필 비까지 내려 걷지도 못하게 되다니. 하늘이 원망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비가 올지도 모르고 이렇게 슬리퍼 질질 끌고 애써 숲길을 찾아나선 내가 웃겼다. 그리고 그 상황도 웃겼다.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새어나왔다. 코와 입에서 입김이 아닌 웃음김이 나오는데 그 속에서 마음 속에 있던 우울함이 배어있는 듯했다. 그렇게 속에 있는 울적한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와 공중분해되었다.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쉬웠다. 마침 구포무장애숲길 입구 바로 옆에 카페 파스쿠찌가 있었다. 구포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였다. 책과 텀블러, 노트북을 가지고 카페 2층으로 올라갔다.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3분 정도 경치를 보며 멍을 때리다가 책을 읽었다. 한 10분 정도 읽었던가. 글이 쓰고 싶어졌다. 노트북을 펼쳤다. 지금 내 기분을 쓰고 싶었다. 낮에는 뭔가 쓰기 싫더니 우울이라는 폭풍이 지나가고 나니 이제 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의식의 흐름대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새하얀 화면 위에 검은색 글자를 하나씩 맞혀가고 있다. 잘써야겠다는 욕심 없이 그냥 막 쓰는 중이다. 욕심을 버리니 편하게 써진다. 쓰는 도중에 글을 너무 밋밋하게 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쓴다. 적절한 비유도, 화려한 수식어도 없이 그냥 막 쓴다. 이렇게 편하게 글을 써본 게 얼마만인가 싶다. 이렇게 솔직담백하게 나를 드러낸 글을 써본 게 언제였나 싶다. 글쓰기에 있어 퇴고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오늘만큼은 퇴고란 없다. 그냥 막 쓰고 발행해버릴거다.


살다보면 우울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해도 우울함이 진정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오늘따라 유독 외로움이 크게 몰려왔다. 아슬아슬한 감정이었지만 그래도 잘 흘러보낸 것 같다. 걸을 수 있는 숲길이 있어 좋았고 멍 때릴 수 있는 멋진 풍경이 있는 카페가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낼 수 있는 브런치라는 공간이 있어서 좋았다. 정말 다행인 그런 하루였다.


저녁 7시 30분이 다 되어간다. 하늘도 서서히 어두워지려고 한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배가 조금 고프다. 저녁을 너무 적게 먹었나보다. 오랜만에 토스트가 먹고 싶다. 가는 길에 하나 사먹고 가야겠다. 이번 한 주도 잘 보냈다. 다가오는 한 주도 파이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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