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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Jun 05. 2020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까지 가지고 와버렸다

이틀동안 몸져눕고 말았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예민한 성격 탓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다. 그래도 웬만한 사소한 스트레스는 사람을 이해하고 상황을 이해하며 잘 넘기는 편인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나의 멘탈은 금세 무너지고 만다. 이번주가 딱 그랬다.


직장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있어 한 달 가량 재택근무를 한 적 있었다. 재택근무 동안에 업무를 많이 할 수 없었고 그 업무량은 고스란히 출근을 한 이후로 넘어다. 현재 직장에서 2년 동안 근무하며 야근을 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코로나19 이후부터 밀린 업무를 하다보니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처음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일을 하다보면 더 할 수도 있고 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야근을 했다. 하지만 갈수록 업무가 늘어나면서 야근을 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야근 횟수가 '가끔'에서 '종종'으로 바뀌고나자 속에서 짜증 섞인 한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날까지 마쳐야 하는 업무여서 야근을 하는 건 그나마 이해가 됐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반장이 내일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오늘 미리 당겨서 하려고 할 때였다. 처음 한두 번은 넘어갔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때부터는 오늘까지 마쳐야 하는 일을 위해 야근을 하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업무 계획을 그렇게 잡은 반장도 미웠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도 싫었다. 불평하는 나와 달리 묵묵히 반장을 따라 일하는 동료에게까지 내 마음 속 불똥이 튀었다. 한 가지가 싫으니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반장의 업무스타일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반원이지만 반장은 반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반원인 나는 매일 업무를 하는 것만 생각하지만 반장은 현재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일을 해야 하는지 등을 계획하고 점검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기한 내 일을 마치기 위해 때로는 야근을 불사르곤 하는 것이리라. 야근을 싫어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반장도 야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쉬면서 여유롭게 일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책임자의 입장에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서라도 일을 마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일 일을 오늘 당겨서 하는 것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일을 해두려고 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웬만하면 야근할 때 군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막 웃으면서 일을 거드는 건 아니지만 시키는 일은 대답을 잘하면서 해낸다.


반장의 입장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보통 이해가 되면 화가 가라앉기 마련인데 나는 이해는 됐지만 화가 났다. 내가 책임감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책임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위치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야근을 하는 것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쯤되면 도대체 얼마나 늦게까지 야근을 하느냐고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얘기하면 아마 기가 찰 것이다. 너무 늦게까지 일해서?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야근하는 시간은 1시간 정도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별 것 아닌 시간이다. 밤 12시는 고사하고 새벽까지 일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고작 1시간 야근하는 것 가지고 이렇게 불만불평을 하냐며 댓글로 나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의 상황이나 생각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현재 직장은 야근이 거의 없다. 매일 오후 5시 30분에 칼퇴근을 한다. 퇴근이 일정하기 때문에 퇴근 후 나의 저녁 일정은 정해져있다. 먼저 운동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러곤 밤 10시쯤 집에 들어와 정리를 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11시에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렇게 매일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인다. 짜인 일정대로 매일 저녁을 부지런하게 뭔가를 하며 보낸다. 허나 야근을 하는 순간 이 모든 시간이 흐트러지고 만다. 물론 시간이 뒤로 조금씩 밀려나는 것일 뿐이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내 시간을 침해받는 것부터가 일단 마음이 좋지 않다.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건 일과 중일 때 해당된다. 퇴근 이후 시간에 일을 하는 게 그게 나는 그렇게 싫다. 한 때 주말도 없이 한 달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매일 밤 10시까지 종일 일을 한 적을 떠올리며 지금에 감사하자는 마음을 가져보려고도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이미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현재의 생활에 적응해버린 나머지 감사함을 느끼기란 어려웠다.


내가 제일 힘든 건 고작 그 한 시간의 야근이 아니다. 일과 시간 이후에 일을 한다는 생각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퇴근 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 드러누워 있다는 것이다. 이번주 수요일과 목요일이 그랬다. 평소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금껏 하루를 허투루 보낸 적이 거의 없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뭔가를 항상 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없지만 특히 나는 나만의 시간을 통해 건설적인 뭔가를 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주에 야근을 하면서 극도로 스트레스가 쌓였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배가 고파 저녁은 먹었지만 그 이후로는 뭔가를 할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마음이 안 좋을수록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밖에 나가 걸어보기도 했지만 기운이 없어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시체처럼 그렇게 있었다.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그냥 눈만 감고 짜증난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직장에서의 모든 분노를 집으로 다 끌어안고 들어오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말았다.



직장 내 갈등 해결법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아주 간단하다. 정중하게 내 생각을 얘기하거나 아니면 그냥 받아들이거나. 솔직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과 시간 이후에 일을 하는 건 싫다. 받아들이려고 노력도 해봤다. '원래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 뒤가 나의 퇴근시간이다'라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머리로만 이해가 됐을 뿐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는 것이 내가 주인이 되는 방법이라고 하길래 그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낼 수 있도록 집 근처에 있는 절에 가서 108배 절을 해보기도 했다. 나아지는 듯했지만 고작 한두 번 가지고는 소용없었다. 내 안에 있는, 분노에 휩싸인 또 다른 자아의 힘이 더 강했다.


그렇다고 말을 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반장이 일부러 일을 더 시키려고 야근을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부서의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바쁘게 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그런 걸 사람 탓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좀 더 융통성 있게 업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아무튼 얘기를 하기엔 뭔가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팀원으로서 팀의 일을 나몰라라 하기도 부담스럽고 앞으로 야근할 때마다 괜히 반장이 내 눈치를 볼까 봐 그런 것도 신경쓰이고 혹시나 내가 서운한 점을 말하면 도리어 반장의 나의 행동을 지적할까 봐 괜히 무섭기도 하고. 뭐 그렇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가 답답하겠지만 이런 나도 내가 답답하다.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일수도

지금 당장은 괴롭지만 어쩌면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서로 맞혀가는 과정,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 현재의 상황과 이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 부딪히면서 나의 뾰족한 부분이 맨들맨들해지는 과정, 그래서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 등.




어젯밤에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새벽 1시였다. 일어나니 생각보다 마음이 개운했다. 잠들기 전에 지인과 2시간 동안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조금 해소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제서야 씻고 집을 정리했다. 그러곤 노트북을 꺼냈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인간고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안 큰 스트레스 없이 직장 생활을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으면서 생각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직장 내 사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거란 생각. 살아간다는 것 참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살아내야지. 대충 말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열심히라도 살아야 중간은 갈 테니까.


지금껏 나를 바꾸기 위해 책도 읽고 강연도 들으며 마음공부를 많이 해왔다. 몰라보게 바뀌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수련과 연습이 필요할 듯하다. 출근하는 직장인분들 오늘도 힘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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