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의도에 있는 한 스타벅스 카페에서 커피 300잔을 주문하고 유유히 사라진 사람이 있었다는 뉴스 기사를 봤다. 그 사람은 이렇게나 많은 커피를 주문해놓고 고작 한 잔만 손에 들고 가버린 것일까?
사람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나눠주기 위해서? 스타벅스 매출을 올려주기 위해서? 아니다. 그것은 바로 스타벅스에서 주는 사은품을 받기 위해서였다. 현재 스타벅스에서는 5월 21일부터 7월 22일까지 약 2달 동안 미션음료 3잔을 포함해 총 17잔의 음료를 마시면 사은품을 주는 e프리퀀시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사은품은 서머체어라는 캠핑용 의자와 서머 레디백이라는 소형 캐리어 느낌의 손가방인데 이중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상품이 바로 이 서머레디백이라는 상품이다.
딱 봐도 예쁘다. 스타벅스 마니아라면 누구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색상, 크기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깔끔하다. 가방을 손에 쥐고 있는 아래 사진을 보니 "이건 꼭 가져야 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실용적이고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사실 그건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받는 호평이라 큰 의미는 없는 듯하다. 아무튼 서머레디백은 출시 전부터 품귀 현상이 예상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정도가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 이벤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웃돈이 붙은 서머레디백이 중고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e프리퀀시 스티커를 거래하기도 하고 사은품을 받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스타벅스에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스타벅스 서머레디백 대란이 아닐 수 없다. 서머레디백이 이렇게 가치가 있다보니 뉴스 기사에 나온 그 소비자도 사은품을 받기 위해 300잔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커피를 주문했던 것이다.
두고 간 커피 300잔은 어떻게 됐을까? 위 사진처럼 무료로 나눠줬다는 말도 있고 대부분 폐기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사진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커피 300잔을 주문했을 때 약 20개의 사은품 수령이 가능하다. 지인들에게 나눠줬는지, 돈 받고 팔았는지, 아니면 집에 모셔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량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20여 개의 사은품을 수령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자기 돈으로 자기가 사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의견과 "아무리 자기 돈으로 산다고 해도 그렇지 그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사은품을 받을 수 없다면 그건 잘못된 것 아니냐."라는 의견으로 나뉜다. 양쪽 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입장만을 옹호하기가 어려운데, 내 생각을 얘기하자면 나는 그 행위가 개인의 자유라기보다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재기라는 쪽에 무게를 더 두는 바이다.
날이 갈수록 인간의 권리가 중요시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에도 범위가 있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자유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 때문에 타인의 자유가 제한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얼마 전 코로나19 확진자 격리를 두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가 아니냐는 일부 사람들의 말이 있었다. 이태원 클럽을 간 사람들을 추적하기 위해 휴대폰 통신사에 협조하여 전화번호를 알아냈을 때도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인 걸까? 코로나19 확진자가 개인의 자유라고 외치며 마음껏 활보하게 되면 더 많은 확진자를 낳을 소지가 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 할 수 없다.
이번 스타벅스 사건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한 사람이 대량으로 커피를 주문해서 있는 사은품을 다 가져가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사은품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기회의 불평등이다. 현재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사회에 분노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기업의 불공정한 채용이다.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인맥을 통한 인재채용 때문에 돈도 없고 빽도 없는 평범한 취업준비생들은 좌절감과 허탈함에 빠지고 만다. 흙수저인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현실이 취준생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커피 300잔(약 130만 원 추정)을 주문해서 사은품을 싹쓸이 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 스타벅스 카페를 가보면 가는 곳마다 서머레디백이 품절이라는 문구가 입구에 붙어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e프리퀀시 스티커를 모아봤자 소용없다. 성실과 노력이라는 가치는 그렇게 쉽게 상실 되버리고 만다.
이번 스타벅스 커피 300잔이 기회의 불평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과 시간이라는 자원이 낭비된다. 300잔의 음료를, 그것도 가져가지도 않을 음료를 만드는 것은 카페 직원의 노동을 헛되이 만드는 것이고 노동에 들인 시간만큼 다른 사람이 음료를 구매하고 마시기까지의 시간을 지연시키게 된다. 또 음료 300잔이 만약 버려진 거라면 플라스틱 컵으로 인해 환경오염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과 자연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300잔 구매해서 사은품 여러 개 얻어 간 사람이 똑똑한 거야. 그거 중고사이트에서 개당 얼마씩 해서 다 팔아봐라. 시세차익이 얼마나 생기겠냐. 역시 돈 잘 버는 사람들은 생각부터가 남다르다니깐."
또 다른 한 지인은 이건 뭔가 잘못된 거 같다고 말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스타벅스에서는 좋아하지. 이렇게 이슈가 돼야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고 커피 판매도 더 잘 될 거니까. 굳이 기업 입장에서 규제를 할 필요가 없는 거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시세차익을 남기기 위해 대량으로 구매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인 것도 맞고 기업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하지 않는 게 기업의 입장이라는 것도 맞다. 그런데 여기서는 맞고 아니고를 따질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봤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더 공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는 특정한 소수자가 아닌 평범한 다수자가 잘 살아갈 때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을 가진 개인이나 기업이 모든 특권을 다 누린다면 빈부격차와 기회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똑같이 나누는 것이 공정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며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당 수량제한을 해달라, 지점마다 보유 수량을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는 등 스타벅스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e프리퀀시 이벤트 종료일인 7월 22일까지 아직 한 달도 넘게 기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스타벅스가 앞으로 어떤 대안책을 내놓게 될지 궁금하다. 기업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부디 다수의 사람들이 기회를 누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일반 기업이 아닌 세계적인 기업이니 반드시 그렇게 해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