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소개팅을 했다. 알고 지내던 누나가 주선해준 소개팅이었다. 누나는 나에게 소개팅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셋이서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자고, 그러다 만약 마음에 들면 그때 둘이 연락처 교환해서 연락을 해보라고 했기에 크게 부담이 없었다. 약속날 당일, 누나와 소개팅녀를 만났다. 먼저 닭갈비 집에서 밥을 먹고난 후 18층 높이에 있는 경치가 좋은 한 카페에 가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음미했다. 사실 처음부터 소개팅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같이 있는 내내 재미가 없었다. 맛있는 밥 한 끼 먹으러 온 거라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달랬지만 닭갈비가 너무 매워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상대방도 식사도 모두 그냥 그랬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안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온 소개팅 자리였기에 마음이 무덤덤했다.
내가 처음으로 소개팅을 해본 것은 작년 이 맘 때쯤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소개팅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뭐랄까. 연애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인위적인 만남이 나는 불편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일어날 법한 만남을 꿈꾼 건 아니었다. 그냥 지인을 통한 만남이나 동호회와 같은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만남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닐 때나 자연스러운 만남이 가능하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지인을 통한 소개가 아니고서는 연애를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내추럴한 만남은 어려우니 인위적이더라도 소개팅을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바꿔먹게 되었다. 허나 내가 소개팅을 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생각은 따로 있었다. 바로 먼 훗날에 나를 되돌아볼 때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연애를 해볼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연애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해본 편이라 생각한다. 20살 이후 사귄 사람은 한 열 댓명 정도 되는데 연애를 짧게도 해보고 몇 년간의 장기연애도 해봤다. 같이 여행을 다니며 나름의 추억도 많이 쌓았다. 지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내가 나름 연애를 많이 해본 축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때 여자를 더 많이 만나볼걸.'하는 아쉬운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점점 어렵다는 것을 느낄 때이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시기는 20대 때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0대가 되고 보니 따지는 게 많아졌다. 예전엔 예쁘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대화나 가치관이 잘 맞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취미가 비슷해 뭔가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예쁘고 착하고 대화가 잘 통하면서 가치관이나 취미까지 비슷한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눈을 낮추려 해도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이렇다보니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가볍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20대 때 여러 사람을 만나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곤 하는 것이다.
그런 후회 속에는 사실 이성에게 자신감 있게 다가가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20대 때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얼굴에 가득찬 붉은 여드름,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마르고 핼쓱한 얼굴, 거기에다 작은 키까지, 그런 내가 너무나 싫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다가가지 못했다. 적극적으로 대시라도 많이 해봤으면 후회가 없을 텐데 자신감이 없던 나는 여성과의 만남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고 그 흔한 나이트 부킹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거절당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 친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차일 때 차이더라도 일단 들이댔어야 했는데.'하는 생각을 하곤 했고 20대 때 연애를 많이 못해본 것에 대한 아쉬움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날엔 '그때 좀 더 더럽게(?) 놀았어야 했는데.'라며 다소 거친 표현으로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그 정도로 지난 시간이 아쉽게 느껴졌다.
소개팅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해보려고 하는 것도 그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현재 나는 여자 친구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다. 혼자서 공원 산책을 하고 혼자 쇼핑도 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매일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이렇게 혼자 지내는 삶에 적응이 될수록 누군가를 만나는 걸 더 기피하게 된다. 나의 자유를 구속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를 안 해도 당장은 괜찮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지금 내가 20대를 회상하며 아쉬움을 느끼는 것처럼 그때 가서도 30대인 오늘을 생각하며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마 연애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주위에는 40살 넘어서도 연애하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어쨌거나 나이가 들수록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30대인 지금 20대 때를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나중에 40대나 50대 또는 60대 이후에 '30대인 그때 연애를 많이 해볼걸.'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적극적으로 연애 사업에 매진해야 할 것 같다.
인생을 잘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가능한 한 후회를 덜 남기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은 혼자만의 시간과 자유로움이 좋지만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연애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겠다. 누군가를 꼭 사귀는 것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그때 내가 노력은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