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고졸이다. 어감도 참 안 좋은 고졸이라는 단어. 겉보기엔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뭔가 부족하고 모자람을 뜻하는 것만 같은 느낌의 단어.
고등학생 수험생 시절 대학만 가면 끝날 줄 알고 쉬지 않고 미친듯이 공부했건만 결국 대학교 1학년 1학기까지만 하고 중퇴를 했다. 그래도 대학교 문턱은 밟아본 셈이니 최종학력은 고졸은 아니고 대학중퇴라고 말해야 하나?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마냥 설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고 그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했다. 대학에 진학했으니 이제 인생은 끝난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껏 캠퍼스 생활을 즐겼다.
내가 생각한 공부가 아니었다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재밌었던 대학 생활도 언제부턴가 회의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부 때문이었다. 당시 내 전공은 경영회계학이었다. 경영학은 그럭저럭 들을 만했는데 회계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며 열심히 필기를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회계에 대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교수님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런 수업 방식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열받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열심히 해도 회계학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이라고 단정지어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어려워도 계속 하다보면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때는 한두 번 해보고 안 되면 금방 포기해버리곤 했다.
수업뿐만 아니라 서술형 방식의 시험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험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선배들의 조언대로 일단은 예상 문제와 답을 달달 외웠다. 무작정 외운 후 시험을 쳤다. 아는 문제가 나오면 다행이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외웠기 때문에 적으면서도 이해가 안됐다. 이게 과연 제대로 된 평가인 건지 의문이었다.
반대로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는 전혀 다른 내용의 답이라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외운 것 중 아무거나 적어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시험과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좋았던 대학의 자유로운 분위기도 나중에는 아니꼽게 보였다. 학교 생활은 뒷전이고 매일 술 마시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툭하면 수업을 빼거나 대리출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이건 내가 생각하는 대학이 아니라고 느꼈다. 차라리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키는 고등학교가 나에게는 더 학교답게 느껴졌다.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말만 믿고 간 대학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내가 왜 대학을 다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퇴를 감행하다
휴학을 한 후 일을 시작했다. 일하며 계속해서 휴학 연장을 했지만 등록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연장은 불가능하다며 학교측에서 전화가 왔다.
곰곰이 생각했다. 다시 대학교를 갈 것 같지는 않았다. 간다고 한들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나 가기 싫은 학교를 4년이란 시간 동안 억지로 다니는 건 돈 낭비, 시간 낭비일 것 같았다. 결국 자퇴를 했다.
대학 졸업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다행히 내 인생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었다. 보통은 취직 때문에 졸업장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나는 회사에 관심이 없었고 대기업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취직한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대부분 단순 업무를 하는 중소기업이라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일하는 데 따르는 불이익도 전혀 없었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서비스업이나 장사에도 대학 졸업장은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평생 그렇게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자퇴한 지 10년 지났을 때쯤 나에게도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걸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 때문이었다.
전 여자 친구인 C와의 일이었다. 한 번은 통화를 하다가 어느 대학을 나왔냐며 C가 물었다. 대학을 안 나왔다고 말하면 실망할까봐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중퇴한 학교 이름을 대며 졸업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 넘어갔지만 계속 속일 수는 없어 얼마 뒤 대학을 중퇴했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내 말을 듣던 C는 별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녀의 태도가 변했다. 전화도 잘 받지 않았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은 차가웠다. 내가 고졸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며칠 뒤 다시 만났다. 내가 대학을 안 나온 것 때문에 마음이 안 좋은 거 다 아니까 솔직히 얘기해보라고 했다. C는 내가 거짓말을 한 게 기분 나쁘다고 말했지만 내가 봤을 땐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안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싫어하는 눈치였다. 나에게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어. 또 우리 부모님도 다 대졸이라 대학 안 나온 사람은 거들떠도 안 보는데, 이래가지고 우리 부모님 어떻게 만날래?"
어떻게 대놓고 이렇게까지 말을 할 수 있나 싶었다. 내 자존심은 꾸깃꾸깃한 종이처럼 구겨져 버렸다. 대학을 안 나온 게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비참했다. 화가 났지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국립대를 졸업하고 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기에 고졸에다가 직업도 변변찮은 내가 못 마땅했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안 나왔다는 것을 두고 이렇게까지 실망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나중에는 C로부터 이런 말도 들었다.
“자기, 맞춤법 잘 알길래 대학 안 나온 줄 몰랐어.”
황당했다. 처음 몇 초 동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대학 안 나온 거랑 맞춤법 잘하는 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건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졸을 얼마나 바보로 봤으면 그렇게 말을 하는가 싶었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되려 C의 수준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말했다.
"대학 안 나온 거랑 맞춤법 잘 아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내 질문에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말을 얼버무렸다. 좀 더 따져볼 걸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나만 초라해질 것 같았다.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C의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나중에 겪고 보니 고졸을 무시하는 건 C만 그런 게 아니었다. 고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바로 내 주위에도 말이다.
"나보고 고졸을 만나란 말이야?"
오랜만에 모인 지인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다들 사귀는 사람이 없어 자연스레 연애와 결혼에 대한 얘기가 오갔고 각자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얘기했다. 먼저 K양이 말했다.
“똑똑하고 학구적인 사람이 내 이상형이야.”
그러자 같이 있던 H가 말했다.
“눈을 조금만 낮춰 봐. 그럼 의외로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K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보고 고졸까지 만나란 말이야?”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고졸인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죄 지은 사람마냥 K의 눈치를 살폈고 앉아있는 내내 고졸이란 사실을 들킬까 봐 가슴을 졸여야 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외모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돈이 없어서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K가 처음이었다. 부족한 학벌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지만 고졸과는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는 말은 다소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말하는 K가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직장에서 만난 동갑내기인 여자사람친구 M은 나와 성향이 비슷해 금세 친해졌고 틈만 나면 회사 사람들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들곤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M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내 말에 웃음보가 터진 M은 박장대소를 하며 한참을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이렇게 헤프게 웃으면 고졸처럼 보이겠지만 이래 봐도 대학 나온 사람이거든?”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본 다음에야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 대졸은 어떻게 웃는 거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괜한 자격지심 같아 물어보지 못했다. 괜히 반박했다가 내가 대학을 안 나왔다는 사실을 들킬 바에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웃음까지도 고졸과 대졸로 나누는 걸 보면서 고졸에 대한 편견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학벌에 대한 편견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부모님 세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만이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중장년층에서도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가족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해외여행 잘 다녀오실 수 있겠어요? 소매치기도 많고 길을 찾기도 쉽지 않을 텐데…”
어머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뭘 그렇게 걱정을 하냐? 옆집 사는 전문대 다니는 애들도 잘만 갔다 오는데 4년제 대학 나온 내가 왜 못가겠니?”
여행을 떠나는데 언제부터 학벌이 필요했는가. 여행에 있어 돈, 시간, 용기 외에 학벌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고졸이 아닌 전문대졸까지도 그런 식으로 무시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경험들을 하다보니 고졸인 나로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편견을 무시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어딜 가더라도 대학 얘기는 항상 빠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독서모임, 영어스터디, 기타동호회 등등 여러 모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꼭 나오는 얘깃거리 중 하나가 바로 대학얘기이다. 동호회와 같은 모임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몇 학번인지 또 전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 눈치를 보곤 했다. 행여나 나한테 물어볼까 싶어 대학 얘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곤 했다.
처음엔 사람들에게 대학을 안 나왔다고 솔직하게 말했지만 그럴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사람들의 그 눈빛과 표정이 너무 싫었다. 대학을 안 나왔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괜히 죄 지은 사람 마냥 주눅이 들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제는 누가 물어보면 ○○대학교에서 경영회계학을 전공했다고 말한다. 1학년 1학기밖에 안 다녔지만 어쨌든 대학을 다닌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간다. 고졸이라고 말해서 창피를 당할 바에야 차라리 대졸이라고 거짓말하는 게 나았다. 그게 서로가 편했다.
정말 무서웠던 건 내가 가진 편견이었다
고졸이 바라보는 고졸은 어떨까? 같은 고졸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며 동질감을 느낄까? 물론 친한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다. 그러나 잘 모르거나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정말 소름끼쳤던 건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선으로 고졸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서로 잘 아는 친한 사람인 경우는 그런 편견이 없었지만 처음 알게 된 사람이 대학을 안 나왔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적잖은 충격을 받는 순간이었다.
사회 구조와 개인의 인식변화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을 보고 손가락질 하는 행위는 있어선 안 된다.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이 학벌의 틀 안에서 규정되어선 안 된다.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렇다고 여러 문제를 사회와 정부에만 떠넘기며 해결방안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개인도 바뀌어야 한다.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인식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학벌 만능주의를 타파하여 학벌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물론 말이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봤자 세상에 적용하기란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허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하나다. 이러한 문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그저 순응하지만 말고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고 개선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씩 바꿔나간다면 앞으로 몇 년 뒤 몇 십년 뒤에는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행복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