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13년차에 깨닫게 된 말하기 기술
직장에서 강사를 초빙하여 1박 2일 동안 인성교육을 받을 때였다. 직장 동료 및 선후배와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도 했다. 그중에서 일을 한 지 얼마 안 된, 교육을 받기 위해 타지역에서 온 20대 초반의 남자인 K가 말했다.
"저희 과장님이요. 제가 교육받으러 간다고 하니까 '놀러가서 좋겠네?'라면서 비꼬듯 말하는 거에요. 그 순간에는 참았는데 교육 끝난 후에 나중에 과장님이 또 그렇게 말하면 저도 맞받아치려고요. 참지 말고 자신있게, '놀러간 거 아니거든요!!'라고 큰소리치려고요."
K는 참지 않고 화를 내며 말하는 게 되게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K가 내 눈에는 되게 귀여워보였다. 맞받아쳤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어떻게 말하는 게 더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지 나름의 경험을 이야기 해주고 싶었지만 혹여나 꼰대로 보일까 싶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조언을 구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가서 말해줄 이유도 없었다. K에게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교육을 진행했던 강사님이었다.
"나중에 과장님이 '놀러 잘 갔다왔냐?'라고 물으면 화내지 말고 이렇게 한번 얘기해보세요. '과장님, 저도 처음엔 놀러간다는 생각을 하고 가긴 했는데요. 막상 가보니까 참 배울 게 많더라고요. 교육 때 배워온 게 앞으로 사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습니다.' 이렇게 부드럽게 말이죠.'
K의 표정을 보아하니 강사님의 조언이 그리 가슴이 와 닿지는 않은 듯했다. 그런 K가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 역시도 K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20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화를 참다가 안 되면 터뜨려야 한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나는 어디서든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렸다. 그런 성격은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작은 일에도 자주 분노했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 때는 미친 사람마냥 불같이 화를 냈다. 때로는 직장 상사와 소리치며 싸우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땐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화가 나면 당연히 화를 내야 하는 건 줄 알았다.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내면 나도 똑같이 화를 내야 하는 건 줄 알았다. 누군가 나에게 화 내지 말고 좋게 말하라고 얘기를 해도 나는 "화가 나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낼 수 있겠냐"라며 맞받아치곤 했다.
그런 생각을 바꾸게 된 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몇 년 동안 행복과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읽고 강연을 들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배운 것을 직장 생활에 직접 적용하고 실천해봄으로써 화가 났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나의 의사를 표현하면 되는지도 배우게 되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화를 내지 않고 나의 생각과 감정, 상황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20대 중반 때 생산직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과장님이 지시한 방식대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본 부장님이 왜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냐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순간 나는 기분이 나빠서 "과장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요!!"라며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때 일의 방식이 잘못된 건 뒷전이고 내가 짜증을 낸 것을 두고 부장님에게 오랜 시간 꾸중을 들어야 했다. 부장님은 과장님이 그렇게 일을 시킨 건지 모르고 물어본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물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때 내가 "예 부장님, 과장님이 이렇게 하라고 해서 이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얘기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다. 굳이 짜증내면서 말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화는 화로 응수하며 20대를 보냈던 내가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몇 달 전 직장에서 겪었던 일이다. 부서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있었는데 그때 우리 부서에서는 내가 맡은 일만 유독 부당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엔 '내가 막내라고 이런 일만 주는 건가' 싶어 순간 기분이 나빴다. 마음같아서는 "이거 좀 부당한 거 아닙니까? 왜 저만 이렇게 일을 많이 해야 돼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화를 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일단 감정을 가라 앉힌 뒤 업무분장을 한 상사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업무분장을 하신 거 보니까 제가 맡은 일 중에서 이런이런 부분이 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저렇게 수정을 했으면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다행히도 상사는 나의 애로점을 잘 이해해줬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수정해주었다. 그 일을 통해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말고 조곤조곤 얘기하면 좋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하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랬다. 사실 누구나 아는 내용인데도 아는 대로 실천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게 마음처럼 안 되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말하는 방법을 머리로 생각하는 것만큼 가슴으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화를 내보면 안다. 감정적으로 화내면서 말하는 게 얼마나 상황을 악화시키는지. 반대로 화가 날 때 화내지 않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조곤조곤 얘기해보면 안다.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어려운 상황도 쉽게 풀릴 수 있는지. 때문에 본인이 겪어봐야 안다.
물론 상대방이 화내지 않고 항상 웃으며 말한다면 나도 화낼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을 바꿀 수는 없다. 상대방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면 좋게 이야기 해야겠지만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상대방이 웃으면서 말한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웃으면서 말해야 하는 건 아니듯 상대방이 화를 낼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화내며 말한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화낼 필요는 없다. 화가 난다고 해서 꼭 화를 내야 하는 건 아니다. 화가 나더라도 화내지 않고 얼마든지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말할 수 있다.
요즘 신입 후배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내가 업무에 대해 물어봤을 때 조금 삐딱하게 말하는 후배도 있고 기분이 나쁘면 표정이 뚱~해져서 아무 말도 안 하는 후배도 있다. 그런 후배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으면 상황을 제대로 얘기해주면 좋을 텐데.'
'표정으로 말하지 말고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말해주면 내가 더 이해하기 쉬울 텐데.'
사회초년생인 후배들이 하루 빨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하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 때 직장생활도 사람관계도 더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가 실천하려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