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를 만났다. 서로 마음이 통해 금방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녀와 사귀고 난 이후부터 하루하루가 설레었다. 같이 있으면 모든 걱정을 다 잊어버릴 정도로 행복했다.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 보니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앞으로 뭔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때가 유럽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일을 쉬고 있을 때였는데 여자 친구를 생각하니 마냥 좋다고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빨리 남 보기 번듯한 직장을 구해야했다. 서른을 앞두고 있던 때라 이제는 자리를 잡아야한다는 생각도 강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내게 어느 날 여자 친구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이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가 있는데 자기도 공무원 시험 한번 쳐볼래?”
웬 공무원 시험인가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설령 시험을 준비한다고 해도 내 머리로는 합격할 수 없는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는 왜 그렇게 다들 공무원 시험에만 몰리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나만큼은 그 경쟁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계속 생각이 났다.
‘공무원 시험이라…’
그러다 문득 군무원이라는 직업이 있다고 알려준 지인 L이 생각났다. 바로 전화를 걸어 군무원 시험에 대해 물어봤다. 갈수록 경쟁률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공무원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 도전해볼 만할 것 같았다. 그래도 국가직 시험이기 때문에 만만하게 볼 시험은 아니었다. 며칠을 고민했고 그러다 결국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나를 위한 시험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진로를 찾기 위한 새로운 도전 같지만 사실은 여자 친구를 위한 시험이었다. 남보기 괜찮은 직업을 가져야만 여자 친구와의 만남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왜냐하면 여자 친구의 직업이 교사였기 때문이다. 변변찮은 직장도 없고 대학도 안 나온 나를 여자 친구가 계속해서 만나줄 리 만무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여자 친구는 부모님께 나를 소개해주지도 못했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은 대기업을 다니는 여자 친구의 전 남자 친구도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하는데 그런 걸로 봐서는 나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자 친구를 계속 만나려면,
여자 친구 부모님께 나를 당당하게 소개하려면
여자 친구와 같은 공무원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막상 시작은 했지만 사실 두려웠다.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서 했던 것이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웠다. 외딴 섬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부딪쳐야만 했다.
수업 첫 날, 걱정과는 달리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이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 죽어라 공부를 해 본 경험 덕분에 앉아 있는 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여자 친구와 예전처럼 데이트를 자주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당장의 현실보단 미래를 위해 참고 공부했다. 그런 나를 여자 친구도 응원해줬다.
초반엔 공부가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며칠이 지난 뒤였다. 국어, 국사는 괜찮았는데 그 외 전공과목이 너무 어려웠다. 처음 해보는 학문이라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책을 펼치면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로밖에 안 보였고 그 글자마저 알 수 없는 외계어와 형이상학적인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수업을 들을수록 짜증이 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 정도로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험에 합격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오더니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수업 도중에 결국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학원을 다닌 지 겨우 2주 만의 일이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학원 복도 계단에 서서 엉엉 울었다. 단순히 공부가 힘들고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그 눈물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우선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여자 친구와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웠다. 시험에 떨어져서 이별을 통보받고 슬퍼하는 내 모습이 자꾸 그려져 괴로웠다.
어머니의 얼굴도 떠올랐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내가 갖은 고생을 하며 일해 온 모습을 옆에서 안타까워하며 지켜보셨다. 그런 자식이 이제 시험에 도전해보겠다고 하는데 그 시험마저 떨어지는 걸 보면 얼마나 속상해하실지 그 표정이 자꾸 아른거렸다. 돈이 모자라면 얼마든지 보태줄 테니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만 열중하라며 그렇게 나를 도와주시는데 그 믿음에 보답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났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20대에는 진로를 찾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공사장 막일까지 해가며 여러 직종의 일을 경험해봤지만 도저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것이 군무원 시험이었는데 이 시험마저 떨어진다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몰려왔다. 그때는 군무원 시험이 단순한 시험이 아닌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시험에 불합격하게 되면 낙오자가 될 것만 같았다. 세상이 너무 무서웠다. 진로에 대한 나의 고민은 그 정도로 심각했다.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학원에 가지 않았다. 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쉬었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말을 하는 순간 스스로 구제불능인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될 것만 같아서였다. 하는 일마다 꾸준히 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그만두는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자처럼 보일 내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오롯이 혼자서 견뎌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2 ~ 3주 정도 지났을까? 어느 정도 쉬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으로 갔다. 공부를 하려고 간 건 아니었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수업 시간에 앉아만 있다가 오자고 생각했다. 손은 가만히 둔 채 칠판을 쳐다보며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봤다. 이해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넘어갔다. 그렇게 마음을 가볍게 먹고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 어렵던 전공과목도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개만 배우자는 마음으로 공부하면서부터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다시 펜을 꺼내들고 필기를 했다. 그렇게 적응해 나가는가 싶더니 이번엔 다른 일이 터졌다. 여자 친구와의 이별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1달 만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이별을 말한 건 그녀가 아닌 바로 나였다. 여자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땐 몰랐는데 몇 달 사귀고 보니 우리 둘은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나를 가르치려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그런 삶의 지표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실수로 말을 잘못할 수도 있는 것을 "그건 A가 아니라 B야."라는 식으로 일일이 지적하곤 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주길 바라는 내 마음과 달리 그녀는 일일이 짚고 넘어가야 속이 후련한 듯했다.
뿐만 아니라 가끔씩 나를 무시하는 식의 말투 때문에 나의 자존감은 점점 떨어졌다. 가뜩이나 교사인 여자 친구에게 자격지심을 많이 느꼈는데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녀의 말과 행동은 나의 자격지심을 더욱 부추겼다. 아무리 이해하고 맞춰보려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계속 싸우고 대화하면서 서로 조금씩 맞추다보면 나아질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다툰 날에는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날이 점점 늘어나다보니 이러다가는 공부도 여자 친구도 둘 다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할 때라는 걸 직감했다. 문제의 그 날도 사소한 일로 다퉜고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
헤어지고 나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덤덤하게 돌아서 가는 여자 친구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고한 이별이었는데도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 생각과 너무 달랐다.
바로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을 수도 없었고 붙잡아서도 안 됐다. 지금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분명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든 참아야했다. 그녀를 보낸 후 길거리 벤치에 앉아 머리를 싸맨 채 한참을 앉아있었다.
한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공부를 할 수도 없었고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조금씩 나아졌다. 한 달쯤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문득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공부였다. 시험합격이었다. 다시 학원으로 갔다. 수업이 머리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공부를 해야 했다.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이 순간을 돌이켜봤을 때 흐뭇하게 웃을 수 있으려면 반드시 시험에 합격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했다. 오로지 시험합격만 바라보며 미친 듯이 공부했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읽고 또 읽었다. 학원에는 항상 1등으로 도착했다. 도서관에 가는 날에는 매일 아침 7시에 도서관에 도착해 밤 10시까지 공부했다. 하루 15시간씩 공부했고 도서관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쉬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너무 무리를 하는 것도 같았지만 그 정도로 독하게 공부해야 합격할 것 같았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공부에 더 집중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공부 생각뿐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앞날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언제 어디서든 그녀가 내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때 꼭 합격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직업도 없는 백수에다가 대학도 안 나온 별 볼일 없던 내가 이만큼 해냈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김없이 다가온 시험 날
오지 않을 것 같던 시험일도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왔다. 필기시험 당일 날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시험시작 전부터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이었으나 한 과목이 너무 어렵게 나오는 바람에 왠지 떨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 달 뒤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가 공지되었다. 파일을 열었지만 혹시나 내 수험번호가 없을까봐 겁이나 스크롤 바를 내릴 수가 없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천천히 스크롤 바를 내려 내 수험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중간에 낯익은 수험번호가 하나 있었다. 내 수험번호였다. 합격이었다. 처음엔 믿기지가 않더니 수험번호를 30번 넘게 확인한 뒤에야 합격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부모님께 합격소식을 전했다. 너무 고맙다며 누구보다 크게 기뻐하셨다.
나는 기쁘기보다는 얼떨떨했다. 면접이 남아있었기에 아직 안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면접 준비에 들어갔고 한 달 동안 연습한 후 면접을 치렀다. 필기시험보다 면접이 몇 배는 더 떨렸다. 면접이 끝나고 최종합격자 발표 일까지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최종합격자 발표 당일, 운이 좋았던 것일까? 최종합격자 명단에 내 수험번호가 있었다. 그렇게 군무원 시험에 최종적으로 합격을 하게 되었다.
최종합격 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종합격 후 헤어졌던 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이미 다 끝난 사이인데 지금 하는 전화가 무슨 의미가 싶어 안 하려고 했는데 지인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그냥 한 번 연락 해보는 거지 뭐. 뭐 어떻노? 해봐라 한 번."
다른 뜻이 있어서 전화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시험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시도했다 하더라도 그만큼 열심히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5분 정도 통화를 했던 것 같다. 별 얘기는 없었다. 서로 안부를 물었고 덕분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 전화를 끝으로 함께한 시간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다 털어낼 수 있었지만 그녀에 대한 고마운 만큼은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애뜻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이별을 고한 것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것밖에 안 되는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나를 이렇게 만들어주려고 만나게 된 인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런 나를 위해 하늘님이 맺어준 인연이었으리라. 고맙고 또 고맙다.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들려오는 소식조차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항상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