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부터 과일판매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by 기타치는 권작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10가지가 있다면 공부는 그중에 겨우 1개야."

고등학생 때 국어선생님이 우리들에게 한 말이었다.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만 그때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다.


종일 공부만 하고 살았다.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내가 생각한 대학과는 많이 달랐다. 결국 1학년 1학기만 하고 자퇴를 했다. 이후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답을 맞히는 것만 잘하면 됐지만 사회에는 답이 없었다.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앉아서 생각만 해봤자 변하는 건 없을 것 같아 일단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남들이 비웃는 하찮은 일이라도 다 겪어보려 했다.


고기집, 호프집, 피자배달, 소주 제조공장, 착즙기 조립, 인형 탈 쓰고 홍보하기, 전단지 배포, 주차장, 호텔 연회식, 세차장, 백화점 구두 판매, 명품 가방 판매 등의 아르바이트부터 공사장 막일, 세탁기 조립, 컴퓨터 부품 검사, 윤활유 납품, 달걀 배달, 보험, 가구시공, 과일판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20대 때 했던 일들이다.


다양한 일을 해보면 그 속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 보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혹독했다.


나의 첫 직장은
일 많기로 소문난 회사였다

나의 첫 직장은 LG세탁기의 부품을 조립 및 품질검사의 업무를 하는 P라 이름의 회사였다. 이모들이 많아 분위기는 편안한 편이었고 친구와 같이 입사한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잘 들어왔다 생각하며 즐겁게 일했지만 갈수록 일이 많아졌고 어느새 감당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일이 늘어났다. 일이 많을 땐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해서 밤 10~11시가 돼서야 겨우 마쳤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나가야 했다. 그렇게 일을 해도 물량을 다 쳐내지 못할 때는 조기출근을 해서 7시부터 일을 시작했고 그래도 안 될 땐 중식잔업이라고 해서 점심시간까지 쪼개서 일하곤 했다. 그 정도로 바쁜 기간이 1년 중 절반을 넘었다.


매일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하루가 1년 같았다. 마치 감옥에 갇혀있는 듯했다. 일하는 기계가 된 것 마냥 몸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한 번은 퇴근 후 되게 피곤했는지 침대에 앉은 채로 아침까지 잠이 들었던 적도 있었고 앓아눕는 바람에 출근조차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러다 곧 쓰러지겠다 싶은 순간을 수없이 겪었다. 힘들었지만 시간은 어떻게든 흘렀고 일한 지 3년 6개월에 접어들었을 때쯤 이사를 하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 동네에서 일 많기로 소문난 회사였던 P에서 첫 번째 직장 생활을 함으로써 사회생활의 첫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이사 후 집 정리를 하며 몇 달을 쉬었다. 나중에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마땅히 할 만한 일이 없었다. 마냥 놀고 있을 바에는 새 직장을 구하는 동안 뭐라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바로 막노동이었다.



<젊은 막노동꾼>

이직을 하는 중간중간에 틈틈이 막노동을 했다. 친구 집에서 얹혀 살며 두 달 동안 막노동을 나가기도 했고 타역에 가서 2주 동안 합숙을 하며 일을 한 적도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 그렇게 힘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경험을 쌓는다 생각하며 일했다. 매일 받는 몇 만원의 일당도 제법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고 그 자체로 배움이었다.



<과일파는 총각>

내가 해봤던 일 중에서는 과일가게에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일이 제일 재밌었다. 예전부터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했고 서비스업과 장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과일판매 일을 내 적성과 잘 맞았다. 어떻게 적성 맞춰서 일을 하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일판매 일을 통해 일에도 적성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보험 영업을 하며 투잡을 뛰다>

보험 영업을 했던 시기도 이쯤이었다. 보험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던 지인을 통해 보험업에 발을 들이게 됐다. 투잡으로 활동이 가능해 과일가게 일과 병행할 수 있었고 배정된 파트너가 함께 다니며 고객에게 컨설팅을 해줬기 때문에 보험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부담이 덜 했다.


먼저 보험 FC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시험을 쳤다. 운 좋게도 첫 시험에서 바로 합격을 했다. 마침 보험이 필요하다던 지인들이 있어 몇 건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수입도 제법 짭짤했다.


하지만 보험도 얼마 못가서 그만뒀다. 사람들에게 보험을 권하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인들에게는 더 그랬다. 보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면 모를까, 괜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진 않았다.


보험 일을 그만 두고 곧이어 과일판매 일도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그만두었다. 1년 동안 과일가게에서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혼자 45일 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7개국 20개 도시를 여행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몇 달을 쉬었다. 모아놓은 돈도 거의 다 떨어져가고 쉴 만큼 쉬었다고 싶을 때쯤 다시 일자리를 알아봤다.



<일주일 만에 그만둔 달걀 배달>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보니 이때부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이 됐다. 한참 알아보다가 하게 된 일이 바로 달걀 배달이었다. 트럭에 수백 판의 달걀을 실은 후 슈퍼마켓을 돌며 배달하는 일이었다. 유통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선택한 일이었다.


별의별 일을 다 해봤지만 달걀 배달을 한다고 하니 어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식인 내가 사무실에 앉아서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일했으면 좋겠는데 또 밖에서 비바람 맞아가며 일한다는 게 마음이 쓰이는 듯했다. 운전하는 일이라 하니 교통사고라도 나진 않을까 싶어 더 걱정을 많이 했다.


어머니의 걱정만큼이나 나도 내가 답답했다. 여러 일을 해보기는 했지만 어떤 일을 내 업으로 삼을지 뚜렷하게 보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일을 해보자 싶어 시작했지만 결국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여러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불안해져만 갔다>

또 다시 방황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불안한 마음은 더욱 커져갔다. 처음 뭔가를 할 때만 해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여러 일을 하면 할수록 처음 가졌던 희망은 점점 불안감으로 변해갔다. 생각이 많았지만 무슨 일이든지 다시 시도해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중학교 동창인 C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 C는 유명 가구업체인 H에서 가구 배송 및 시공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월 400만 원을 번다고 했다. 돈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가구 시공이라는 기술을 배워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친구 밑에서 일을 배워보기로 했다.



<친구 밑에서 가구 시공을 배우다>

친구와 같이 2인 1조로 다니며 서랍장, 침대, 붙박이장과 같은 가구를 배달하고 조립하는 일을 배웠다. 뭔가를 고치고 만드는 활동적인 일이라 내 적성과는 잘 맞았고 일이 없는 날엔 오후 일찍 마치기도 했다. 부사수였던 나는 사수인 친구에 비해 월급은 얼마 안 됐지만 직업을 정하는 게 시급해 돈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할 만하다 싶었던 이 일도 계속 하다 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우선 매일 무거운 걸 들고 나르다 보니 힘이 많이 들었는데 한 번은 너무 무리를 했는지 물건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적도 있었다. 일을 하다 실수를 했을 때 다른 사람도 아닌 친구한테 욕을 먹다보니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밥을 굶어가며 일하는 거에 비하면 그런 건 참을 만했다. 친구는 일을 빨리 끝내고 일찍 퇴근하기 위해 점심밥까지 굶어가며 쉬지 않고 일했다. 그렇다 보니 덩달아 나까지 점심을 굶을 수밖에 없었다. 일 하는 것도 사람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밥을 굶어가며 일하는 건 나의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잠깐은 괜찮지만 평생 이 일을 한다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일을 오래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그 생각에 불을 지핀 또 다른 일이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비를 맞으며 나는 결심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가구 자재를 아파트 안으로 옮기는 그 몇 초 동안에 온 몸이 다 젖어버렸다. 엘리베이터 안에 물건을 다 싣고 난 후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다 젖어있었고 머리에서는 샤워기를 틀어놓은 것 마냥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거울 속의 내가 불쌍하다 못해 처량해보였다. 이런 식으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일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가구 시공 일을 그만두게 됐는데 일을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그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어느 날 여자 친구가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권유했고 여자 친구의 그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180도로 뒤바꿔 놓게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