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지인들에게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대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학창시절이라고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그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런 지인들과 달리 나는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지금이 제일 좋기 때문이지만 사실 학창시절을 떠올려봐도 그렇게 유쾌한 기억이 없다. 고등학생 때는 하루에 4시간밖에 못자며 종일 공부만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고 초등학생 때는 몸은 허약하고 성격은 신경질적이다 보니 짜증을 내며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나마 중학생 때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재밌게 놀았던 순간이 많았지만 그것보단 불안해하던 나날들이 먼저 떠오른다. 힘깨나 쓴다는 무리 속에서 겪은 일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과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지지 않기 위해 맞서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오랫동안 나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몇몇의 친구들, 아니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나 살다보면 아픈 기억 하나 정도는 다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내게는 중학교 시절이 그랬다.
불량했던 중학생 시절의 나
중학생 때의 나는 또래에 비해 작고 마른 체구의 아이였다. 보기는 약해보여도 한 성질 하는 성격인데다가 주먹도 잘 쓰는 편이라 학교에서 나를 만만하게 보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나중에는 학교에서 싸움을 좀 한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소위 말해 좀 논다는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했고 힘을 가진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고도 많이 쳤다. 단체로 학생주임에게 불려가 벌을 서고 매타작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도 다 추억이라 생각했다. 때로는 선배들에게 단체로 끌려가 맞기도 하고 선배들이 시키는 고된 심부름도 해야 했지만 그것마저도 다 추억이라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철이 없었다.
그러다 다른 학교에서 잘 나간다는 친구들과도 어울리게 됐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인 일탈이 시작되었다. 학교를 마치면 항상 우리들의 아지트인 오락실에서 모여 오락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놀았다. 다들 돈은 없었지만 그냥 어깨에 힘주며 몰려 다니기만 해도 재밌었다. 그야말로 우리들 세상이었다. 해서는 안 될 나쁜 짓도 많이 했다. 그땐 정말 다들 겁이 없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었다. 계속 그렇게 재밌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오랜 시간 상처로 남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싸워야했다
당시 같이 놀던 다른 학교 친구들 중 E가 이유 없이 내게 싸움을 걸었다. 그때 말로 하자면 맞짱을 뜨자고 한 것이다. 작고 마른 내가 만만하게 보였던 것이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최적의 먹잇감이 나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싸우고 싶진 않았지만 친구들이 보고 있었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싸워야했다.
아파트 뒤쪽에 있는 공터로 열 댓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E와 나는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동물을 보는 것 마냥 흥미롭다는 듯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하늘이 빙빙 돌고 코가 굉장히 찡하고 아팠다는 기억밖에 없다.
싸움을 시작한 지 몇 초가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아이들이 우리 둘을 갈라놓고 있었고 내 신발 위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코피였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 고개를 숙인 채 멍하니 서있었다. 바닥은 금세 빨간 피로 물들었다. 근처에 있는 화장실로 가서 피를 닦은 후 머리를 뒤로 젖혀 지혈을 했다.
나와 싸웠던 E와 다시 마주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배신감 때문이었다. 친구라 생각하고 믿었는데 이렇게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었지만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때 받았던 충격은 너무나 컸다.
집에 가서 보니 코가 퉁퉁 부어있었다. 그때는 골절이 되면 붓는다는 걸 몰랐다. 단순히 부은 거라고만 생각하고 병원에 가지 않고 그대로 뒀다. 며칠 뒤 붓기가 다 빠지고 보니 코가 옆으로 살짝 휘어져있었다. 그땐 이미 골절된 뼈가 붙어버려서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그 싸움이 끝이 아니었다. 다들 전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내던 어느 날 E가 나를 불러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일단은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곳에는 E와 그리고 K가 함께 있었다. 나보고 화장실로 따라오라고 하더니 갑자기 나를 때렸다. K가 다른 친구 욕을 하는 걸 듣고 내가 그대로 전해준 게 문제였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나 때문에 친구들 사이가 틀어져 버린 것이었다.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이게 맞아야 할 이유가 되는 건지 싶었다. 덤빌 자신이 없었던 나는 저항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맞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울었다. 함께 지내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나를 때린 E도 미웠지만 옆에 있던 K의 싸늘한 눈빛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K는 내가 누구보다도 믿고 의지하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친구가 전부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친구들의 배신은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나를 힘들 게 한 건 E뿐만이 아니었다. 무리 중에는 100kg이 넘는 거구의 체격을 가진 L이 있었는데 평소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다퉜다. 앞에서는 친한 척 하면서도 뒤에서는 서로를 욕했고 거친 말이 오가며 말다툼을 한 적도 많았다. L은 다른 친구들을 이용해 나를 따돌리려 했고 나에 대한 거짓된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기도 했다. 나는 겉으론 강한 척 했지만 사실은 그 친구가 무서웠다. 다행히 주먹이 오가는 싸움은 없었지만 L과 언제 주먹다짐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E와 L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무리들 중 또 다른 한 명과 사소한 일로 시비가 걸려 주먹이 오간 적도 있었는데 그런 식의 일은 나 말고도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무리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싸워야 했고 나 스스로가 강해져야 했다.
겁 많고 나약한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운동도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매일 200개씩 하며 몸을 단련했다. 하지만 몸과 달리 마음은 어떻게 해도 단련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세계는 겁 많고 나약했던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더 이상 그 친구들과는 마주칠 일이 없었지만 문제는 꿈에서까지 나타나서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꿈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나를 쫓아와 겁을 주고 협박하는 꿈이었다. 그런 꿈을 꾸다가 깰 때면 그게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꾸는 꿈 중 최악의 악몽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지 않지만 몇 년 동안 같은 꿈에 시달렸던 걸로 봐서는 어릴 때 겪었던 사건들이 마음 약한 나에게 큰 상처로 남았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E의 소식을 들었다. 폭행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고 했다. 몇 년 뒤 L의 소식도 들었다. 자살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안 계셨던 L은 혼자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미워하고 으르렁거리던 L이었지만 막상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E만큼은 고소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을 때리고 괴롭힌 죗값을 그렇게 치르는 거라 생각했다.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 중 대부분은 내가 굉장히 밝고 긍정적이며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과거의 나는 상처가 많은 아이였다. 성격이 예민하고 열등감이 심해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아파했다. 친구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 강한 척을 했지만 사실은 약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악을 썼던 것 같다.
누구보다도 겁도 많고 눈물도 많았던 그런 내가 어쩌다 그런 세계의 아이들을 만나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겪어야했는지 생각할수록 과거의 내가 애처로웠다. 내가 만약 키가 크고 덩치가 컸더라면 그렇게 무시당하고 시비를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왜 나는 이렇게 작고 마르게 태어나서 이 모양 이 꼴인 건지 속상했다.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기로 했다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로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바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상처 입은 과거의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여정이라고 했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게 하고 그런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책에서는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꼭 한 번은 가장 아픈 기억을 꺼내서 이렇게 글로 써보고 싶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그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중학생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마치 성인이 된 내가 혼자 힘들어하며 울고 있는 과거의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힘 좀 쓴다는 덩치 큰 친구들 사이에서 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는 내가 안쓰럽다. 그 무리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내가 안타깝다. 믿었던 친구에게 두들겨 맞고 울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하게 태어나서는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또 길을 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시비를 당하고 욕을 들어야 했는지 그런 내가 미웠고 세상도 미웠다. 나보다 어린 동생한테 시비 당하고 욕을 먹었을 때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셈치고 넘어갔지만 한 마디도 못한 내가 너무 바보처럼 느껴져 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일들을 20대 초반 때까지 겪었다. 이게 다 동네가 좁은 탓이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묻어두고 살지만 가끔씩 울컥울컥 고개를 들고 상처를 되살리기에 한 번은 그 상처와 마주하고 털어버리고 떠나보내야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꼭 한 번은 그 아이와 만나야 한다. 《하루 다이어리》이진이
그냥 잊으려 했다. 생각 안 하고 살면 자연스레 잊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은 만나야 한다. 상처입어 혼자 울고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대화를 나눠야 한다. 어릴 때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그때의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이젠 지난 과거를 훌훌 털어내려고 한다.
겁 많고 소심했던 과거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잘 버텼다고, 그땐 많이 힘들어하고 때론 울기도 했지만 이만한 게 다행이라고 말이다. 심장 떨릴 정도로 두려운 순간도 많았지만 정말 잘 견뎌왔다고, 이젠 다 괜찮다고, 앞으로도 다 괜찮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