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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Dec 11. 2023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카페에 간다

일요일이었던 어젯밤 11시경 집에서 영화를 틀었다. 보통은 잘 준비를 하는 시간이나 어제는 자정이 넘도록 영화를 즐겼다. 다음날이 연차이기 때문이다. 편안히 영화를 감상 후 잠자리에 들었다. 월요일이 기대됐다. 비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에 카페 가는 걸 좋아한다. 카페에서 비 오는 날의 감성을 즐기곤 한다. 그런데 마침 연차 쓴 날에 비가 온다? 아주 완벽한 날이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비가 올 때 카페에 가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남들 일할 때 카페에 가는 거다. 어떨 때 기분이 좋냐고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대답 중 하나가 바로 '비 오는 날에 연차 쓰고 카페에서 휴식하기'이다. 그 정도로 연차, 비, 카페는 나에게 완벽한 조합이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 8시 30분경에 눈을 떴다.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적당한 기상 시간이었다. 대강 집 정리를 한 후 아침밥을 차렸다. 넷플로 애니메이션을 보며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했다. 역시 연차 쓴 날의 아침 식사는 여유롭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잠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나른한 피곤함이었다. 눈만 잠깐 붙여야지 하고 누웠다. 매트리스에 누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예 푹 자버릴 거 같기도 하고 또 금방 먹은 음식물이 역류할 거 같기도 해서 안락의자에 누웠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자다 깨 반복했다.

'어? 10시네, 일어나야 하는데.. 흠냐.. 음..'

'엇? 벌써 11시라고? 와 진짜 일어나야 되는데.. 흠냐..'

'앗! 12시 30분이잖아? 제길 망했어..'

 

오전 내로 카페로 갈 생각이었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아이고, 망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파워 J세요?"라고 할지 모르겠다. 아니다. 난 P다. 계획보단 즉흥을 선호한다. 29살 때 혼자 45일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도 아무 예약도 없이 딸랑 비행기 티켓만 하나만 끊고 떠났을 정도로 즉흥적이다. 다만 큰 틀은 세운다. 그 틀이 완전히 뒤집어질 때 불편해진다. 오늘처럼 이렇게 잠으로 오전 시간을 다 날려버릴 때가 그렇다.  


오후에 카페 간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지만 그냥 일찍 가고 싶었다. 평소 집에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라 그렇게 잠으로 오전을 다 보낸 게 아까웠다. 정신없이 잔 건 꿈 때문이었다. 정보원이 되어 특수 임무에 배치되고 아랍인으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을 만나 협상을 하고 그러다 쫓기게 되어 탈출을 하고 비닐봉지에 매달려 패러글라이딩을 하듯 푸른 들판과 강을 빠른 속도로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고, 아주 그냥 다이내믹한 꿈이었다.


계획보다 시간이 늦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라도 준비해서 나가야했다. '괜찮아. 맨날 늦잠 자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푹 잤으니 그걸로 된 거야.' 후다닥 씻고 옷 갈아 입은 후 외출준비를 완료했다.



폰으로 카페를 검색했다. 가려고 한 카페가 있었지만 혹 다른 괜찮은 카페가 있나 싶어 찾아봤다. '자, 어디 보자. 비 오는 날의 낭만을 즐기려면 역시 통유리여야겠지?' 통유리 카페로 검색했다. 눈에 띄는 카페를 발견했다. '엇, 우리 동네에 이런 카페가 있었다고?' 오늘 같은 날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았다. 위치 확인 후 출발했다.

 

직접 가서 본 카페의 내부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통유리라 앉아서 비 오는 날을 즐기기 그만이었다. 적당한 자리가 하나 있었다. 앉으려고 다가가서 보니 가방이 놓여 있었다. '앗, 좀 전에 나보다 20초 먼저 들어온 그 남자군. 조금만 더 빨리 들어올걸.' 아쉬웠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카페 안쪽에 들어가보니 훨씬 예쁜 자리가 많았다. 은은한 조명을 한 자리도 있었고 편안한 소파 자리도 있었다. 가히 압권이었던 건 스크린이 있는 좌석이었다. 미술관에 온 듯한 분위기였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와우! 힐링 그 잡채잖아!'


비 오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창가 자리를 두고 안쪽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카페라떼를 마시며 스크린에 나오는 풍경을 감상했다. 따뜻한 색감의 조명과 사각형의 갈색 테이블도 둘러봤다. 혼자 노트북을 하며 작업하는 사람,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와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이 사람들은 출근 안 하고 어떻게 다들 이렇게 카페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하는 생각이다. 나도 출근 안 하고 카페에 있는 한 사람이면서 말이다. 주변을 만끽한 후 태블릿 PC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냈다. 그리고 글을 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꿈의 차나 꿈의 집이 있다. 난 꿈의 차는 없지만 꿈의 집은 있었다. 바닷가가 보이는, 통유리로 된 집이다. 부산에 있는 아이파크 같은 아파트가 제격이다. 연차를 쓴 날, 마침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을 튼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바깥 풍경을 감상한다.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맺혀 있다. 저 멀리 안개에 둘러싸인 광안대교가 보인다. '캬~ 바로 이 맛이지.' 한때 내가 종종 상상했던 모습이다. 지금은 잘 안 한다. 고급아파트?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지금 사는 집이 좋다. "똥집이라도 내 집이 최고다!." 어머니가 종종하는 말씀이다. 되게 추운 날 따뜻하게 데워진 집에 들어갈 때면 그 말씀이 떠오른다. 비록 30년도 더 넘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허름한 5층짜리 아파트지만 나는 내 집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는 걸 보통 휴식이라 말한다. 어느 책에서 읽은 휴식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바빠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걸 하거나 즐길 수 없었던 걸 즐기는 게 진정한 휴식이라 말했다. 누군가는 낮잠을 자거나 누워서 멍하니 있는 걸 휴식이라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티브이나 영화를 보며 쉬는 게 휴식이라 할 것이다. 나에게 휴식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집에서 멍하니 있을 때는 생각나지 않는 중요한 일이 카페에서 떠오른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단기계획도 세우게 된다. 글로 쓰기 좋은 글감도 카페에서 생각난다. 집에서는 잘 써지지 않는 글이 카페에서는 써진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예쁜 인테리어나 풍경을 보면 행복해진다. 새로운 공간에 있는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항상 그런 건 아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카페를 가다 보니 지루할 때도 있다.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글도 써지지 않아 시간만 허비하고 돌아올 때도 있다. 비 오는 날은 다르다. 비 오는 날에 연차 쓰고 가는 카페는 더 특별하다. 호불호가 없다. 음악을 들으며 비 오는 풍경만 감상해도 평타는 친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카페로 향한다.


아침 출근길 비가 오는 걸 볼 때면 '오늘 연차 쓰고 카페 가면 딱이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음 같아선 아침에 눈 떴을 때 비가 오면 바로 직장 상사에게 전화해 "오늘 연차쓰겠습니다! 카페 가서 갬성 충천해야 하거든요!!"라고 말하고 다. 평소 직장에서 워낙에 돌+아이 기질을 많이 뽐낸 터라 그렇게 말해도 상사가 그리 황당해 할 것 같진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오바다.


오늘  올 걸 알고 연차를 쓴 건 아니었다. 이번 12월 월요일에 다 연차를 썼다. 주 4일제를 위해. 작년에도 그랬다. 연차많이 남았을뿐더러 한 해 마지막 달은 여유롭게 보내고 싶었다.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좋다. 비가 적게 오면 또 별로다. 이렇게 바닥을 적실 정도로 비가 와야 감성이 살아난다. 오늘 내가 연차 쓴 걸 어찌 알고 하늘에서 이렇게 촉촉하게 비가 내리나 싶다. 비 오는 날 출근하지 않고 카페에서 휴식할 수 있는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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