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예선을 치르고, 나는 울었다

전국노래자랑과 6번의 지역 가요제 도전! 무대에 대한 나의 열정

by 기타치는 권작가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는 현수막을 봤다. 나가고 싶었지만 예선일자가 평일 오후였다. 참가하려면 회사에 연차를 내야 했다. 고민하다가 결국 연차를 신청했다. 나에게 사유를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기가 뭐해서 갔다와서 얘기해주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허락을 받았다. 다음 날 곧바로 전국노래자랑 예선 현장으로 갔다.


전국노래자랑 예선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예선통과자에게는 "합격입니다"

탈락인 사람에게는 "수고하셨습니다"였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가 부른 곡은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였다.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을 바라봤다. '합격'과 '수고' 중 과연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했다. 결과는?


"수고하셨습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사실 1차 예선 정도는 당연히 합격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예선장을 빠져 나왔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은 눈물로 얼룩지고 말았다. 단순히 탈락에 대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 순간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속상함 때문이었다. 무대에 오르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박수 받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번번이 탈락만 하는 내가 싫었다. 어떤 무대에서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는 게 속상했다.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노래자랑에서 떨어진 것 가지고 우는 바보가 어디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다. 무대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노래뿐만 아니라 평소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독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땐 그 열정이 눈물로 표출될 때가 많았다. 더군다나 슈퍼스타K 오디션에도 4번이나 도전했는데 다 탈락하고 그 외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가요제에서도 모조리 다 예선에서 탈락을 했으니 속상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눈물이 날 수밖에.


6곳의 지역가요제 예선에 참가하다

내가 참가했던 지역가요제는

진례 도자기축제가요제

진영 단감축제가요제

김해가요제

김해 한가위맞이가요제

밀양가요제

대구포크페스티벌 시민노래자랑

등 6곳이었다.


이쯤되면 내가 노래를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상은 정반대다. 결코 잘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참가하는 가요제마다 다 탈락을 하지. 물론 본선에 오른 가요제도 있었다. 바로 김해 한가위맞이가요제였다. 하지만 여긴 규모가 되게 작은 가요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입상은 못했지만 참가상으로 휴지를 받았던 터라 기억에 남는다. 6곳의 지역 가요제 중 특히나 기억에 남는 가요제는 바로 밀양가요제와 대구포크페스티벌 시민노래자랑 가요제이다.


밀양가요제 예선에서
초광속으로 탈락한 사연


창원에서 밀양가요제 예선이 열렸다. 지역에서 열리는 가요제 치고는 규모가 꽤 컸고 상금 또한 많았다. 유명한 가요제인 만큼 각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예선 현장에서 2시간 가까이 기다려서야 겨우 내 차례가 되었다. 내가 부른 곡은 가수 Homme(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였다. 노래를 부른 직후 바로 결과를 알려주기 때문에 더욱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사랑이 떠나가도~”


이제 막 한 소절 불렀는데 심사위원은 그만 불러도 된다며 노래 반주를 꺼버렸다. 겨우 한 소절 부르고 예선에 탈락한 것이다. 그야말로 초광속 탈락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빠듯해도 한 소절만 듣고 떨어뜨리는 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예선에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우선은 1절이라도 다 불러보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예선에 참가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작한 지 5초도 안 돼서 떨어지고 말았다. 왜 그 먼 데까지 가서 그 고생을 했나 싶었다. 씁쓸했다.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가요제,
대구포크페스티벌 시민노래자랑

부산에서 살다가 직장 때문에 혼자 대구로 이사를 가게 됐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가요제가 열린다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대구포크페스티벌 시민노래자랑이었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참가하는 가요제마다 번번이 탈락했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뭔가 아쉬웠다. 다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예선은 김광석 길에 있는 야외 홀에서 열렸고 포크페스티벌인 만큼 기타는 필수일 거라 생각해 기타를 가지고 갔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배운 기타와 함께라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예선에서는 이문세의 ‘사랑은 늘 도망가’라는 곡을 불렀다. 기타동호회에서 몇 번 공연을 했던 곡이라 자신 있었다.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는데 왠지 느낌이 좋았다. 예선을 통과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며칠 뒤 예선 통과자 명단이 공지되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본선 진출자 명단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내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선 탈락이었다. 이 무대가 나의 마지막 가요제 무대였다. 기대한 만큼 아쉬움도 컸지만 여러 가요제 중에서는 그래도 대구포크페스티벌 예선 무대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실패를 통해 내 실력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다

4번의 슈퍼스타K 오디션과 7번의 가요제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단 한 번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매번 실패만 하는 바람에 속상했고 또 좌절도 많이 했다. 제대로 된 본선 무대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입상도 하지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노래에 대한 도전은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때의 실패가 실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내 실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요제에 몇 번 안 나갔을 때만 해도 나 정도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예선 탈락을 하고 보니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동네 노래방에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쟁쟁한 실력자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낼 만한 실력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내가 가진 실력을 비하한 것이 아니었다. 내 실력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됐다는 말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만 넘치면 예상치 못한 결과에 충격만 더 커질 뿐이다.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인지할 때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연습하며 준비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무대를 꿈꾸다

슈퍼스타K 오디션과 마찬가지로 가요제 역시 해볼 만큼 해보고 나니 그제서야 무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다른 무대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큰 무대만을 바라보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 실력으로 오를 수 있는 작은 무대를 찾아 노래하면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에겐 그곳이 기타동호회 무대였고 라이브 카페 무대와 길거리 공연이었다. 그곳에서는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기준이 없었다. 그래서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잘하든 못하든 사람들 앞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그런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었다. 노래와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내공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더 큰 무대도 꿈꿀 수 있었다. 가요제라는 사소한 도전을 통해 나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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