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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Nov 14. 2019

수능만 잘치면 인생 대박나는 줄 알았다

공부는 중요한 10가지 중 겨우 하나였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시절 나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수능대박!!' 

수능만 잘치면 되는 줄 알았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학교, 학원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고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철같이 믿었다.


아침 7시에 0교시를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10시에 학교를 나왔다. 마치고 바로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고는 새벽 2시에 집으로 들어와 기절하듯 잠들어버리곤 했다. 고3 내내 매일 4시간밖에 못 잤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친구들 만나서 놀 법도 한데 독서실에 살다시피 하며 공부만 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한 기억밖에 없을 정도로 공부만 하고 살았다. 그렇다고 뛰어나게 공부를 잘한 건 아니었다. 내신 성적이 그나마 좋았을 뿐 전국 모의고사 성적은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친구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공부하는 방법도 잘 몰랐고 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것도 없이 무작정 앉아만 있었던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겠지만 아무튼 하는 양에 비해 성적이 생각처럼 오르진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는 올랐지만 원래부터 공부를 잘하던 머리 좋은 친구들은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를 거라 믿었다.


2006년 11월, 결전의 그날

"파이팅!!"

수능시험 당일 날 아침이었다. 나갈 준비를 다 하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엄마가 두 손을 불끈 쥐어보이며 나를 응원했다. 잘치고 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수능날이면 언제나 그랬듯 그날의 날씨도 제법 추웠다. 시험장으로 가는 길에 '그렇게 고대하던 수능 시험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하는 생각 때문인지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고사장에 도착했다. 교문에서 응원을 하는 사람들을 지나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험지를 배부받았다. 시험이 시작됐다. 내 인생이 걸린, 아니 내 인생이 걸린 시험이라고 착각한 시험이 시작되었다.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험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험장을 나오는데 특별히 잘친 것 같지도 못친 것 같지도 않았다.


수능 성적서를 받았다. 역시나 대박은 없었다. 평소 나오던 점수대로 나왔다. 실망하진 않았다. 자기 실력만큼 점수를 받는 것일 뿐 대박이란 건 없다고 생각했다. 점수에 맞춰 부산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교 생활은 나에게 신세계였다. 새로운 공간, 다양한 사람들 그 모든 게 신기했다. 그 동안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당당히 민증을 보여주며 자유롭게 술을 마셨고 단체로 엠티도 떠났다. 말로만 듣던 캠퍼스의 낭만을 제대로 즐겼다.


처음엔 마냥 재밌었다. 하지만 몇 달 다니다보니 대학생활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적응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선생님이 대학만 가면 끝났다고 했는데, 대학만 가면 인생 핀다고 했는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 아니었다. 대학에 다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자퇴를 감행했다.

     


1점 차이로 인생이 바뀐다.

영화 ‘바람’에서 주인공인 짱구를 가르치는 과외선생님이 한 말이다. 학교 다닐 때 나도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1점 차이로 대학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고 말은 학교 선생님들의 단골 멘트였다. 겨우 1점 차이로 바뀌면 얼마나 바뀌냐며 의심을 품었지만 1점 차이로 전체 평균이 바뀌고 등수가 달라지는 걸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난 뒤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친구 중 한 명은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박이 나는 바람에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신형 그랜저를 한 대 뽑아드리고 자신은 닭집을 차렸다고 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사장님이 된 것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놀기만 하던 한 친구가 어느 날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대학을 안 간 한 친구는 가구시공 기술을 배워 월 500만원을 번다고 했다. 반대로 반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던 한 친구는 취직을 못해 백수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성적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지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주위 친구들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공부는 못했지만 운이 좋아 잘 된 경우라고 볼 수도 있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아직 잘 풀리는 시기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현 상황만 보고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몇 가지 이야기만 듣고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중요하다. 하지만...

공부는 중요하다.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낫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없어서 고생할 바에는 있어서 누리는 게 낫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학교성적표나 수능점수보다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여 돈을 많이 버는 직장에만 취직하면 반드시 행복할까? 안정직인 공무원만 되면 인생이 끝날까?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어쩌면 그때부터가 전쟁이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무작정 빨리 달린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다. 느리더라도 방향을 잡아가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목표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꿈과 목표를 가져야한다는 그런 거창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해보자는 뜻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움직이자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만 한다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는 얼마든지 많다. 책을 통해 배울 수도 있고 자격증을 취득할 수도 있다. 영어, 일어, 중국어와 같은 언어도 있고 여행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배우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사람'만한 인생 선배가 없다.


살면서 중요한 것이 10가지 있다면
공부는 그중에 겨우 하나야.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땐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지금은 알 것 같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일 게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긍정적인 에너지와 영감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공부 외에도 더 중요한 것이 많기에 나머지 9가지를 잘 배우고 경험하고 그 속에서 배운다면 공부를 못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학 안 나왔는데도 저 잘 살고 있거든요?

고등학생 때 수학 과외를 받았었다. 그때 과외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태현아,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고 힘든데 대학까지 안 나오면 이 세상 진짜로 살기 힘들다. 무조건 대학은 가야 한다. 알겠나?”


과외선생님 말대로라면 대학을 안 나온 나는 먹고살기 힘들다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열심히 일 잘하고 있고 취미로 기타를 배우며 슬기로운 음악생활도 하고 있다. 혼자 이리저리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최근에는 내 이름으로 된 책도 출간했다. 수능을 망쳤고 대학도 자퇴했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재밌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만약 과외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 대학 안 나왔는데도 정말 잘 살고 있거든요?”




오늘은 수능시험 날이다. 망쳤다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나름 잘 봤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괜찮다. 내가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니지만 인생을 조금이나마 더 살아본 선배로서 얘기하자면 수능 시험 잘쳤다고 해서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도 아니고 못쳤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니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당장 자기가 겪고 있는 일이 제일 힘들 게 느껴지는 법이다.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상당히 많다. 유치원 다닐 땐 연필 하나 잃어버린 게 그렇게 큰 일 같아도 지나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학창시절엔 친구와 크게 다툰 일이 하루 종일 신경쓰일 정도로 큰 일 같지만 화해하고 나면 별 일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면 당장은 죽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 생각하며 잘 살아간다.  


수능 시험도 마찬가지다. 시험을 망쳐서 원하는 대학에 못가게 되면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괴롭겠지만 지나서 보면 살아가는 데 있어 넘어야 하는 여러 산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고라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했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성공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당연히 공부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알 수 있었다. 세상에는 공부말고도 중요한 게 많다는 것을, 공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멀리보는 안목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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